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indonesia 스토리] 신이 창조할 때 미소를 지은 나라 .. 印尼의 '자원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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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입력 2024-02-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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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인도네시아 자바의 농촌을 처음 방문했을 때 목격한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벼의 성장주기에 맞춰 단일한 색으로 채워진 들녘에 익숙한 나에게, 다양한 색채가 공존하는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추수가 끝난 논 바로 옆에서 갓 심은 벼가 자라고 있었고, 그 옆에는 초록과 노란빛으로 물든 논이 위치했다. 이런 상황은 열대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녹색 혁명 이후 벼 성장주기가 4개월 이내로 단축되면서 1년에 세 번의 수확이 가능해졌고, 이는 농촌의 모습을 변모시켰다.
1년 이모작, 그것도 쌀과 보리의 이모작에 만족해야 했던 우리에게 1년 삼모작은 인도네시아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몇몇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인도네시아는 쌀 자급자족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는 과도한 인구 증가, 물과 경작지 부족, 소비자 취향 변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세 번의 수확이 가능한 인도네시아에서 쌀을 오랫동안 수입해야 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인도네시아의 풍요로움은 농작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셋째로 큰 산림면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군도라는 특성으로 인해 넓은 해양을 가지고 있다. 지하자원 역시 풍요의 원천이다. 금, 구리, 가스, 석유, 니켈, 석탄, 희토류, 보크사이트 등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으며, 주석의 경우 전 세계 매장량의 17%를 차지한다. 이로 인해 “신이 인도네시아를 창조할 때 미소를 지었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풍요로운 자연이라는 수사는 오랫동안 거론되었지만, 그것이 긍정적 의미로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인도네시아의 경제 상황이 자연적 풍요로움을 반영할 만큼 좋은 상태에 놓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재력과 현실 사이의 격차에 관해 말하면서 인도네시아 사람이 자주 지적한 측면은 관리의 문제였다. 태생적 풍요로움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함으로써 인도네시아가 저개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자원 관리의 주체인 정치인과 관료로 귀착되었다.
이러한 자조적 분위기는 최근 들어 급속히 변화했고, 자원 관리에 대한 호의적 평가로 대체되었다. 변화의 중심에는 니켈 원광 수출금지 정책과 같은 조코위(Jokowi) 정부의 단호한 조치가 있었다. 이 정책은 정부가 자원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확산시킴으로써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광물 원광 수출금지 조치는 자원 민족주의의 한 형태이다. 이 용어가 내포한 국수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는 ‘후방화’(hilirisasi)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적 원자재 개발에서 가치 사슬의 후방을 지향하는 전략으로 이를 설명한다. 어떤 말이 사용되든, 자원 활용에 있어 정부의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간여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자유주의 정책과 대조된다.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인도네시아에서 자원 민족주의가 부상할 수 있음은 이해할 만하지만, 그것이 왜 최근에야 주목받게 되었는지는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자원 민족주의가 처음 표출된 시기는 1980년대였다. 정부는 국내 목재 산업 육성과 산림 자원의 부가가치 제고를 위해 원목 수출을 금지하고 가공 후 수출만을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1985년에 원목 수출이, 이어서 제재목 수출이 금지되자, 한국을 포함한 외국기업의 철수가 이어졌고, 이는 목재 수출 급감과 고용 축소라는 부작용을 결과했다. 그럼에도 이 정책은 외국기업의 직접 투자를 유도하고 목재 산업의 생산성 향상을 촉진하는 등 장기적으로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되었다.
원목 수출금지는 정부가 자원 관리를 제고할 정책적 수단을 가지고 있음을 예시했지만, 자원 민족주의적 접근은 그 후 다른 자원으로 확대적용되지 않았다. 이는 자원 개발을 매개로 구축된 정경 유착 고리, 정치인과 군부 카르텔의 이권을 보호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특히, 수하르토 대통령의 가족이 이 카르텔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자원 민족주의 정책은 쉽게 확장될 수 없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수하르토 독재의 종말과 함께 시작된 민주화 과정에서 자원 관리 문제는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자원 개발을 매개로 한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인해 큰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푸아 지역의 그레스버그(Gresberg) 광산이 대중적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이 광산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금광 중 하나이자 주요 구리 생산지였다. 수하르토 정부에서 첫 외국인 직접 투자 사례로 개발된 이 광산은 미국의 프리포트(Freeport) 회사에 의해 운영되었다.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를 통해 생산이 안정되자 이 회사의 수익은 꾸준히 증가했고, 특히 구리 가격이 급등한 2000년대 중반 그 순수익이 매년 수십억 달러에 이르리라 추정되었다.
