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극 항로의 상업적 활용 현실화
북극이 21세기 에너지 패권의 핵심 무대로 부상 중이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그린란드 미국령 편입 추진과 알래스카 LNG 개발 프로젝트라는 두 가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동맹국에 동참을 요청하며 이 프로젝트들이 급속도로 진행될 조짐을 보인다.
북극은 천연가스, 석유, 31종의 핵심 광물이 매장된 미래 자원의 보고로, 미국, 러시아, 캐나다뿐 아니라 중국, 일본, 영국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적대국의 나쁜 에너지 대신 좋은 에너지'를 사용하자며 동맹국들을 적극적으로 회유하고 있다.
북극 자원 개발이 주목받는 이유는 해빙으로 인해 북극 항로의 상업적 활용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동항로는 한국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존 부산항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해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의 거리(약 22,000km)가 북극 항로로는 13,000~15,000km로 크게 단축된다. 미국행 화물도 파나마 운하 대신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극을 이용하면 유사한 효과를 볼 수 있어, 부산항이 북극 항로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한국 물류산업의 대전환을 예고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조선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북극 운항에 필수적인 쇄빙 LNG 운반선, 내빙 유조선 등 고부가가치 특수 선박 건조 능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선박에 SMR(소형모듈 원자로)을 탑재하는 기술 융합이 이루어지면, 개조 비용은 높더라도 연료비 절감과 충전 시간 단축으로 장기적으로는 경제적이다. 핵 추진 선박의 등장은 해운 경쟁력의 판도를 바꿀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조선과 해운의 융합으로 한국이 세계 최고의 물류 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지평이 열린다.
북극 항로는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재편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남중국해, 수에즈 운하 등 기존 해운 항로의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물류 지연과 해상운임 상승은 한국과 같은 수출입 해상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치명적이다. 따라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새로운 해상 실크로드로서 북극 항로의 잠재력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와 맞물려 국제협력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 해운업계에서도 여러 이유로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러시아와 협력으로 가스 파이프라인·철도 확장, 연해주에 한국 경제 영토 확보 기회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부산을 북극 항로 개발의 거점이자 컨트롤타워로 삼아 해양 강국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해양수산부와 HMM 본사의 부산 이전도 공약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극 자원 개발과 항로 활용에 관한 범정부적 전략 수립과 관련 당사국과의 협상 채널 구축이 필요하다. 미국 등 동맹국과의 협력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북극 항로의 주요 거점인 러시아와의 전략적 제휴 추진이 중요하다. 러시아를 포함한 북극 이사회 8개국과의 대화 채널 구축이 시급하다.
여러 정황으로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연내 종결될 가능성이 있다. 종전 후에는 재건 프로그램과 경제 개발 계획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러시아는 극동 연해주 지역을 동북아 경제 허브로 발전시키기 위한 '신(新)동방 정책'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전쟁으로 소원해진 유럽보다는 아시아 지역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회생을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리는 러시아의 동방 정책과 연계하여 우리도 연해주 지역에 경제 영토를 확장하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북한 경유 한국의 부산 혹은 새만금으로 연결하고, 중국 혹은 일본 시장까지 커버하는 파이프라인과 철도 건설을 구체화 시켜야 한다. 러시아가 계획을 주도하고 한국이 건설을 담당하며, 완공 후 가스를 판매한 수익으로 비용을 상환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북한 통과 문제는 우호적 관계가 있는 러시아 측이 해결토록 설득함으로써 우리 측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본격적인 북극 시대에 대비해 러시아 정부와 공동으로 ‘국제자유혁신도시(International Free Innovative City)’건설 제안을 통해 한국 기업의 제조·물류 등 서비스 산업 거점을 확보하는 것도 추진해볼 만하다. 러시아에도 좋고 한국에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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