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에게 볼펜 하면 흔히 떠올리는 모델은 블랙&화이트 색상의 모나미 볼펜이다. 회사 사무실 어디에서나 한두 자루는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친숙하다. 무언가 급하게 적을 게 필요할 때 손에 잡히는 고마운 존재기도 하다.
이 필기구의 이름은 '153볼펜'이다. 모델명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제대로 된 명칭을 아는 이는 드물다. 1963년에 출시된 이 볼펜은 가히 한국 필기구계의 '시조새'라고 불릴 만큼 60년 동안 '국민 볼펜'으로 사랑받았다.
153볼펜이 집, 학교, 회사에서 널리 쓰이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과 내구성, 단순한 디자인 때문일 것이다. 일명 '볼펜 똥'도 빼놓을 수가 없다.
사무용 컴퓨터와 프린터가 상용화되기 전까지 'K직장인'들은 종이 묻은 볼펜 똥을 닦아 가면서 서류를 작성했다. 색상 선택의 폭도 흑색, 청색, 적색으로 좁은 편이다.
1980년대 연필 살 돈이 없는 학생들은 153펜대에 몽당연필을 끼워 쓰는 일도 흔했다. 심이 굵고 진한 소묘용 연필의 경우 육각형 형태의 축으로 된 153펜대에 끼워 쓰는 게 오히려 잡기 편했다.
필기구의 입지는 사무용 컴퓨터의 보급으로 점차 좁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대에 뒤처질 수는 없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모나미도 개인의 기호에 맞는 한정판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볼펜 똥'이 나오는 모나미펜은 이제 옛 추억이 됐다. ‘153 리미티드 에디션’을 시작으로 153 아이디, 153 리스펙트, 153 네오, 153 블랙 앤 화이트, 153 골드, 153 블라썸, 153 네이처 등 프리미엄 펜을 지속 선보이며 고급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기존 153볼펜의 디자인은 유지하면서 품질과 색상을 다양화시켰다.
MZ세대를 겨낭한 컬래버레이션 전략도 눈에 띈다. 모나미는 최근 프로야구단, 인기케릭터 등은 물론 패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등 이종산업과의 적극적인 컬래버레이션에 나섰다.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진출 30주년을 기념한 한정판 컬래버레이션 굿즈, 인스타그램 32만 팔로를 보유한 인기캐릭터 ‘잔망루피’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제품도 인기다. 브랜드 정체성은 지켜내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과의 합작품을 내놓으며 기업 이미지를 젊게 바꾼다는 취지다.
IT 액세서리 전문 기업 엘라고와 협업해 애플펜슬 케이스를 출시했으며, 이상봉 패션디자이너와 함께 ‘모나미룩’을 모티브로 한 티셔츠 등을 선보였다
모나미는 디지털화에 대응하기 위해 '쓰는 펜'에서 '그리는 펜'으로의 전환도 시도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사진을 지브리, 픽사 등 인기 애니메이션풍으로 만드는 게 글로벌 트렌드가 됐지만 일각에서는 "AI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비(非)AI 창작물의 가치를 내세우는 아티스트들도 등장하고 있는 추세다.
흑, 적, 청으로 제한된 컬러에서 색상을 대폭 늘려 '프러스펜 3000 60색 세트'를 출시했다. 이어서 12개 색이 추가된 '프러스펜 3000 72색' 세트 한정판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모나미 관계자는 “쉽고 빠르게 고퀄리티의 그림들이 생성되는 시대지만, 오히려 이러한 AI시대에서 ‘손으로 직접 그린다’의 의미와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며 "단순히 펜이라는 제품을 넘어 창작과 몰입의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로서 소비자들과 더욱 가까이서 소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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