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의 타임캡슐] 왜 영화나 신화를 '역사'라고 우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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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12-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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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상영되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보고 평을 써서 공개했다는 것을 신문 보도를 통해 알았다. ‘아픈 역사일수록 우리는 배우고 기억하고 교훈 삼아야 한다,’ ‘참으로 뼈아픈 역사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와 사회에 남긴 상처가 매우 크고 깊다,’ ‘불의한 반란 세력과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분노가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길 기원한다.’ 그가 남겼다는 문장들이다. 그가 영화 판도라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유명한 일화도 생각난다. 그가 한, 이 말 때문에 탈원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통계가 조작되어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어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예산이 낭비되고 적자가 크게 늘었는지 모두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영화 '서울의 봄' 스토리가 사실과 달리 크게 왜곡되어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는다는 비판도 있고, 어떤 학교에서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며 선생님이 학생들을 인솔하여 단체관람을 한다는 얘기도 있다. 사람을 선동하는 데 영화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한 사람은 김정일이었다. 조잡한 수준이라 해도 그는 역사와 영화를 적절히 섞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갔다. 영화를 보고 진짜 역사인 것으로 믿는 사람이, 혹은 믿는 척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 중에서는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하고 그리고 신념까지 갖게 하는 재미에 맛을 들이게 된다.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재미의 요소를 가미하여 만든 허구인 영화를 보고 ‘재미있었다’ 정도가 아니라  ‘뼈아픈 역사’라느니 ‘배우고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더 신이 난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허구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만들어 퍼뜨리게 된다. 사실의 바탕 하에 허구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효과적인 도구를 통해서.
 
유독 북한에서 이런 영화와 쇼가 발달한 것을 보면 북한의 체제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대한민국에서도 영화를 보고 ‘역사의 교훈’을 찾자는 말을 들으면 ‘민족성'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우자는 말이 한국에서도 나온 지 오래다. 김정일은 ‘역사를 배우는 것은 혁명을 더욱 힘차게 전진시키자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전임 대통령이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분노가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길 기원한다”고 하는 말과 유사하다. 선생님의 인솔 하에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는 영화 ‘서울의 봄’은 역사가 되어간다. 역사를 직시하고 분노를 느껴야 하고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혁명을 전진시키는 것이다. 
 
2017년에 ‘택시운전사’라는 영화가 나왔다. 1200만명 이상이 봤다 한다. 급기야 이 영화의 장면이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 드디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화와 실제를 구분하지 말라는 혹은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우라고 안내한 셈이다. 대한민국에서도 교과서는 혁명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 교과서에 영화를 등장시킨다. 영화를 믿으라는 암묵적 가르침이다. 


 
 



김정일이 영화광이었다고 한다. 그가 22세 때 벌써 선동부 영화 담당 지도원을 하면서 ‘꽃파는 처녀’를 제작 지휘했다 한다. 그의 영화 사랑이 오죽했으면 신상옥 감독과 영화배우 최은희를 납치해서 영화를 배우려고 했을까? 김일성이 인정할 만큼 대중선동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하고 영화 전문가라고 하는 김정일의 수준을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그가 납치한 최은희와 한국영화 ‘저 눈밭에 사슴이(1969)’를 함께 봤다 한다. 영화에서 최은희는 본처로 나오고 윤정희가 첩으로 나왔는데, 영화를 보면서 김정일은 최은희에게 “윤정희 때문에 힘들었을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한다. 악역을 잘 소화해낸 배우가 시장에 가면 욕설과 돌이 날아온다는 그 수준을 김정일에게 보았다며 최은희는 탈출한 후에 털어놓는다. 몇 년 후에 김정일은 ‘남조선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배우라 칭송’했던 그 윤정희를 동유럽 유고에서 유인하여 납치하려다 실패로 돌아간다. 이런 수준의 사람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며 떠받들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이 지금도 국회에 적어도 수십 명이 된다 한다. ‘친지김동’의 가르침인 문화를 통한 선전 선동으로 혁명 완수를 높이 받들었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지도자로 모셨던 사람은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이 영화를 보고 “불의의 역사에 대해 분노”를 느끼라고 선동하고 있다. 이들의 수준이 김정일의 수준과 얼마나 다를까? 백주 대낮에 사람을 납치해서 밀실에 가두어 놓고 언젠가는 그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사이코 영화가 있었다. 그 수준일까?
 
북한 학자들이 쓴 논문집들을 본 적이 있다. 논문의 처음부터 수령 훈시를 인용한다. 모든 논문이 중간 중간에 수령님의 말씀이 들어간다. 별 해괴한 논문들이 다 있다. 1992년 김일성은 단군전설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라고 지시하였다. 단군릉이라는 묘비가 세워진 무덤을 파보라는 구체적인 과제도 김일성이 내린다. 1년 후 노동신문은 평양인근의 무덤에서 5천년 전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며 이는 단군이 분명하며 김일성의 ‘천리혜안’의 예지라고 했다. 단군능의 발견과 함께 민족의 뿌리는 평양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나아가 대동강 유역은 인류 고대문명의 발상지이고 대동강 문화는 세계 5대문명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현대인의 턱의 돌출 정도를 표시하는 얼굴 각이 현대인은 84.7도이고 우리 조상은 84.5도이므로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시작했다는 본토기원설을 주장했다. 김정일이 말한 대로 ‘역사는 혁명을 전진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고 역사는 창작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교과서도 확고한 목적을 갖고 혁명을 전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의 내용이 역사책에 등장하고 영화의 기억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재구성된다. 이런 지적 수준에서 원전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를 보고 감동받아 역사를 다시 쓰자고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포기하고 태양광, 풍력 발전 정책을 밀어붙인다. 당연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거기에 등장하는 것이 조작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 통계 조작이 넘쳐났다. 신화와 과학을 구분 못한 탓이다. 지적 수준 탓이다. 영화와 역사를 구분 못하니. 영화를 보고 흘렸다는 문재인의 눈물에 감동받아 따라 울었던,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 수준은 북한의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나라 역사교육 수준이 이 정도이고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이러니 영화를 역사라고 우기고 신화를 역사라고 우기는 것이 가능했을 것 같다. 역사왜곡과 조작이 일상화 되어있다. ‘정의기억연대’는 그들의 기억만이 정의라고 하며 역사 조작을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이를 ‘역사벤처사업’이라고 이름 붙였다. 역사가 국민들의 눈높이에 따라 만들어진다면 이 사업은 계속 번창할 것이다.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도 지배한다’고 했다. 이 신념이 국민들의 기억을 조작하고 역사를 날조한다. 영화와 신화를 역사라고 우기면서 단군의 유골이라고 우긴다.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취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죽게 된다고 떠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외국에 숨겨 놓은 돈이 수백조원이라고도 했다. 이런 우리나라는 과학이 아닌 신화 속에 살고 있다. 인류의 세계는 신화의 시대에서 권위의 시대로 그리고 실증과학의 시대로 발전해왔다. 200년 전에 프랑스의 사회학자가 한 말이다. 21세기도 중엽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실증과학의 시대에서 신화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부끄럽게도.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학교 (주)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굳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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