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 작가]](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10/07/20241007085513492320.jpg)
[이두수 작가]
요즘 나는 광주 일곡지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골조공사가 끝나고, 곧 조경공사가 시작된다. 그래서 부쩍 정원문화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마침 서울에서 내려온 손님들과 함께 담양 소쇄원을 찾았다. 이들은 한국의 문화 관광자원을 세계에 널리 알려 1억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당찬 비전을 품고 있었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한 기운이 씻긴 듯 흐른다’는 뜻이다. 흐르는 물소리,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대숲, 낮은 담장을 넘어오는 햇살이 어우러진 그곳은, 유교적 이상국가를 꿈꾸었던 한 사내의 쓸쓸한 뒷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는 조광조의 제자였다. 중종 시대, 성리학적 이상정치인 왕도정치를 꿈꾸었던 조광조와 개혁적 사림 출신 인재들이 기묘사화로 몰락했다. 왕권의 정통성이 부족했던 중종은 개혁 의지를 접고 훈구 세력과 손잡으며 조광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양산보는 그 참혹한 현실을 목도하고 출사를 포기한 채 고향 담양으로 내려왔다. 벼슬길이 끊긴 젊은 유학자는 자연 속에서 나마 따로 이상세계를 꾸리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소쇄원은 그렇게 태어났다. 세속과 단절되고 자연과 어우러진, 작지만 순결한 세계로. 별서정원(別墅庭園) — 속세를 떠난 선비들이 은거 생활을 위해 조성한 공간 — 의 전형이다.
나는 전에 영주 현장에서 일할 때,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자주 찾았다. 소수서원은 안향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였고, 이후 이색-정도전-정몽주-길재-김종직-김굉필-조광조-이황으로 이어지는 영남 사림파의 거점이 되었다. 이 지역은 세조 때의 계유정란과 맞닿아 있었다. 왕권 찬탈의 소용돌이 속에서 금성대군이 사약을 받고, 많은 선비들이 충절을 지키려다 피를 흘렸다. 그 흔적은 지금도 '피끝마을'이라는 지명에 남아 있다.
광주 현장으로 온 뒤로 담양 소쇄원을 두 번 찾았다. 이곳은 세조의 손자인 중종 시대, 기묘사화라는 또 다른 정치적 참화와 연결되어 있다. 훈구세력에 의한 조정의 보수화에 맞서 신진 사림파 중심으로 일어난 혁신운동은 좌절되었고, 많은 선비들이 죽거나 귀양을 갔다. 그런 피비린내 나는 역사 속에서도 선비들은 오히려 더 간절히 이상국가와 왕도정치를 꿈꾸었을 것이다. 소쇄원의 구석구석에는 그런 정신과 다짐이 녹아 있다.
광풍각(光風閣)은 소쇄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전각으로, 손님을 위한 사랑채 같은 공간이다. '비갠 뒤 청량한 바람'을 뜻하는 이름처럼 자연의 빛과 바람, 물소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세속의 때를 씻고 자연과 하나 되기를 바랐던 마음이 읽힌다.

[장쾌하게 펼쳐지는 소쇄원림 매화는 이미 졌으나 붉은 철쭉이 나를 맞네 광풍각에 부는 솔바람 머리까지 시원하고 제월당 앞 계곡수는 마음마저 맑게하네]
제월당(霽月堂)은 주인이 거처하며 학문에 몰두했던 공간이다. ‘비 갠 뒤 맑게 뜬 달’을 의미하는 이름으로, 맑고 고요한 심경을 유지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았다. 이는 스승 조광조의 청렴한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진다. 제월당의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작품이다.
오곡문(五曲門)은 물이 다섯 번 굽이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따고 싶었으나, 스스로 겸손을 담은 이름으로 보인다. 자연과 교감하고, 동시에 번다한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상징적 장치이기도 하다.
대봉대(待鳳臺)는 ‘봉황을 기다리는 대(臺)’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는 하(夏)-은(殷)-주(周)와 같은 이상적 세상을 이끌 임금을 기다리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것이다.
소쇄원은 양산보라는 한 선비의 좌절과 꿈 위에 세워진 공간이다. 세속 정치의 소용돌이를 떠나 작은 골짜기 안에 스스로의 이상사회를 조성했지만, 그 이상은 자연 안에 고립되었고 현실을 바꾸는 힘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소쇄원은 아름답지만, 결국 ‘현실을 넘어설 수 없었던 이상’의 표상이다. 자연과 하나 되고자 했지만 세상과 단절된 작은 섬에 그쳤다. 이곳을 거닐며 나는,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로 연결하지 못하는 한국적 정신구조를 본다.
