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신정부 외교, 미·중 양측에 우리만의 '레드라인' 전달해야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대한민국 신정부에 외교의 시대가 도래했다. 무려 6개월에 걸친 국정 공백을 큰 혼란 없이 수습한 한국 민주주의의 강건한 회복력은 이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준엄한 현실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외교’를 천명한 이재명 신정부는 G7 정상회의 참석과 함께,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의에도 초청받았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조금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혼란 국면이다.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을 전개하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기대와 달리 이전투구다. 중국은 미국에 밀리지 않겠다며 준비된 맞대응을 계속하면서 반미 연합세력 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이란을 위시한 중동 정세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의 좌충우돌은 미국의 국제 지위와 신뢰에 지대한 손상을 초래한 양상이다.
특히 미·중 간의 대결과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양측은 4월 11일 제네바 무역 합의를 통해 일단 미국의 대중국 관세를 145%에서 30%로, 중국의 대미 관세는 125%에서 10%로 낮추면서 90일의 유예 기간 추가 협상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이 약속한 희토류 대미 수출통제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중국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기술 통제와 유학생 비자 취소 방침 등을 언급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었다. 결국 양 정상의 통화를 거쳐 중국은 핵심 광물 대미 수출 통제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를 둘러싼 런던 2차 합의가 있었다. 구체적 논의 내용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본격적인 의미의 합의와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결국 이 힘겨루기는 미국의 대중 제재와 중국의 저항이 지속될 것이며, 향후 미국 중심의 공급망 질서와 중국 중심의 공급망 질서 구축으로 이어질 공산이 클 것임을 나타낸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을 뚫고 일정한 기술 굴기를 이뤘고, 14년째 이어지는 세계 제조업 1위 국가로서의 견고한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했다는 자신감을 사회주의 통제 체제의 속성을 이용하면서 대미 항전을 독려하는 중이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대미 도전을 완전히 봉쇄한다는 일념으로 무역 전쟁을 국가 안보와 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전략 경쟁으로 전개하는 중이다.
이 상황에서 일단 이재명 신정부는 미국, 일본, 중국 등 한국과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국 정상들과 전화 통화를 통해 상견례를 치렀다. 트럼프 대통령과는 관세를 포함한 무역 협상의 조기 타결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했으며, 일본 이시바 총리와는 한일 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강조하면서 적어도 대일 강경 기조가 기본 정책이 아님을 설파했다. 중국 시진핑 주석과는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중요성과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였고, 중국도 공급망 안보와 문화교류 확대 등을 화두로 올렸다.
일견 상견례는 무사히 마친 것으로 보이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우선 워싱턴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한국 대선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의 승리’ 주장을 통해 마치 한국이 ‘좌파’ 정치 체제로 전환했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한국 대선에 대한 ‘중국 영향력 확대’나 6일 정상 통화 후에도 공식 발표를 하지 않은 점도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미국의 민감 국가로 지정된 상황에서 한국을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재지정해 환율 조정 압박을 예고하고 있으며, 주한 미군의 역할 확대나 주둔 비용 인상 문제도 향후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인 한국에 대한 강력한 관세 압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도 문제다. 더욱이 미국은 비관세 장벽 해소 요구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쇠고기 수입 월령 제한 폐지나 한국 자체의 부가세 영역도 관세 부과의 대상이 됨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주의 이데올로기’에서 공간을 차기가 쉽지 않아 보이지만 한국은 적극적으로 한국의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미 투자가 1천 300억 달러에 달하고, 약 1만 5천 개의 한국 기업이 미국 중심 공급망 체제를 지탱하는 제조업 근간임도 사실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풀어야 할 게 많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이 다자주의 질서의 수호자임을 강조하면서, 한국과의 관계는 공동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제3자를 겨냥하거나 제3자의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는 우회적 표현을 통해 미국 견제에 나섰다. 특히 중국의 핵심 이익을 강조하면서 한국이 더는 미국에 경사되는 정책을 펼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북핵 비핵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으며, 한중 간의 최대 현안인 국민감정 악화 해소에도 뾰쪽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속히 상호 간에 현실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대화를 전개할 수 있는 상시적 대화체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최근 전개되는 서해 지역에서의 불법 구조물 구축이나 해군력 투사 확대 등에는 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
문제는 본격화된 미·중 대결 구도 속에서 한국의 여하히 이 대통령이 강조한 실용 외교를 전개할 것인가에 있다. 미국은 한·중 관계 개선을 달갑지 않게 여길 것이고, 중국은 한·미 동맹 강화나 한미일 3각 공조 확대가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대외정책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외교는 생물이므로 상황에 따라 변하지만 한·미 동맹과 한·중 협력 구조의 차별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 신정부가 천명한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는 선택적 전개가 불가피하다. 이 점에서 한국은 미·중 양측에 우리만의 레드라인(red line)을 정하고 이를 양측에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핵 문제가 방향성을 잡지 못하면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은 강화될 수밖에 없음을 중국에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미국에게는 한국이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며, 중국과 북한·러시아까지 견제하는 고리를 형성하고 있음을 설파해야 한다. 선택의 문제가 이라 설득의 문제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 독자적인 군사적 억지력과 대응력이 선행돼야 함은 불문가지다.
미래 외교 공간을 스스로 제약하는 돌발적이고 즉흥적인 언어 표현보다 분명한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확고한 외교 원칙 수립과 이에 따른 진정한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기대한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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