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형 흑자가 4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수출·생산 등 지표는 다소 살아나는 모습이다. 다만 고유가 악재에 고용 둔화 조짐까지 우리 경제의 저성장 국면 탈출을 막는 걸림돌은 여전하다.
이 같은 기조가 지속된다면 간신히 2% 수준을 유지하던 잠재성장률이 1%대로 주저앉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생산·수출 지표 회복…불황형 흑자 벗어날까
4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전산업 생산(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 지수는 112.1(2020년=100)로 전월 대비 2.2% 늘었다. 이는 2021년 2월(2.3%) 이후 30개월 만의 최대폭 상승이다. 특히 반도체 생산이 전월보다 13.4% 늘어나며 기대를 안겼다.
무역수지도 점차 개선되는 모습이다. 15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다가 6월 이후 4개월째 흑자를 보이는 중이다.
다만 수출과 수입이 동반 감소하며 발생한 흑자인 만큼 '불황형 흑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감소폭이 줄고는 있으나 수출은 12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줄고 있다.
수출 증가세 전환이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 국제 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무역수지가 다시 악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산유국 모임인 OPEC+가 원유 감산을 연장하기로 하면서 배럴당 80달러 중반대였던 두바이유 가격은 90달러대로 치솟았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하반기 중국 리오프닝과 이에 따른 수출 증가로 올해 '상저하고'를 예상해 왔지만 중국 내부의 부동산 문제 등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수출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장 0%대로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정부 예상인 1.4%에는 못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용 둔화에 소비 위축까지…내년도 위태
'수출로 먹고살던' 우리나라가 올 들어 '수출·소비로 먹고사는 나라'가 된 점도 우려스럽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수출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총생산(GDP·계절조정계열 기준)에서 민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분기 45.8%에서 올해 1분기 47.5%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수출 비중은 46.3%에서 44.5%로 줄었다.
그나마 호조를 보이던 소비도 갈수록 주춤하다. 2분기 민간 소비는 준내구재와 서비스를 중심으로 줄어들며 전기 대비 0.1%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민간 소비 증가율을 상반기 3.0%, 하반기 1.0%로 하향 조정했다. 연간 전망치도 올해 2.3%에서 2.0%, 내년 2.4%에서 2.2%로 기대를 낮췄다.
한은은 고용 여건과 소비 여력이 점차 회복될 것으로 보지만 실제 수치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올 들어 30만~40만명대를 유지하던 월별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지난 두 달 연속 20만명대에 그쳤다.
경제 성장으로 고용이 늘어난 수준을 보여주는 고용탄성치도 올해 0.312로 지난해(1.153)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고용탄성치가 작으면 취업자 수가 경제 성장 속도에 비해 더디게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마저 올해 성장률 1.6%, 취업자 증가율 0.5%를 기준으로 산출한 것인데 이미 성장률 전망치가 내려간 터라 고용탄성치도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내년 고용 여건도 올해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 침체와 소비 위축 등 여파로 취업자 증가세를 이끌던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고용이 위축될 수 있는 탓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년 제조업·건설업은 취업자 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나 서비스업 취업자 수 증가세는 둔화할 것"이라며 "(고용 여건이) 전반적으로는 약화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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