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도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논설고문]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 사회는 ‘회복·성장·행복’이라는 3대 국가비전 아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정부부처와 긴밀한 협업을 통해 선거 때 공약으로 제기된 비전별 250여 개의 정책목표에 따른 세부실천과제를 구체화하고,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역사적 과업에 착수했다. 과제에 따라서는 신속하게 이행계획이 수립되는 것들도 있고, 단기 또는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추후 종합적으로 발표되는 과제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 통상·무역 분야의 정책방향은 미국과의 통상협상, 글로벌 공급망재편 등 시급한 대외적인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그 어느 정부보다도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새 정부는 급변하는 통상환경 속에서 ‘국익 최우선의 실용외교’, ‘일자리 창출과 산업경쟁력 제고’, ‘경제영토 확장’을 3대 핵심 정책방향으로 하는 “전략적 통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 위기 대응을 넘어, 국내 일자리 창출과 미래 산업의 경쟁력 강화,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대한민국 위상 제고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특히 미국·중국 등 특정국가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줄이고 수출시장과 품목을 다변화하겠다는 전략은 대한민국 경제가 ‘진짜 세계 5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성장 기반 마련에 필수적이다.
수출시장과 품목의 다변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시장기회를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기술력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자원, 인구,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신흥시장과의 글로벌 협력을 주도하는 것이 핵심 방향이다.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공공외교에 국민과 기업의 참여를 높이며, 민간 외교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는 등 새로운 통상정책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 경제협력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미래 경쟁력 확보에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목표 실현의 중요한 수단이 바로 '개발도상국과의 전략적 경제협력'이다. 개발도상국과 다각적인 경제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함으로써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최근 필자가 직접 참여한 ‘요르단 KSP 사업’은 그 대표적 사례다.
지난 4월 필자는 ‘요르단 KSP 사업’의 수석고문으로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한국 연구진과 함께 요르단을 방문하였다. 요르단 정부의 에너지정책 자문을 위해 고위 정책담당자들과 협력방안을 논의하면서, KSP라는 플랫폼이 단순한 개도국 지원을 넘어 양국간 상호 성장을 위한 견고한 다리가 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KSP(Knowledge Sharing Program)는 한국의 경제성장 경험과 정책 노하우를 개발도상국과 공유하는 대표적 협력 플랫폼이다. 이는 단순한 원조를 넘어, 양국 정부와 민간이 함께 성장하는 실질적 파트너십 구축의 토대가 되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경험했던 정책입안자, 연구기관, 기업이 한 팀으로 정책자문, 역량강화 연수, 공동연구 등을 제공하며, 협력국 정부는 이를 통해 정책 아이디어를 얻고 자국의 현실에 맞는 발전전략을 수립해 나간다. 특히 KOTRA는 전 과정에서 현지 정부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요르단 KSP에서도 KOTRA 암만 무역관은 현지 정부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한국 전문가팀과 협력하여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양국 간의 신뢰를 돈독히 하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우리 기업들에게 요르단은 중동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서, 성장 잠재력이 큰 매력적인 파트너이다. 요르단은 정치적 안정성과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중동 지역의 물류 및 무역허브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국가다. 젊고 교육수준이 높은 인구구조와,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 그리고 미국·EU·아랍권 등 국가와의 다양한 FTA 네트워크는 우리 기업에게 매력적인 진출 기회를 제공한다. 요르단은 ‘경제현대화 비전’을 통해 제조업, 에너지, 디지털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은 스마트 인프라, 에너지 절감, 디지털 전환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KSP를 통해 요르단의 지정학적 이점과 한국의 정책 경험이 결합된다면, 요르단은 한국의 새로운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중동지역 생산 및 수출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할 것이다.
요르단과의 개발협력처럼 개발도상국과의 협력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전략적 투자다. KSP와 같은 정책협력 사업은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다. 정부, 기업, 연구기관, 학계 등 전방위적 협력을 통해 정책협력이 민간과 산업협력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될 때,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 기회는 더욱 넓어진다.
세계은행은 ‘24년’ 세계개발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사를 ‘개도국 정책 입안자의 필독서’”라고 소개하였을 만큼, 우리의 경제성장사는 개발도상국에게 ‘귀중한 참고서‘이다.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는 이제 국제사회의 중요한 자산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개발협력은 새 정부의 국익극대화, 산업경쟁력 강화, 경제영토 확장이라는 통상정책을 세계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핵심 도구가 될 것이다.
2023년 대한민국의 공적개발원조(ODA)는 31억 달러를 돌파하며 OECD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중 상위권에 올랐다. 한때 원조를 받던 나라였지만,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는 국격에 맞게 ODA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온 결과이다. 이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명실공히 책임있는 중견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기에 새 정부의 실용외교가 결합된다면 전략적 ODA 추진과, 민간참여 확대, 신흥기술 활용 등 혁신적 방식을 통해 국익과 글로벌 가치를 조화롭게 실현하리라 기대된다.
앞으로 정부는 개발협력의 외연을 더욱 넓히고, 전문가 교류 활성화, 신속한 금융지원 채널 확보 등 정책경험 공유사업을 체계화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글로벌 진출과 국민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 변화하는 국제 통상환경 속에서, 개발도상국과의 협력을 지렛대 삼아 대한민국 통상정책의 새 지평을 열기를 기대한다.
김학도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정치경제학 박사 △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통상교섭실장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현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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