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이 내년 중간선거에서 연방 하원 의석 수 확대를 목표로 '텃밭'인 텍사스주에서 선거구 재획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맞서 민주당도 뉴욕 등 자당 우세 지역에서 선거구 개편에 나서며, 미국 전역에서 '선거구 재획정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텍사스 주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공화당 주도의 선거구 재획정안 표결을 막기 위해 주 정부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시카고, 보스턴, 뉴욕 등 다른 지역으로 집단 이탈했다. 이로 인해 텍사스 하원은 이날 오후 선거구 재획정안은 물론, 지난달 발생한 홍수 사태 관련 재난지원 법안도 표결에 부치지 못했다.
텍사스 주는 통상적으로 10년마다 인구 조사 결과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하는데 주 의회 표결을 걸쳐 이를 확정한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집단 이탈로 표결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현재 텍사스 하원은 전체 150석 중 100명(3분의 2) 이상이 출석해야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 민주당은 이 중 62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단체로 출석하지 않을 경우 법안을 저지할 수 있다.
이에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이들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렸다. 애벗 주지사는 이날 소셜미디어(SNS)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텍사스를 떠난 이 민주당 의원들은 텍사스 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며 "그들은 의석을 포기했고, 중범죄 혐의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텍사스 공공안전부(DPS)에 무책임한 하원 민주당 의원들을 모두 체포해 텍사스 주의회에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데이비드 프룸킨 휴스턴 대학교 법학 교수는 애벗 주지사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며 해당 의원들이 의석을 이탈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텍사스에서는 지난 2021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당시 공화당 주도의 선거구 재획정안 표결을 막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이 의회에 출석하지 않았고, 이들이 복귀한 뒤 결국 표결이 이뤄져 법안은 통과됐다. 이후 주의회는 출석하지 않는 의원에게 하루 500 달러(약 69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같은 해 텍사스 법원은 관련 소송에서 "주의회 지도부가 결석 의원들을 물리적으로 강제 출석시킬 권한이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백악관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에 트럼프 대통령이 애벗 의원이 불참한 민주당 의원을 파면하겠다는 위협을 지지하며 새로운 지도 통과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현재 총 435석의 연방 하원 의석 중 텍사스는 38석이 배정됐고, 이 중 공화당은 25석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구 재획정을 통해 의석을 더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텃밭' 뉴욕 및 캘리포니아 의석 확대 추진
이에 맞서 민주당 역시 '텃밭'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도 공화당의 선거구 개편에 맞서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구 조정 움직임에 나섰다. 캐시 호철 뉴욕 주지사는 이날 텍사스 민주당 의원들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법을 어기는 카우보이 무리가 벌이는 현대판 역마차 강도질처럼 우리의 민주주의가 도둑맞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화당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규칙을 다시 쓰려고 한다면 우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똑같이 해야 한다. 불에는 불로 맞서 싸워야 한다"고 밝혔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캘리포니아는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는 11월에 선거구 재획정을 위한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공유하고 있는 개편안 초안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연방 하원 52석 중 민주당 의석은 현재 43석에서 최대 48석까지 늘어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치 전문가들은 텍사스의 이번 갈등이 내년 중간선거 판도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프린스턴대 여론조사 전문가 샘 왕 교수는 이런 전략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다수의 공화당 우세지역을 만들더라도 그것이 확실한 지역이 아니라 민주당이 '파도'를 탈 경우 뒤집을 수 있는 정도라면, 결국 위험을 키우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11월 버지니아와 뉴저지 주지사 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공화당 후보들은 민주당 후보들에 비해 여론조사에서 큰 열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 예측 플랫폼 폴리마켓(Polymarket)은 2026년 민주당의 하원 탈환 확률을 70%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관세, 감세, 이민 등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정책들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데 따른 것이다.
한편 지난달 중순 트럼프 대통령이 지역 공화당 의원들에게 선거구 재획정을 요청했다는 언론 보도 이후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특정 정당에 유리한 선거구 조정) 논란이 본격화됐다. 그는 지난달 15일 기자들과 만나 "텍사스가 가장 클 것이다. 5석이 될 것"이라며 해당 계획을 인정한 바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