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한 세대의 열정이 서울을 바꾼다"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가난을 극복하려면 한 세대의 희생이 필요하다.”
산업화 시대의 거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남긴 말이다. 이 말은 단순한 경제 논리를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헌신의 철학을 담고 있다. 한 세대가 희생과 고통을 감수해야 후손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이 정신은 경제 개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도시의 미학과 품격을 완성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서울을 ‘디자인의 도시’로 일관되게 이끌어온 인물로, 오세훈 시장만큼 분명한 이름은 없다. 그는 도시 디자인을 단지 외형의 아름다움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디자인은 시민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고, 서울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력이라는 믿음을 지켜왔다. 그 철학은 시대가 바뀌어도 한결같다.

2008년, 그는 직접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찾았다. 물론 지금도 세계 여러 도시를 찾고 있지만···,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지에서 발견한 깨끗한 거리, 정돈된 간판, 예술과 공공성이 융합된 건축물은 도시의 ‘격’을 어떻게 높이는지를 분명히 확인했다. 오 시장은 '서울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확신을 품고 귀국했다.

하지만 그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강남 등 상업지구의 불법 전단물과 난립한 간판을 정비하려 했지만, 상인들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서울시는 행정 지원까지 제시했으나 '영업권 침해'라는 반발에 막혀 사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정한 도시 경쟁력은 거대하고 화려한 구조물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소한 질서의 축적, 시민 모두의 인내와 참여 속에서 완성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그 증거다. 1882년 시작된 이 건축은 아직도 완공되지 않았지만,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그것을 ‘미완의 예술’이 아닌, 도시의 정신과 철학을 담은 걸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오 시장의 디자인 철학이 구현된 대표적 사례다.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장 그 이상이다. 건축 당시 반대하는 목소리가 아주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의 역사와 미래가 교차하는 열린 광장, 세계 속 ‘디자인 서울’을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건축비와 유지비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지만, 이제 DDP는 서울의 상징이 되었고, 오 시장의 혜안은 시간 속에서 빛나고 있다.

오 시장은 서울 전역의 건축에 ‘예술성’이라는 옷을 입히고자 한다. ‘K-건축문화 종합지원계획’은 그 철학을 제도적으로 구현한 모델이다. 예술적 건축에 용적률 완화, 세제 혜택, 재정 지원을 아낌없이 제공하면서, 건축주와 행정이 손을 맞잡는 도시 품격 향상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최근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찾아 도시 혁신의 최전선을 다시 살폈다. 포르타 누오바와 시티라이프는 낡은 철도 부지를 녹지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재생의 모범으로 꼽힌다.

서울도 지상철 67.6㎞를 지하화하고, 그 위에 녹지와 상업문화지구를 조성하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연트럴파크, 그리고 DDP까지…. 서울의 디자인 여정은 쉼 없이 확장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단 한 사람의 리더십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건축주, 상인, 시민 모두가 ‘디자인은 곧 삶의 질’이라는 인식을 함께할 때, 비로소 도시의 품격이 만들어진다. 단기적인 이익이나 일시적 불편을 넘어, 다음 세대를 위한 긴 호흡의 참여가 필요하다.
정주영 회장이 강조했던 한 세대의 희생, 그것이야말로 서울이라는 도시가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품격의 기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오세훈 시장은 오늘도 묵묵히 서울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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