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백신 접종 직후 뇌출혈로 사망한 사례에 대해 법원이 국가 보상 책임을 인정했다. 백신 안전성과 피해보상 범위를 둘러싼 법리적 논쟁이 더욱 불붙을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김영민)는 사망자의 배우자 A씨가 질병관리청을 상대로 낸 예방접종 피해보상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사망자는 2021년 12월 화이자 백신을 맞고 불과 두 시간 만에 쓰러졌고, 일주일 뒤인 2022년 1월 4일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두개내출혈로 기록됐다.
유족은 사망이 백신 접종 때문이라며 피해보상을 신청했지만, 질병관리청은 2023년 5월 이를 거부했다. “직접사인이 뇌출혈이고, 접종과 사망 사이 의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법원은 이 판단을 뒤집고 백신 접종과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백신과 사망, ‘시간적 밀접성’에 주목
또한, 접종 전에는 모야모야병을 포함한 뇌혈관 질환 진단이나 치료 이력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병원 치료 과정에서 뒤늦게 모야모야병 발병 사실이 확인됐지만, 당시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접종 이후 발생한 두개내출혈이 접종과 무관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곧 “사망이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백신 접종으로부터 발생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의학 이론이나 경험칙상 불가능하지 않다”는 법리적 결론으로 이어졌다.
피해자에게 과도했던 입증 부담
그동안 질병관리청은 피해보상 심사 과정에서 ‘의학적으로 명확한 인과관계 입증’을 피해자 측에 사실상 요구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백신은 긴급승인 절차를 통해 단기간에 도입된 특수성을 지닌다. 안전성 검증 과정이 축소된 만큼, 접종 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국가가 충분히 예측·관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재판부도 이 점을 판결 이유에 반영했다. “코로나19 백신은 예외적 상황에서 짧은 기간 안에 개발돼 접종됐다. 접종 후 어떤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 구체적 확률이 어떻게 되는지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며 국가가 불확실성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법원은 예방접종 피해보상 제도의 본래 취지인 ‘사회적 위험 분담’ 원칙에 무게를 뒀다. 접종이 개인이 아닌 국가 주도로 이뤄진 만큼,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는 취지다.
다른 소송 인정 가능성은…공공의료 책임 무거워져
질병관리청은 항소를 제기했지만,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단이 유지될 경우 제도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까지도 다수의 예방접종 피해자들이 인과관계 부족을 이유로 보상을 받지 못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유사 사건에서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판결은 백신뿐만 아니라 국가 주도의 공공의료 정책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이 정부가 주도하거나 강력히 권고한 의료행위에서 발생한 예측 불가능한 피해에 대해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법적 기준이 강화된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항소심 결과에 따라 백신 부작용 보상 제도의 해석과 적용 범위가 다시 정리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피해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던 기존 관행에 제동을 걸고, 정책적 의료행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더 무거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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