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칼럼] 성장률 0% 시대…AI는 기술이 아닌 전술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AI에 집중되고 있는 자본
바다가 잠잠하면 큰 고기가 없듯, 평온한 시기에는 거대한 부(富)의 이동이 드물다. 그러나 태풍이 불어 바다 밑바닥까지 뒤집어지는 대변혁이 일어나면, 심해에 숨어 있던 큰 고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듯 막대한 부가 창출된다.
역사적으로 거대한 부는 항상 노동, 토지, 자본이라는 생산의 3요소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블루칼라 노동자의 육체노동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영국의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증대시켰고, 영국을 세계의 부국으로 만들었다. 이는 노동이라는 생산요소의 본질적 변화가 가져온 결과였다.
20세기 말, 인터넷의 등장은 사이버 공간을 통해 지리적,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며 새로운 부의 파도를 일으켰다. 물리적 토지의 제약을 넘어선 가상공간이라는 새로운 '토지'가 등장하며 아마존, 구글과 같은 거대 기업들이 탄생했고, 이는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다.
그리고 자본의 변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과거 조개껍데기, 황금에서 종이지폐로 이어진 자본은 이제 비트코인,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암호화된 디지털 화폐로 대체될 가능성을 보이며 그 가치를 폭등시켰다. 이는 자본의 형태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는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정신노동을 대체하는 AI 혁명이 등장하고 있다.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창의적이고 분석적인 사고가 필요한 영역까지 AI가 침투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거대한 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AI는 생산력과 불평등의 축이 될 수도 있고, 인간을 모든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천국이 될 수도 있다. 이 기로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는 돈에게 물어보면 가장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자본의 흐름은 명확하게 AI 분야로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잘나가는 소위 '매그니피센트 7(M7)' 기업들은 모두 AI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들의 주가 상승은 AI 기술에 대한 시장의 뜨거운 기대를 반영한다.

미·중 AI 전쟁의 승자는 누구일까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은 인류 미래를 좌우할 중대 사안이다. 미국은 막대한 자본으로 최고 성능 AI 칩을 확보, 고성능 AI 개발에 올인한다. AI 시대가 '승자 독식'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빅테크 기업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매년 50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붓는다.
반면, 고성능 AI 칩 확보가 어려운 중국은 '이 없으면 잇몸' 전략을 구사한다. 알고리즘 고도화로 고효율 AI 개발에 주력한다. 고성능 GPU나 반도체 노광 장비 EUV 개발에 도전하는 나라는 사실상 전무하지만, 중국은 '10년에 칼 한 자루 간다'는 심정으로 GPU와 EUV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자력갱생 의지를 불태우는 격이다.
미국의 강점은 초격차 기술, AI 반도체 독점, 민간 주도 개방 생태계에 있다. 반면 중국의 강점은 국가 주도 초대형 투자, 초거대 데이터와 신속한 상용화, 그리고 산업 전방위 적용 속도다.
결론적으로, 미·중 AI 전쟁에서 '완승은 없다'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 단기(2025~2027)에는 미국이 반도체·기초 모델에서 절대 우위를 점할 것이다. 하지만 중기(2027~2030)에는 중국이 자국 칩 개발과 대규모 응용 분야에서 격차를 대폭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2030 이후)에는 미국이 기초 연구, 국방 AI, 글로벌 표준 분야를, 중국은 스마트시티, 제조, 신흥국 시장에서 강점을 보이며 특화 영역에서 공존과 균형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미·중 경쟁의 새로운 전장: 다시 제조업
증기기관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을 일으켰지만, 미국은 이를 자동차 엔진으로 발전시켜 자동차 혁명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AI는 미국에서 탄생했지만, 진정한 대박은 AI 칩이나 AI 모델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AI가 다양한 산업과 연계될 때 비로소 발생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에 18세기 중상주의 시대에나 쓰이던 관세 전쟁을 일으킨 트럼프 대통령이 AI+ 시대의 최대 공헌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가 트럼프 행정부의 25~50%에 달하는 높은 관세를 뛰어넘으려면 신기술 도입 외에는 사실상 대안이 없다. 전 세계는 트럼프의 고관세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AI 도입에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러한 전 세계적인 몰입과 집중이 AI+와 범용 인공지능(AGI) 시대를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AI시대에 미·중 간의 경쟁은 다시 제조업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미국의 엔비디아 젠슨 황 CEO는 AI 칩 판매를 위한 비전으로 피지컬 AI(Physical AI)를 강조한다. 이는 AI가 실제 물리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작동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정보화 시대에 모든 제조업에 인터넷을 접속하는 '인터넷+' 정책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룬 중국은, 2025년부터 모든 산업에 AI를 접속하는 'AI+' 전략에 올인하는 형국이다. 서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체화 지능(Embodied AI, 具身智能)을 중심으로 산업 전략을 짜고 있다. 중국은 인터넷+ 전략으로 트럼프 1기 정부의 25% 관세를 뛰어넘었지만, 30% 추가 관세는 AI+ 전략으로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AI 로봇이 일하는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를 성공적으로 구축한다면,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 제조업의 강점은 큰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은 AI 분야에서는 최강이지만, AI를 제조업 환경에 훈련시킬 제조업 기반이 30~40년 전에 이미 해외로 대거 이전되어 약하다는 점이다.
반면 중국은 AI는 미국에 뒤지지만 제조업은 세계 최강이다. 중국은 이 제조업에 AI를 접목해 최강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결국 AI+ 시대에 미·중의 경쟁은 다시 제조업의 패권을 놓고 벌어질 것이다.

성장률 0%대 시대, 한국의 해법은 "AI+ First"
역사적으로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는 법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아이디어, 즉 규모가 아닌 전략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핵심이었다.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순신 장군이 압도적인 일본 수군을, 베트남이 미국을 상대로 승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AI 개발 자체에 매몰되기보다는 AI를 산업과 연계하여 '돈 태우는 기계'에서 '돈 버는 기계'로 전환을 모색하는 시대이다.
한국은 AI 개발이 늦었다고 자조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희망이 있다. 자동차는 미국이 개발했지만 세계 1위는 일본의 도요타고, 세계의 명차는 모두 유럽에 있다. 이는 원천기술의 발상지가 곧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산업에 접목하느냐다.
AI 기술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가팔라, 예산 타령, 인력 타령, 제도 타령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현재 한국의 GDP 성장률은 0%대에 머문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가 정치권의 헛발질로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하지만 제2의 한강의 기적은 바로 'AI+'를 통해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처절한 반성이 필요하다. 미국이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외친다면, 한국 정치는 이제 계파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멈추고 'AI+ First'로 나아가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세계적인 제조업의 강자이다. 이는 한국이 AI+를 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초고성능 AI 개발에만 몰두하기보다는, AI를 다양한 산업과 접목하여 최고의 생산성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새 정부 들어 AI를 산업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고 1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시대 흐름에 맞는 적시타의 정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소버린 AI(자주적인 AI)'만을 외치는 것은 2% 부족하다. 글로벌 산업경쟁 시대에 걸맞은 'AI+ 전략'에 100조원을 더 투자해도 과하지 않다. 미국의 25% 상호 관세는 협상도 중요하지만, AI+를 통해 생산성을 25% 더 높이면 극복할 수 있다.
지금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이다. 한국이 'AI+ First' 전략으로 미래를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지, 아니면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뒤처질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이 거대한 태풍 속에서 '큰 고기'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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