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사외이사 선임보다 중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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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희 유니코써치 전무.
매년 3월 주주총회 이전에 연례행사처럼 사외이사를 누구로 선임했는지 언론에서 주목한다. 어느 기업에서 어떤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했고, 장차관급 고위 관료 출신은 누가 영입됐고, 여성은 몇 명이나 이사회에 진출했는지 등이다.

그런데 필자가 오랫동안 헤드헌터와 컨설턴트 등으로 대기업 등에 사외이사 추천이나 이사회 관련 컨설팅을 하면서 기업 실무자에게서 자주 듣는 말 몇 가지만 꼽아보면 이렇다. "이번에 새로 모신 사외이사에게 무엇을 챙겨주면 좋을까요?" "사외이사 교육이나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등이다. 이러한 말을 자주 꺼낸다는 것은 사외이사를 선임한 이후의 관리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일반인들은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단순히 찬성인지 반대인지 손만 들고 끝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외이사의 역할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기업 전략 수립에 기여하고, 경영리스크 요인을 선제적으로 감시해야 하고, 장기적인 가치 창출에도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사외이사 혼자서는 제대로 할 수 없다. 사외이사가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운영·지원하는 전담조직이 필요하다. 이 조직이 바로 '이사회 사무국(Board Office)'이다. 이사회 사무국은 회의 일정 조율, 안건 전달 등 행정 지원을 넘어 사외이사의 온보딩·자료 제공·연수·활동 기록·평가와 재선임 지원까지 폭넓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기업의 전략과 연계된 정보 제공, 이사회 활동 전반의 체계적 관리 등은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금융권은 이사회 사무국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제정한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금융지주와 은행에 이사회 사무국의 독립적 설치와 지원 기능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요 금융지주·은행권에서는 이사회 사무국을 이사회 산하 전담조직으로 설치해 운영 중이며, 사외이사 사전 간담회를 정례화하고 회사의 전략·산업 현안을 반영한 맞춤형 연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이사회 운영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의 평가도 점진적으로 도입한다. 이를 통해 사외이사의 실질적 역할 수행을 지원하고, 이사회의 운영 전문성을 고도화하는 기반을 마련해 가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을 벗어나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아직 우리나라 비(非)금융권 상장사 등에서는 이사회를 전담하는 사무국이 없는 곳이 태반이다. 일부 대기업 등을 제외하면 경영지원·법무부서 등에서 보조 역할로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다. 누구를 사외이사로 영입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이들이 이사회에서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지원할 전담 조직이나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거나 미비한 수준에 그친다. 축구팀에서 우수한 감독이나 코치는 어렵게 영입했지만 이를 지원해줄 코칭스태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이사회 사무국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사회가 조직으로서 유지·발전을 이루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기업 규모나 업종에 관계없이 이사회 운영 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 전담 부서를 신설하는 것이 다소 힘들다면 단계적으로 핵심 기능을 분담하고 관리하는 방식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들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설계·지원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운영체계와 전담이 필요하다. 이제 기업의 고민은 '사외이사를 누구로 선임할 것인가'보다 '이사회를 어떻게 운영하고 성장시킬 것인가'에 무게중심이 쏠려야 한다. 이사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이사회 사무국'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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