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이민사회, 보험은 준비되었는가

  • 길민수 글로벌리더에셋 대표

길민수 글로벌리더에셋 대표
길민수 글로벌리더에셋 대표
보험은 흔히 개인의 위험에 대비하는 사적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회적 연대와 공동부담을 핵심 원리로 삼는 준공공재적 제도에 가깝다. 위험을 나누고 손실을 상쇄하며 사회 전체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보험은 하나의 사회 안전망이고 국가 복지체계의 보조 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보험의 공공적 성격은 다문화사회로 향하는 한국의 길목에서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70만명을 넘어섰고 이들 중 상당수가 장기체류자 또는 일정 기간 이상 국내에서 일상을 이어가는 사회의 실질적 구성원이다. 특히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와 지역소멸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이주민은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떠받칠 중요한 기반이다.

한국 보험산업은 생존의 문턱에 서 있다. 저출생, 고령화, 인구감소, 지역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는 보험업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험은 위험의 분산을 전제로 하는 제도인데, 젊고 건강한 가입자가 줄고 고령자의 비중이 급증하는 구조에서는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보험업계가 단순한 영업 위축을 넘어 사업 모델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 국민이 보험을 당연히 들 것이라는 전통적 인식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한쪽에서는 무너지는 기반이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인구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이민자 유입 확대다. 코로나19로 다소 주춤했던 외국인·이민자 유입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부동산투자나 상사 투자를 통한 영주자격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고 전문기술 인재, 고학력 외국인 등 우수 인재의 유입은 세계화 흐름과 맞물려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건설, 제조, 간병 등 고위험·저임금 산업에 종사하는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의 숫자도 생산인구의 감소 대응 기조에 맞춰 증가하고 있다.

보험산업은 이 변화에 민감해야 하고,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수 인재 이민자는 소득과 자산 기반이 뚜렷한 고급 고객군이며 저숙련 외국인은 한국 사회의 사회보장 사각지대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실질적 시민이다. 이들을 포용하는 보험 설계는 단순한 시장 확장이 아니라 보험의 공공성 회복과 사회 통합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전략적 진출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의 이민제도가 체류자격별로 권리와 의무가 다르게 설계돼 있고 법적 지위의 안정성과 보험 가입 자격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E-9 비자(비전문취업) 외국인 근로자는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는 자동 가입되지만 민간 보험에 대한 정보나 가입 유도는 매우 제한적이다. 귀국 가능성이 상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장기형 보험상품을 설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보험 고객의 구조변화에 맞게 새롭게 설계해 나가야 한다. 보험은 가장 취약한 사회 구성원부터 보호할 때 진정한 공공성을 획득한다. 이주민에 대한 보장 확대는 단지 그들을 위한 시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위험을 낮추고, 갈등을 예방하며, 공동체 신뢰를 증진하는 길이다. 이는 공공성을 사회 전반으로 확장해 나가는 실천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민자 대상 보험상품 설계에 있어 정교한 접근과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먼저 이주민의 체류유형, 직업군, 경제적 여력 등을 고려한 모듈형 보장구조와 단기계약 중심의 유연한 보험 모델이 필요하다. 또한 다국어 기반의 인공지능(AI) 설명 시스템, 문화통역사를 활용한 계약 체결 등 복합적 대응 시스템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험산업이 이민 제도의 복잡성과 이주민의 삶의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이민정책 전문가의 적극적인 영입과 협업 체계를 구축해 제도 설계에 내재화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외국인을 위한 보험이 단순한 틈새상품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안전망의 일환으로 정착할 수 있다.

보험의 미래는 단지 상품 설계의 정교함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를 고객으로 보고, 누구를 시민으로 품을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돼 있다. 한국이 다문화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지금, 보험의 공공성이 시험대 위에 올랐다. 그 해답은 시장과 제도가 함께 만드는 연대의 구조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