수하르토 정권에서 시작했고, 심각한 환경 파괴, 오염, 인권 침해 문제에도 사업이 계속될 수 있었음은 부패한 정치인과의 유착에 기대어 프리포트가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공식 회계에서조차 프리포트의 수익이 인도네시아 정부가 받는 세금과 로열티 수입을 크게 초과한다는 보도는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정치권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자, 국회는 2009년 광산업에 관한 법을 제정했다. 이 법안의 핵심은 국내에서 가공하지 않은 광물 수출을 금지하는 것이었고, 제련 시설 부재라는 현실을 참작하여 5년의 유예 기간을 두었다.
자원 민족주의 정서에 기대어 제정된 이 법안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으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는 광산 업체에도 적용되어서, 유예 기간이 끝난 2014년 제련 시설을 마련한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들은 유예 기간이 연장되거나 다른 형태의 타협안이 제시될 것이라 예상했다. 이런 기대는 2014년 일부 현실화해서, 정부는 수출금지 대신 추가 관세 부과와 같은 유화책을 제시했다. 이런 타협적 행보는 인도네시아 행정의 일상적 운용 방식에 부합했지만, 조코위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반영하지 못했다.
자원 민족주의에 대한 조코위 정부의 접근은 광산업에 투자한 외국기업이 과반의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를 강하게 밀어붙임으로써 명확해졌다. 이 정책은 광산법에 근거를 두고 있었지만, 법안에 명시된 10년의 유예 기간을 단축하여 적용한 것이었다. 자원 민족주의 정책의 강력한 추진 의지를 표명하고자 했던 조코위 정부는 그 대상으로 프리포트를 지목했다.
정부의 압력에 맞서 프리포트는 강력한 대응 전략을 펼쳤다. 광산 활동을 중단했고, 현지 고용인을 대규모로 해고했다. 이러한 행보는 파푸아 지역의 안정을 훼손하고, 나아가 분리주의 운동을 자극해 정부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리라 우려되었다. 국제재판소에 제소할 것이라는 프리포트의 위협 후 일년여에 걸쳐 진행된 협상에서 조코위 정부는 승리를 거두었다. 프리포트는 90%에 이르던 지분을 49%로 축소하고 이를 인도네시아 정부에 양도하기로 합의했는데, 그에 대한 대가로 2041년까지 채굴 허가 연장을 얻어냈을 뿐이다.
프리포트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조코위 정부의 다음 목표는 니켈이었다. 전기차 산업 확대에 따라 니켈의 전략적 가치가 증가하자 정부는 2019년 원광 수출금지라는 광산법을 실행에 옮겼다. 이는 곧바로 무역 마찰을 일으켜 유럽연합은 이 정책을 WTO에 제소했다. WTO는 인도네시아의 광물 수출 규제가 국제 무역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시했으며, IMF 역시 수출 제한 조치의 단계적 폐지를 권고했다.
이에 굴하지 않은 채, 조코위 정부는 분쟁 소송의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출 제한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리라는 의지를 천명했다. 여기에는 정부의 행보에 대한 국내의 강력한 지지가 한몫을 했다. 소송을 통해 시간을 끌면서 국내에 제련 시설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전략적 고려 역시 작용했다. 또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단호한 태도에 놀란 외국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전기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했다는 사실은 자원 민족주의 정책의 효과에 대한 확신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조코위 정부는 석탄, 보크사이트, 구리 등 다른 자원에 대한 수출금지 정책을 추진할 계획을 발표했다.
조코위 정부의 강력한 자원 민족주의 정책은 풍부한 자원을 활용한 경제 개발이 가능할 수 있으리라는 인식을 확대했다. 또한, 자원에 대한 주권적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국가적 자긍심과 경제 발전에 대한 자신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시각을 바꾸면 다른 해석 역시 가능하다.
우리를 포함한 외국기업의 관점에서 볼 때, 인도네시아의 자원 민족주의 정책은 법적, 제도적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불공정한 경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제대로 된 투자와 사업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자의적인 정책 변화는 현지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부과함으로써, 경영상의 어려움을 가중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도네시아의 최근 정책은 자유주의 무역 질서를 위협하는 행보라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외부 압력에 대해 주권 국가로서의 권리를 내세우며 당당하게 대응하는 인도네시아의 모습에서 어떤 부러움을 느끼게 됨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 (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 (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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