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②] "사물의 언어로 말하는 화가" –케서린 번하드가 그려낸 이 시대의 초상


어릴 적 미술관에서 그림을 배우며 시작한 케서린 번하드는, 엘르와 보그 속 슈퍼모델을 그리던 시기를 지나 스프레이 페인트와 묽은 아크릴, 바닥 위의 캔버스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회화적 어법을 구축했다. 그녀의 작업은 회화의 전통적 문법보다는 자기만의 감각과 리듬, 즉흥성을 우선시하며 “그림은 곧 예술 치료”라는 말을 몸소 증명해낸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그녀가 그리는 ‘사물’들이다. 뻔하고 사소한 일상 속의 오브제들을 반복, 병치시키며 ‘지루함’을 파괴하고 ‘즐거움’이라는 감각을 환기한다. 이 사물들은 번하드에게 있어 개인의 기억, 가족의 풍경, 아이의 관심사, 그리고 시대의 기호를 담은 상징들이다.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욕망이 충돌하는 이 경쾌한 혼종 속에서, 우리는 불안정하고 과잉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예술가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어쩌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좋아하는 ‘별것 아닌’ 것들을 진심으로 그려보라. 삶도 예술도, 그렇게 시작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케서린 번하드 사진UNC갤러리
케서린 번하드 [사진=UNC갤러리]


작품 대중문화 아이콘과 평범한 오브제들을 결합하면서, 당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조화 기준은 무엇인가
-두 요소를 뚜렷한 윤곽선으로 평면화하고 조화로운 색의 범주 안에서 채색함으로써, 그것들의 복잡한 요소를 제거하고, 본질적인 단순한 형태로 환원시키고 시각적인 리듬이 화면을 이끌도록 한다. 이러한 반복과 콜라주처럼 배치된 구성은 화면에 균형감을 만들어낸다.

작업 중 가장 몰입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혼자 작업실에 있으며 음악과 움직임에서 에너지를 얻을 때. 스프레이를 뿌리고, 물감을 붓고, 음악을 들으며 완전히 지칠 때까지 몰입할 때. 아주 신체적이고 몰입감 있는 흐름이다.

작품을 제작하며이건 성공했다’ ‘이건 실패했다 느낄 때는 언제인가. 성공했다고 느꼈던 작품이 의외로 대중의 반응이 없었거나 실패했다고 느낀 작품이 반응을 얻은 작품이 궁금하다
-작품이 "성공적이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처음의 에너지와 즉흥성이 그대로 살아 있을 때이다.
반대로 "실패했다"고 느껴질 때는, 지루해 보이거나 충분히 복잡하지 않을 때이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뉴욕에서 활동하며 받은 가장 영향은 무엇인가. 여성 작가로서 동시대 미술계에서 느끼는 점이나 바라는 변화가 있나
-뉴욕에서의 경험(현재는 세인트루이스에 거주 및 작업)은 소비문화의 이미지들, 스트리트 아트 문화, 그리고 뉴욕의 활기차고 다양한 커뮤니티들에 강렬하게 노출되게 했다.

SNS 디지털 시대가 당신의 작업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제가 그림을 온라인에 올리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작업을 볼 수 있다. 요즘은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업을 올리기만 해도 사람들이 그들의 활동을 쉽게 알 수 있다. 저도 인스타그램에 제 그림과 일상을 함께 올리며 소통하고 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당신의 작품을 보고너무 가볍다혹은장난 같다라는 평가를 하는 이들에게 어떤 답을 하시겠나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일상적인 사물을 그리는 건 의도적인 유머이자, 이 무섭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꼭 필요한 도피다. 그림은 곧 ‘예술 치료(art therapy)’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제 작업이 어린아이 같아 보인다고 말해왔다. 정말 고맙다. 저에게 그보다 더 큰 칭찬은 없다. 모든 연령대가 제 작업에 공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만약 제 작업이 그리기 쉬워 보인다면, 이런 예술을 직접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장난스러운 것이 뭐가 문제인가?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의 케서린 번하드와 지금의 케서린 번하드, 가장 달라진 점은 뭔가
-제 작업의 처음엔 사물과 패션 모델에 집중했지만, 점차 패턴, 공공 벽화, 아주 큰 회화, 아주 작은 회화, 드로잉 등 더 넓은 시각적 어휘로 확장하게 됐다. 저의 작업은 늘 진화하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 마치 삶처럼 말이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예술가로서 기대되는 것과 가장 두려운 것은 뭔가. 앞으로의 꿈이 궁금하다
-저를 움직이게 하는 건 에너지 넘치는 창작, 풍부한 색감, 그리고 새로운 모티프에 대한 탐구다. 무엇이 두렵냐고? 즉흥성을 잃거나 또는 너무 내면적으로 빠지거나, 무엇인가를 지나치게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가 두렵다. 그리고 더 이상 큰 작품을 만들 수 없을 만큼 신체적으로 지치는 것도 두렵다. 앞으로는 더 큰 규모의 공공 작업을 하는 것과 레지던시 참여, 그리고 저만의 시각 언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제 꿈이다.

예술가로서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많이 작업하는 것, 자신의 집착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것, 즉흥성을 유지하는 것,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그리고 또 매일 작업실에 가서 꾸준히 작업하는 끈기이다.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당신이 사랑하는 ‘별것 없어 보이지만 명확한 것들’을 계속 그렸으면 한다. 본능을 믿고,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작품을 만들어라. 당신만이 지닌 고유함 그리고 색을 통해 강력하게 드러나는 나만의 예술적 표현 방식이 당신을 특별하게 만들거다.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솔직해라.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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