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중국의 '붉은 테크' 공습과 '모노즈쿠리 일본'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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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동서울대 중국비지니스학과 교수
입력 2024-04-2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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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대 중국비지니스학과 교수
[동서울대 중국비지니스학과 교수]

 

한국의 중산층 기준은 의외로 유별나다. 다른 선진국과는 사뭇 다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그들과 다르게 한국인은 양에 치중하고 상대적 격차에 집착한다. 오랜 세월 빈국으로 살다가 압축 성장을 하면서 잘살게 되었으나 아직도 개도국 혹은 중진국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 중산층이라면 부채 없는 30평형 아파트 보유와 월 급여 500만원 이상에다 통장 예금 1억원 이상, 2000㏄ 이상 중형차 소유와 연 1회 이상 해외여행 등을 다닐 수 있는 부류를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니 중산층 범위가 축소되고 고·저 소득층 양극단에 치우치는 기형적 아령형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이 틈새를 포퓰리즘 정치가 파고들어 진영으로 나누어 갈등을 부추기고 소비까지 양극화로 치닫는다.
 
최근 총선이 끝나고 민생 회복이 최대 이슈고 이 중심에 물가가 있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 선거 민심이 결국 여당의 참패로 끝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덩달아 내수 시장에서도 이상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C-커머스의 국내 유통 참여로 가성비 좋은 ‘메이드 인 차이나’가 소비자 지갑을 거침없이 유혹한다. 중국산의 공습이 산업 전반에 빠르게 확산하면서 이로 인해 공장을 닫거나 축소하는 현상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단지 한국에만 있는 일이 아니고 전 세계 시장이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으며 C-커머스에 대한 경계령이 급속하게 확산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중국산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서 보호무역 강화 조치를 앞다투어 내놓는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의 보복이 무서워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수입차 내수 시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경기가 안 좋으면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것이 신차 판매 수요 감소다. 전기차 수요에 대한 숨 고르기와 맞물려 세계적으로도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1분기 내수 시장에서 수입 승용차 판매가 11.5% 줄었다. 고가의 유럽 자동차 판매가 대폭 위축되고 있어 수입차 점유율이 20%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 와중에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차 인기에 편승하여 일본산인 도요타는 30.7%나 증가하여 대조를 보인다.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와 CR-V 하이브리드 모델도 덩달아 판매 호조세다. 일본산 불매 운동 여파로 한동안 주춤하던 일본차 판매가 다시 기지개를 켠다. 국산 승용차 구매를 꺼리는 고소득층의 수요가 일본차 수요로 이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작년 6월부터 수출이 회복되고 있다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위기가 감지된다. 반도체를 빼면 계속 무역적자인 ‘반도체 착시’라는 지적이 전혀 틀리지 않는다. 이마저 반도체 수요 불확실성 증가와 중동 전쟁 확산 조짐으로 불안감이 확대된다. 반도체 수출마저 적신호가 켜지면 우리 수출은 걷잡을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둘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분간 자동차 수출 증가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17개월 만에 올해 2월 대중 무역이 가까스로 흑자로 전환하긴 했어도 다시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대일·대중 쌍둥이 무역적자가 고착화하면 다른 나라에 수출하여 번 돈은 이웃 두 나라에서 수입하는 데 몽땅 써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중국 '붉은 테크(Red Tech)’의 공습과 '모노즈쿠리 일본’의 부활

한·중·일 동북아 3국 소비자의 소비 패턴도 미세하게 다르다. 일본 소비자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자국산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하다. 저가의 중국산은 구매하지만 내구 소비재는 한국산이나 중국산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일본인의 자존심이 소비에도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인들의 과시욕은 익히 소문나 있지만 경기가 악화하면서 명품에 대한 구매가 크게 줄었다. 일반 소비재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자국산 소비가 늘었다. 애국 소비라고 하지만 중국 상품의 질이 좋아진 것이 원인이다. 특히 자동차나 IT·가전 제품은 일본산 혹은 한국산 구매를 현저히 줄이는 양상이다. 이에 비해 한국 소비자는 원산지를 가리지 않는 소비 행태를 잘 바꾸지 않는다. 무역 구조적으로 보더라도 한국의 내수 시장이 수입 상품에 취약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수출 시장에서도 한국산이 가성비의 중국산과 트렌드를 강조하는 일본산의 중간에 끼여 ‘넛 크래커’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모양새가 다시 불거진다. 공급과잉으로 재고 누적에 허덕이는 중국 기업이 해외 시장에 밀어내기를 본격화하면서 세계 시장을 할퀴고 있다.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시장에 눈독을 들이며, 유럽과 한국 시장은 우선 공략 대상이다. 유럽의 주요 항구엔 중국산 전기차가 가득하고 철강·태양광 등으로 홍역을 치른다. ‘알·테·쉬’ 전자상거래 플랫폼 진출로 중국산 소비재의 침투 통로가 되면서 각국의 제조업과 유통업에 타격이 만만치 않다. 중국산에 대한 보호무역 조치가 확대되고 있다. 엔저(円低)를 장착한 일본산의 해외 시장 진출 공세도 거세다. 수출 시장에 전운이 감도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향후 더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기술 굴기’로 뜨고 있는 중국산 ‘붉은 테크(Red Tech)’의 공습이 무섭다. ‘홍색공급망(Red Supply Chain)’으로 자국 시장을 틀어 잠근 중국이 이제 해외 시장에서 무차별적으로 덤벼들 기세다. 아프리카(90% 점유)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광산이 중국의 손에 넘어가면서 배터리 등 생산을 수직계열화함으로써 절대강자로 군림할 태세다. 제조에 더해 이제 남의 나라 유통까지 넘본다. ‘모노즈쿠리 일본’의 부활도 심상찮다. 일본 기업 재기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쪽은 한국 기업이다. 수출·내수 시장에서 한국산의 고전이 현재 진행형이면서 굳어질 개연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 소비자마저 어설프게 이런 엉거주춤한 행태를 지속하면 쪽박 차고 결국 주변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묘수를 찾아내야 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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