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서울대 10개' 말고 …서울대부터 변해야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5극3특체제는 지방균형발전의 핵심정책으로, 앞으로 정책이든 재정이든 집중하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지역거점대학을 육성하는 것이다.” 지난 6월 30일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 중 일부이다. 이로써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주장이나 제안을 넘어 국가 핵심 정책으로 부상했다.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만큼이나 교육계 안팎의 반응도 뜨겁다. 대선 이후 약 두 달 동안 거의 모든 언론사가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관한 논평과 칼럼을 실을 정도이다. 전반적으로 입시지옥 해소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책의 목적에 동조하고 성공을 희망하는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가운데, 일부 논객은 포퓰리즘에 기초한 해당 정책의 실패를 단정적으로 전망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두 개의 전제 위에 성립한다. 첫째 대학생에게 투입되는 교육비는 대학의 수준 향상과 정비례한다. 둘째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등 소위 9개의 거점국립대는 서울대로 거듭날 수 있다. 즉 거점국립대 학생 1인당 교육비(평균 약 2300만원)를 서울대 학생 1인당 교육비 수준(약 6700만원)으로 끌어올리면 거점국립대가 서울대로 변신하여, 세계 유일의 입시지옥도 해소하고 청년의 수도권 진입을 원천 차단하여 지역균형발전도 달성한다는 논리이다.
이에 대해서 논객들은 적잖은 우려를 쏟아낸다. 무엇보다 정책 구현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의 확보가 가능한지 묻는다. 국민의 고통 분담이 따르는 증세 없이 실행 하려면 교육 예산의 조정을 통해 관련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데 실현가능할지 의문이 앞선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고등교육 전용이나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에 관한 법률 제정이 언급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예산 확보보다 더 큰 우려는 예산 지원과 대학 수준 향상의 정비례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다. 지금의 서울대는 과연 본받을 만한 대상인가? 부산대만의 장점을 살려 특성화하는 과정 없이 예산을 쏟아붓는다고 서울대가 되겠는가? 교수나 대학 당국의 철저한 혁신 없이 돈을 준다고 서울대가 되겠는가? 우려 섞인 반문이 쏟아진다. 실제로 지난 20여 년간 16조 이상의 정부 재정을 지방대 살리기에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지방대가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대한 원인 분석은 다양하겠지만, 국립대가 지금의 모습과 관행을 유지한다면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는 현실적으로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이러한 우려와 지적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성공할까? 필자는 비관적으로 전망한다. 이 정책은 독창적인 발상이라기보다 지난 20년 동안 제기된 여러 버전의 지방대 살리기 정책, 특히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의 표지갈이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원저자는 현재 이 땅의 대학들이 처한 문제를 분석하여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역사와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차원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기 때문에 정책의 실효성에 강한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한국의 고등교육 정책은 어떤 비전 위에서 어떤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가? 오늘의 서울대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특이한 발전 과정의 결과물이다. 극단적인 대학의 서열화와 최우수 학생 3천여 명의 독점, 이것이 서울대의 위상이자 상징권력이다. 후진국 대한민국이 재벌 육성을 통해 세계 10위 경제대국을 달성했듯이, 서울대를 정점으로 인재 육성을 실천한 결과가 오늘날 한국 대학체제의 근간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제 이 시스템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이를 개혁하지 않으면 결단코 우리의 미래는 없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실질적인 내용은 국립대 육성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지난 반세기 동안 정부(교육부)는 왜 스스로 설치하고 운영에 책임을 지는 국립대를 서울대 못지않은 세계적인 대학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정책을 펴지 않았는가? 아마도 수도권 일극체제로 변하는 발전의 흐름에 내맡겨 지방대로 전락하는 과정을 보고도 못 본 체한 결과일 수도 있고, 1995년 5·31교육개혁의 기치대로 교육 분야에 도입된 경쟁체제의 결과로서 지방대의 추락을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든 국립대가 지방대로 전락한 오늘의 상황에 대한 책임은 교육부의 부실한 관리와 통제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사립대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우리의 현실에서 국립대에만 엄청난 지원을 약속할 때 사립대의 반발도 예상된다. 이에 더해 사립대에 대한 교육부의 합리적인 관리와 통제 정책 또한 부재라는 근원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흔히들 사립대의 공공성을 외치지만, 한국에서 사립대는 학교법인의 사유재산으로 취급된다. 사립대 법인은 개인의 등록금으로 조성된 재정에 의존하여 대학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면서 정부의 통제와 감사가 따르는 공적 재원의 지원을 경계한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사립대는 공적 재원의 투입을 통한 공공성 강화에 한계를 긋는다. 이러한 법률적·제도적 한계가 굳어지는 사이에 일부 사립대는 ‘부실과 비리’의 꼬리표를 달아 사립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부추기는 항수가 되었다. 15년 동안 등록금 동결을 버티면서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자마자 등록금을 전격 인상하는 모습은 그들의 정체를 잘 보여준다. 이런 구조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OECD 공적 투자와 비교하여 한국 대학의 낮은 공적 재원 투자 비율을 언급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진단이다.
