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K쇼어링, 국외가 아닌 안방 재건이 출발선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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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입력 2024-03-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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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미·중 충돌 장기화 인한 공급망 재편이 글로벌 산업 지도가 빠르게 바뀌는 중이다. 사면초가의 중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얽힌 난마를 헤쳐나가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미국과 중국 간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양상은 불가피하게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약삭빠른 국가들은 변화를 읽고 새롭게 부상하기도 하고, 약화한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만회하면서 회생의 기회로 활용한다. 변화가 어떤 자에게는 고통이 되지만, 다른 어떤 자에게는 희망이 되면서 명암이 엇갈린다. 현재까지 한국의 성적표를 보면 수혜자라기보다 오히려 피해자로 평가하는 쪽이 정확할 듯하다. 이에는 정부나 기업 혹은 개인에 이르기까지 경제 주체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하나의 팀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여전히 해외만 쳐다본다. 지난 1990년대 이후부터 30여 년간 일관되게 국내보다 해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투자와 영업을 하고 있다. 내수 시장에 협소하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지만 국내의 투자 환경이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면서 해외에 나가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최근에도 한국 기업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동맹국 간의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에 적극 동참, 대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줄을 이었다. 가동 시점이 임박하고 있지만, 미국인 채용만 강요하는 미국 정부의 비자 제한 정책으로 인해 원하는 인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린다. 전혀 예상하지 않던 상황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한국 기술 인력은 당연히 대우가 좋은 미국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미국이나 서유럽 등 거대 시장을 조준한 ‘니어쇼어링(nearshoring)’에도 적극적이다. 멕시코나 동유럽에 많은 한국 기업들이 줄지어 둥지를 트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최대 수입 대상국이 중국에서 멕시코로 전환되고 있는 상당수 외국 기업들이 멕시코로 속속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등 해외에 이미 나가 있는 기업들마저 거점을 이전할 때 한국행은 여전히 뒷순위다. 전도가 유망한 스타트업 혹은 벤처 기업은 국내 시장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일본·동남아 시장에 더 눈독을 들인다. 심지어 가혹한 징벌적 상속세를 회피하는 방편으로 기업인이나 자산가들마저 싱가포르 등으로 이주하고 있기도 하다. 전반적인 경제의 움직임을 보면 들어오는(inbound) 것보다 나가는(outbound) 것이 훨씬 많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마저 큰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상태다. 우월적이 아닌 열세인 지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분출된다. 메모리 부분에서 한국이 1위(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후공정인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대만(TSMC)의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설계 기술에, 일본은 소재·부품·장비 부문에 강점이 있어 이들 4개국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리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 공급망에서 소외된 중국까지 사활을 걸고 뛰어들고 있다. 미국과 일본마저 한동안 등한시했던 반도체 제조 경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면서 전통적 국가 간의 분업구조에 균열이 발생,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되는 중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전열(戰列) 재정비 
 
반도체 산업이 미래 기술 선점의 척도이자 안보와의 연관성도 높아져 동맹 간의 이합집산도 점입가경이다. 미국 주도로 한국·일본·대만 등이 가세해 4개국이 칩4(Chip 4) 동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한국은 결합 고리에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일본과 대만의 상생협력 강도가 거세다. 반도체 재건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60년 전 소니와 TSMC 창업자 간의 인연을 소환하면서 강력한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TSMC가 일본 내에 두 개의 공장을 짓는데 일본 정부가 엄청난 보조금(1조 2000억엔)을 지급하기까지 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일본을 꺾은 삼성을 대만의 TSMC가 따돌리면서 일본과 대만의 협공이 한국의 위치를 송두리째 흔든다.
 
미·일의 반도체 속도전(戰)이 갈수록 불을 뿜는다. 글로벌 제조 경쟁에서 더 밀리면 중국에는 물론이고 절대 강자의 위상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다. 이들에게 보이는 두드러진 현상은 정부와 기업의 하나의 되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이다. 부럽게도 이에 따른 결과로 미·일 경제가 순항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중국과 유럽의 경제는 주춤하는 글로벌 디커플링이 뚜렷해지고 있는 점이다. ‘사무라이 7’이 이끄는 일본의 증시를 사상 최대인 닛케이 지수 43000까지 넘볼 정도다. 잃어버린 30년이 마침내 끝나가고 있다는 샴페인이 터지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AI 반도체 시장 80%를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 등 빅테크 중심의 ‘매그니피센트(M7)’ 주가가 고공행진이 멈추지 않는다.
 
이 거대한 전쟁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는 당사자인 한국 반도체의 위상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감을 지우기 어렵다. AI나 시스템 반도체 등으로 불리는 미래 반도체 시장의 승자가 되기 위해 간판 기업과 이를 백업하는 국가 간의 전면전이 예사롭지 않다. 이 전쟁에는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는 없고, 오직 고지에 깃발을 먼저 꽂는 ‘퍼스트 무버(우월적 선도자)만 있을 뿐이다. 이 전쟁의 당사자인 한국 기업은 외로워 보이고, 한국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너무 안일하다. 정부가 뒤늦게 팔을 걷어붙이고 있지만, 경쟁국과 비교해 실탄과 당근이 턱없이 빈약하게 보인다. 앞으로 3년이 최대 고비다. 여기서 발을 빼거나 긴장감을 늦추면 끝없이 뒤로 밀린다. 4월 총선이 전열 재정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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