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프리뷰] '병원 옆 약국' 막은 대법원, 쟁점은 '소송할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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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병원 바로 옆에 신규 약국이 들어서는 경우 인근 약사가 등록 취소 소송을 낼 자격이 있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존 약국의 조제 기회를 보호받을 권리를 법원이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약국 개설 분쟁은 물론 행정소송에서 제3자 원고적격 판단 기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020년 7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한 상가에서 여성의원 옆 호실에 약국이 개설되자 인근 약사들이 등록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이 각각 엇갈린 판단을 하면서 시선은 대법원으로 향했다. 11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의료기관 처방 조제 기회를 공정하게 배분받을 기존 약국의 이익은 법규에 의해 보호되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이라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고적격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이번 사건의 핵심은 인근 약국이 ‘제3자 원고’로서 소송을 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약사법 제20조 제5항은 의료기관과 약국이 과도하게 밀착될 경우 담합과 독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병원 내부나 부지를 분할한 경우, 전용 통로를 설치한 경우 등 특정한 장소적 연관성이 있으면 약국 개설을 금지하고 있다. 기존 약사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병원 옆 약국은 불법”이라 주장했으나, 문제는 그들이 과연 법적 이익을 침해받은 당사자인지였다. 대법원은 “기존 약국의 조제 기회 자체가 보호되는 법익”임을 명확히 하면서 쟁점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는 단순한 매출 감소가 아니라 제도적 취지에 따른 권리 침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1심 재판부는 “의원 바로 옆에 약국이 생겨 기존 약국의 매출이 줄었을 개연성이 크다”며 원고들의 원고적격을 인정하고 등록 처분을 위법하다고 봤다. 반면 2심은 “각각 다른 건물에 있고, 기존 약국이 특정 의원 처방에 의존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원심을 뒤집고 소송 자체를 각하했다. 결과적으로 원고들은 법정에서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제 기회를 공정하게 배분받을 권리”라는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하며 원심을 파기했다. 소송은 다시 서울고법에서 본안 심리를 이어가게 됐다.
 
의약분업제도의 취지와 행정소송법 해석 확장

대법원은 “기존 약국이 해당 의료기관의 처방전을 실제로 조제한 이력이 있다면, 신규 약국으로 인해 조제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취소를 구할 원고적격이 인정된다. 

의약분업제도를 법제화한 약사법의 취지를 받아들인 셈이다. 의료기관과 약국 간 담합을 차단하고 의약분업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입법 취지를 구체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나아가 기존 약사의 경제적 기반과 공정한 경쟁 환경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음을 선언한 의미가 있다.

또한 행정소송에서 제3자 원고적격을 판단하는 기준을 넓힌 만큼 보건당국과 지자체에겐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약국 개설 등록 심사는 단순히 건축 구조나 거리 기준을 넘어서 인근 약국들의 조제 기회와 의약분업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행정당국의 재량 범위를 좁히고, 분쟁 소지가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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