차제에 정부는 사립대를 관리·통제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건실한 사립대의 선별과 지원책이 절실하다. 그것은 사립대에 대한 여론의 반전을 꾀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책은 사실상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립대 법인에 대한 평가는 사립대의 재정과 운영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점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법인의 부당한 학사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교수와 학생이 중심이 되는 사립대의 명실상부한 자율적 운영 구조를 수립할 수 있다. 여기에는 민주적인 거버넌스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교수회의 법적 지위 확보와 학생회의 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한국 대학체제의 구조와 한계를 고려할 때, 이제 교육부는 국립대와 사립대의 관리체계를 개혁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즉 교육부 직할의 국립대와 개인사업자로서 사립대의 관리를 이원화해야 한다. 먼저 정부(교육부와 과기부) 직할의 고등교육기관으로서 국립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육성할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고, 이를 향후 제정될 ‘국립대학법’에 명시하여 국가의 책무 및 대학의 합리적 경영을 법제화해야 한다.
국립대에 재직하는 현직 교수로서 필자는 국립대에 재정을 투여하면 서울대가 되리라는 기대는 현실적으로 무망하다고 본다. 반드시 시스템 개혁이 따라야 한다. 먼저 ‘거점국립대’나 ‘국가중심대’ 같은 임의적인 용어를 폐기하고 나아가 ‘지방대’ 등의 멸칭 사용을 금지하는 한편, 대도시 소재의 대형 국립대와 중소도시 소재의 중소형 국립대의 기능과 역할을 재조정해야 한다. 대형 국립대의 재학생 수는 4~5천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보편교육의 중심으로서 지방 거주민의 고등교육 수요를 충당하고 있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이런 대형 국립대를 일본의 제국대학처럼 세계적인 수준의 고등교육기관으로 끌어올려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 발전에 핵심 역할을 하게 만드는 방안이 시급히 요청된다.
그에 비해서, 중소도시 소재의 중소형 국립대는 해당 지역의 산업과 긴밀하게 연계하는 특화 교육기관으로 거듭나고, 이를 토대로 실현 가능한 규모의 대학도시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들 국립대의 입학정원을 대폭 줄이고 대학의 특성화를 확실하게 지향해야 한다. 특성화 분야 집중 육성을 내걸고 입학정원을 현재보다 절반가량 줄이면서, 관련 국공립연구소와 기업을 유치하여 함께 공생하는 복합특성화캠퍼스를 조성하고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로 도시의 이미지를 ‘대학도시’로 전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항구·산업도시 군산의 이미지에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융합한 ‘산업·인문 복합도시 군산’을 지향하는 군산대, 생태도시 이미지를 확보한 ‘지능형 생태 대학도시 순천’을 지향하는 순천대, 전통문화의 이미지와 생명과학 분야의 경쟁력을 융합한 ‘문화·생명 대학도시 안동’을 지향하는 안동대(현 경국대) 등 다양한 전략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들 중소형 국립대는 국가 지원 아래 유사한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립대 네트워크를 실현하는 단위로 기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전 국민의 고민거리이자 고통의 주요 원인으로서 입시지옥의 해소를 위해 서울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즉 서울대가 엘리트 학생을 독점하는 특혜와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 대학서열화와 독점체제는 선진국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우리는 저출산에 따른 축소지향의 미래를 무시할 수 없고, 더욱이 AI시대가 도래하면서 대학은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는 대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 서울대가 새로운 시대의 대학상을 제시하고 새로운 교육 목표를 내세우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 입시지옥은 해소될 것이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 서양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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