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입정하고 있다. 2025.05.01 [사진=사진공동취재단]](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5/01/20250501193453433169.jpg)
대법원이 1일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깨는 판결을 했다. 법 절차상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을 하게 되지만 하급심은 대법원 판결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서울고법에서도 유죄 판결이 나올 게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 파기 환송 판결이 주는 의미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정치에서 ‘상식적 언행'이 갖는 엄중함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 후보에 대한 서울고법의 무죄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반박의 핵심 기준은 상식이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 후보가 거짓말을 한 게 명백하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성남시 백현동 부지 용도를 4단계나 상향 조정한 이유를 국토부 협박 때문이라고 했다. ‘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안 해주면 직무유기 이런 걸 문제삼겠다고 협박해서’라고 했다. 이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토부가 그런 협박을 한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만 따져 보면 된다. 법정에 나온 성남시 공무원 등 증인 22명 중 국토부 협박이 있었다고 증언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국토부가 성남시에 보낸 공문에는 ‘성남시가 적의 판단해서 하라’고 적혀 있었다. 성남시가 ‘알아서 판단해서’ 하라는 뜻이다.
상식과 동떨어진 2심 무죄 판결
이쯤 되면 ‘국토부가 협박해서’라는 이 후보 발언은 거짓임이 명백하다. 이게 상식적 판단이다. 1심은 상식을 따라 이 후보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2심인 서울고법은 온갖 법리를 펴며 무죄를 선고했다. ‘협박 받았다’는 말은 어떤 사실을 말한 게 아니라 ‘그렇게 느꼈다’는 의미의 의견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이게 어떻게 의견 표현인가? ‘사실’ 여부는 객관적 자료로 그 존재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발언이다. ‘의견’은 주관적 판단이다. 객관적 자료로 검증할 수가 없다. 국토부가 협박한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는 객관적 자료로 증명할 수 있다. 증인들의 증언과 국토부 공문이 그 자료다. 그럼에도 서울고법은 의견 표현이기 때문에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는지 기괴할 따름이다. 대법원은 이를 허위사실 공표라고 판결했다. 상식적 판결이다.
이 후보는 과거 뉴질랜드에 출장 가서 고 김문기씨와 골프를 쳤는데도 그런 일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었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 측이 당시 골프 멤버 여러 명이 찍힌 사진 중 자기와 김문기씨 사진을 확대해서 공개한 것을 두고 ‘사진이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일반 국민들은 ‘조작됐다’는 발언을 이 후보가 김문기씨와 골프 친 일이 없다는 뜻으로 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이게 상식적 판단이다. 1심은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2심은 이 부분에도 무죄를 선고했다. ‘조작됐다’는 이 후보 발언의 의미는 사진의 일부 내용을 확대해서 원본과 다르게 만들었다는 취지이지, 김문기씨와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의미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허위사실 공표로 유죄라고 판단했다. 역시 상식적인 판단이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사법 쿠테’ ‘내란의 연속’이라고 비난했다. 뻔히 예상된 일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직 사퇴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이재명 후보는 ‘내 생각과 전혀 다른 판결이다.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판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췄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국민의 뜻이 확인되는 것이라는 취지로 읽힌다. 후보 사퇴는 없다는 뜻이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대선 전에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는 한 대선 출마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볼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후속 재판은 중단될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재명 '신뢰' 위기 현실로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이 후보는 ‘신뢰’에 치명상을 입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중에는 이 후보의 최대 리스크가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 신뢰 리스크라는 말들이 많았다. 이 후보의 신뢰성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하니 정말로 존경하는 줄 알더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이 후보가 하는 말은 뭐든 믿을 수가 없다는 불신감을 널리 펴지게 했다. 이 후보가 ‘기업을 살리겠다’,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저걸 믿을 수 있나’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후보가 대선 후보에 선출된 직후 국립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모습을 보고도 ‘정말로 두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해서 그랬을까’ ‘쇼하는 거지’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법원은 이번에 이 후보 발언이 허위 사실, 즉 거짓말이라고 확정했다. 이 후보의 신뢰성과 진정성을 의심하는 국민들에게 ‘역시 그렇지’ 하는 확신을 심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도층 유권자들이 이 후보 지지를 철회하게 할 수도 있다.
정치판에서는 상식에 맞지 않는 억지 주장, 나아가 거짓말을 하는 게 당연시되기도 한다. 그런 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것을 유능한 정치술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판이라도 억지 주장, 거짓말은 통할 수 없음을 대법원 판결은 보여준다. 정치인의 발언이 억지 주장인지, 거짓말인지는 복잡하게 따질 필요 없이 보통사람들의 상식적 판단에서 보면 된다는 점도 보여준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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