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중국의 기술자립 굴기가 매섭다. 미국과 서방의 전방위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기술력이 약해지기는커녕 더 강해지는 양상이다. 때릴수록 강해진다는 제재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독기를 품은 중국의 제조 역량은 더 커지고 있다. 주력 산업에 이어 미래 첨단 산업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상대는 이제 미국뿐이다. 일본이나 한국, 유럽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하면서 거의 백기를 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상품의 위력은 현재 관세 공방이 진행되고 있는 미국 시장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 시장에서의 괴력이 엄청나게 커지는 중이다. 중국이 기침하면 감기에 걸리는 국가의 수가 갈수록 늘어난다. 뒤늦게 이에 대한 경각심이 생겨나고 있다지만 단기간 내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거의 속수무책이다.
중국의 기술 굴기는 매우 정교하면서도 체계적인 프레임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 핵심은 지난 2016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추진 중인 ‘중국제조 2025(Made in China)’이다. 이는 산업 고도화 전략으로 2025년까지 첨단 기술과 제조업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여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 저가 상품을 공급하는 ‘세계의 공장’이 아닌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이다. 올해는 그 마지막 해로 현재 상황을 보면 목표에 상당히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인공지능(AI)·로봇·항공우주 등 첨단 산업은 물론이고 전기차·배터리·고속철·드론·스마트폰·태양광·원자력 등에다 물류까지 중국의 위력이 놀랍고 무섭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중국제조 2025’프레임 속에 포함된 ‘홍색공급망(Red Supply Chain)’이다. 서방의 기술 제재에 맞서 2025년까지 10대 핵심 산업 부품·소재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국산화율을 높여 중국 기업만으로 자체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이나 외국 기업이 고전하는 이유가 되고 결국 중국을 떠나게 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목표는 2025년에 끝나지 않고 ~2035년까지 2단계, ~2049년까지 3단계에 걸친 계획으로 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2050년에 중국이 세계 패권 국가로 부상하는 ‘중국몽’의 결정판이다. 2025년까지 한국이나 대만을 우선 뛰어넘고, 2035년에는 제조 강국 일본과 독일을 추월하며, 2049년에는 마침내 미국을 능가하겠다는 포석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기류에 큰 변화가 생겨나고 있어 주목된다. ‘홍색공급망’이 중국 국내에 그치지 않고 해외로 확산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중국 제조업에서 생겨나고 있는 고민에서 비롯된다. 중국 제조업의 위상이 가긍할 수준으로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내부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공급 과잉 문제다.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많은 전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설상가상으로 닥치고 있는 미국의 관세 폭탄으로 최대 시장인 미국에 대한 수출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기도 하다.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 간의 인수·합병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이를 회피하기 위해 해외 생산거점 마련에 눈독을 들인다. 소위 말하는 우회생산 기지 구축에 혈안이다.
한국 경제 추락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우선해야 가능한 해법도 나와
지난 10여 년간 중국은 미국의 고관세에 대응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는 멕시코에 대규모 생산거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표방하면서 해외 생산기지의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는 징조가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관세 차이를 이용하겠다는 것으로 심지어 원산지 세탁까지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나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를 필두로 한국이나 일본까지 대상 국가에 포함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단순 조립에 더해 환적 과정을 통해 원산지 증명을 바꾸는 황당한 수법까지 나온다. 이는 중국과 유사한 처지에서 미국으로부터 무역흑자 압력을 받는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도 부랴부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1992년 수교 이후 30여 년 만에 한·중 투자와 수출과 관련 역전 현상이 가시화하는 중이다. 한국 기업의 중국 신규 진출은 현저히 감소하고 중국에 진출한 기업마저 둥지를 떠난다. 한국의 수출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에 중국 상품의 한국 수출이 계속 증가하면서 이제는 한국이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향후 이런 현상이 사라지지 않고 고착될 수도 있는 우려가 감지된다. 한국 내수시장에 침투하고 있는 중국 상품의 종류가 지속해서 늘어나고, 이로 인해 국내 중소기업의 제조업 생태계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쿠팡·롯데하이마트·이마트 등 국내 유통업체가 ‘자체 상표(PB)’ 기획 상품이라면서 중국산을 교묘하게 둔갑시키는 신종 위장술까지 서슴지 않는다. 중저가 가전 시장이 저가 중국산으로 초토화되는 중이다.
미국발(發) 보호무역의 파고의 영향으로 한국이 중국 기업의 제2 생산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가장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국가로 한국이 거론된다. 빵 공장부터 전기차나 배터리 공장까지 생겨난다. 한국 공장의 중국 주요 부품이나 소재 의존도가 60%가 될 정도로 일본에 더해 의존도가 더 심화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한국 정부 조달 시장에도 저가 중국산 진입이 늘어나고 있다. 하물며 가전(家電)에 이어 완구에다 일반 소비재의 중국 제품이 시장을 휩쓴다. 국내의 수입업자나 유통업계들이 얄팍한 상술로 중국산의 범람을 부추기고 있어 국내 제조업의 생태계가 빠르게 공동화되고 있다. 이를 저지하거나 억제할 뾰족한 방도도 없어 보인다. 한국 경제가 이처럼 휘청거리고 있는 것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아니라 중국 기업과 상품의 무차별 공세에서 기인한다. 문제의 본질을 짚어야 정확한 진단과 해법이 가능하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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