중국, 한국, 일본의 정원은 모두 자연을 재현하려 하지만, 그 방식에는 각기 다른 정신의 지형이 담겨 있다. 중국은 자연을 인공의 손길로 조탁해 하나의 우주를 펼쳐 놓았고, 일본은 자연을 추상과 사유의 대상으로 밀어 올렸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그 사이 어디쯤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인공을 최소화한 자연과 인공의 적절한 융합이라고 자랑하지만 그 ‘융합’은 정원이 도시 안이 아니라, 늘 자연 속에 깃드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사람 사는 이 세상을 정원으로 바꾸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으로의 도피다.
사람들은 한국 정원은 “자연에 물들어 들어가는 느낌”이고 일본 정원은 “자연을 마음 안에 담아 표현한 느낌”이라며 한국정원은 실경을 살리고, 일본은 심경을 구현했다는 식으로 한국정원도 일본정원 못지 않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낸다. 더 나아가 한국 정원은 자연을 정복하지 않으며 최소한의 인공은 자연을 억누르지 않고 그 흐름에 순응한다 라고 평하는데 이런 말은 일견 멋진 표현 같지만 바로 그 점이 현대 도시문화 속에서는 한계로 작용한다. 한국의 정원은 대개 마을 한복판이나 도시 안에 있지 않다. 산과 물, 자연 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그리워하지만, 그 자연을 현실로 끌어오는 데는 서툴다. 자연을 사랑하지만 자연을 상상하거나 추상화하는 힘이 부족하다. 우리는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도 현실로 끌어오는 데는 실패하고, 대신 아파트라는 반자연적 인공구조물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현실의 우리들 주거공간의 대부분은 아파트다. 자연을 흉내 낸 조경 몇 점을 곁들인, 반자연적이고 획일화된 건물과 단순한 도시 풍경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전통을 존중하고 그리워하지만, 실상은 동경만 할 뿐 현실로 구현할 의지나 체계는 부재하다.
이러한 구조는 정치 문화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현실을 돌파할 역량은 키우지 못한 채, 모든 문제의 원인을 과거의 일제잔재, 독재의 잔재 탓으로 돌린다. 청산이란 계몽이나 캠페인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현재의 힘이 과거를 이길 만큼 강하면, 청산은 저절로 이뤄진다. 지금도 여전히 과거에 발목 잡혀 있다는 것은 현재가 과거보다 미약하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문화에서는 이 틀을 깨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류는 더 이상 일본이나 서구문화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히 경쟁하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스스로 강해지니 자연스레 과거의 콤플렉스를 극복한 것이다. 오늘 우리 정치는 어떠한가? 지금도 여전히 뒤를 돌아보며 신발끈을 만지작거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 시대의 정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저 과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은 이상으로 남겨두고, 현실은 현실대로 방치하는 방식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아름다운 정원을 꿈꾸되, 그것을 현실의 삶 속으로 끌어와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소쇄원의 고요를 넘어서, 살아 있는 자연, 살아 있는 이상을 품은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최진석 교수가 정원에 대해 말한 부분은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정원을 ‘정원’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정원이 제국을 운영해봤거나 적어도 꿈꿔본 적이 있는 나라에서라야 문화의 중심 줄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자유ㆍ주체ㆍ독립ㆍ창의 등의 힘보다는 종속적 상황에 갇혀 사는 나라에도 정원이 없진 않지만, 그것이 누구나 맘만 먹으면 하게 되는 문화의 일반성으로 자리 잡지는 못한다. 문화의 일반성으로 드러난다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매개로서의 그것을 비교적 어색하지 않게 대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생활화라고 하자. 이때는 누구나 여건이 되기만 하면 정원을 가지고 싶어 한다. 이것은 삶의 의미에 눈뜰 때면, 누구나 시인을 꿈꾸는 바로 그 마음에 가깝다. 비 오는 날, 빗방울 소리가 리듬을 꾸리면서도 하나하나 따로 들릴 때 피아노 건반에 자신을 맡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것과도 비슷하다. 정원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소쇄원의 대숲 사이를 걷던 어느 봄날, 나는 다짐했다.
“이상은 소중하지만, 현실을 이길 힘을 기를 때 비로소 그것이 진짜 삶이 된다고...”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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