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처럼 특정 직무에는 학위가 필수적이지만, AI나 신기술 분야처럼 대학 교육이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학위가 노력의 결실을 담보하는 증명서라는 점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기술력·지능·잠재력을 보여주는 기준으로서는 점점 매력을 잃고 있다.
인공지능(AI) 활용 역량은 가장 수요가 높은 직무 기술 중 하나다. 이를 제대로 가르치는 학위 과정은 많지 않다. 해당 학위를 수료하더라도 졸업할 즈음에는 배운 내용보다 AI 기술이 더 진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딜로이트가 2023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Z세대 근로자의 71%가 직장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는 반면, 밀레니얼 세대는 49%, X세대는 29%에 그쳤다. 세대별 기술 친숙도가 대학 교육의 결과라 보기는 어렵다. 한 조사에서는 미국 대학 졸업생의 절반 이상은 자신의 학위가 실제 업무를 준비하는 데 있어 충분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답했다. 몇년 전 관련 전공 학위를 취득한 사람보다 오히려 독학으로 개발을 배우거나, 스스로 AI 도구를 학습해 현장에 적용해 온 사람들이 채용 후보자로서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에서는 IBM, 월마트, 구글뿐 아니라 여러 주 정부에서 일부 직무를 채용할 때 자격요건에서 학위를 제외했다. 메릴랜드 주의 경우, 공공 부문의 다수 직무에서 학사 학위 요건을 제외해 4년제 학위가 없는 지원자들에게 3만8000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줬다. 학위라는 필터를 제거하면 더 많은 인재가 기회의 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 이들 대다수는 학교 교육보다 ‘실전 경험’을 통해 성장해 왔다.
아직 채용 공고에서 학위 요건을 없애는 일은 표면적인 변화에 그치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조사에서 약 10년간 학위 요건을 삭제한 채용 공고가 4배가량 증가했음이 확인됐지만, 실제 학위가 없는 사람을 채용한 비율은 소폭 증가했다. 리모트 역시 많은 직원이 학위를 보유한 상태로 고용됐다. 대학 교육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때 시간과 자원,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격증이나 학위만으로는 개개인의 적응력을 예측할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고, 새 기술을 활용해 어떤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채용해야 한다.
역량 기반의 채용은 학위가 없어도 충분한 역량을 쌓아 온 인재를 배제하지 않기 위한 접근법이다. 필자 역시 컴퓨터와 텔레매틱스 공학 석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규 교육의 가치를 잘 알며 존중한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학위가 유일하거나, 신기술을 빠르게 익히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가 아닌 점을 익히 알고 있다.
기업들은 지원자가 작성한 논문의 주제가 아니라,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고, 어떻게 협업하고, 무엇을 익혔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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