
조희대 대법원장이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증인 출석을 거부한 채 ‘참고인 신분’으로 배석하는 초유의 장면이 연출됐다.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에서 “재판을 이유로 법관을 증언대에 세우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며 “그런 전례는 법치국가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질의를 강행하면서 조 대법원장은 오전 내내 자리를 지켰고, 여야의 고성이 이어졌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10분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오늘 출석은 대법원장이 국감의 시작과 종료 시 인사와 마무리 발언만 하는 종전의 관례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 증인 출석 요구는 진행 중인 재판의 합의 과정을 해명하라는 것으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재판관여 금지), 헌법 제103조(사법권 독립), 법원조직법 제65조(합의 비공개)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법관은 자신이 내린 재판에 무한책임을 지지만, 그 이유로 증언대에 세운다면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이 위축된다”며 “사법부의 독립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원리”라고 덧붙였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조 대법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한덕수 전 총리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따졌고, 박균택 의원도 “속전속결로 이뤄진 파기환송 판결이 과연 정당하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질문에 단 한마디의 답도 하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하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폭거”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나경원 의원은 “대법원장을 증인으로 세우지 않는 것은 국회의 오랜 관례로, 삼권분립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라며 “위원장이 관행을 깨면 헌법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배숙 의원도 “참고인은 본인 동의 없이 진술을 강요할 수 없다”며 “오늘은 민주당이 사법부를 압박하는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행정처장인 천대엽 대법관 역시 “1987년 헌법 제정 이후 대법원장이 국회에서 일문일답을 한 사례는 없다”며 조 대법원장의 이석을 요청했지만, 추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추 위원장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며 “대법원장에게 질의할 권한은 국회에 있다”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양당 의원들 간 고성이 오가며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나 의원이 “국회가 대법원장을 감금하고 있다”고 외치자,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원이 국민을 기만했다”고 맞받았다. 최혁진 무소속 의원은 조 대법원장을 향해 “친일 사법부의 수장”이라며 조롱성 발언을 이어가기도 했다.
결국 추 위원장은 오전 11시 40분께 국감을 정회했고, 조 대법원장은 정회 시간 중 자리를 떠났다. 조 대법원장은 전체회의 종료 전 마무리 발언 때 필요한 부분을 보충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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