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청년층 新개념 여행법…'특산물 교환'으로 분위기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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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기자
입력 2023-10-0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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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 통해 원하는 지역 친구 구해

  • 시간·돈 절약...'고효율 여행'이 대세

  • '집 교환'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범죄 악용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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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 공유된 '특산물 교환' 사례들. [사진=웨이보]

올해 국경절 연휴(9월 30일~10월 6일)를 맞아 중국인들의 '여행 온도'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국경절 연휴는 춘제(春節·중국의 설)와 함께 일주일 동안 쉬는 중국의 최대 연휴다. 올해는 중추절(中秋節·중국의 추석)이 겹쳐 휴일이 예년보다 하루 더 늘어난 데다 위드코로나 전환 이후 처음 맞는 국경절 연휴인 만큼 열기가 더욱 높아졌다.

중국 문화여유부는 이번 8일간의 황금연휴 기간 중국 내 관광객이 8억96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보다 86% 폭증한 수준이다.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철도 등 각종 이동 수단의 하루 이용량도 역대 최고치를 줄줄이 경신 중이다. 중국 교통운수부에 따르면 이 기간 이동 인구는 20억5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전역이 여행 열기로 가득한 가운데 청년들 사이에선 새로운 여행 방식이 뜨고 있다. '특산물 교환'이 바로 그것이다. 국경절 성수기를 맞아 천정부지로 치솟는 여행 물가에 직접 여행을 가는 대신, 특산물 교환을 통해 여행 분위기만 낸다는 것이다.
 
“특산물 교환할 ‘랜선 친구’ 구해요”
# 후이저우(惠州)시에서 일하는 간호사 A씨. 직업 특성상 연휴에도 장기간 휴가를 갈 수 없던 그는 우연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 올라온 특산물 교환 관련 게시물을 접하게 됐고, 곧바로 특산물을 교환할 ‘랜선 친구’를 구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의 병원 사물함은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허베이(河北), 산둥(山東) 등 중국 각지에서 날아온 현지 먹거리로 가득 찼다.
 
# 베이징시에 사는 허난(河南) 출신 직장인 B씨. 베이징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특산물 교환을 통해 베이징의 문화를 알리기로 결심했다. 베이징 전통 위에빙(月餅·월병) 전문점 다오샹춘(稻香村)의 위에빙, ‘없는 게 없는’ 베이징 골동품 시장 판자위안(潘家园)에서 구매한 나무 빗, 베이징 올림픽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며 명실상부 베이징 마스코트로 자리 잡은 빙둔둔(冰墩墩)의 굿즈 등등. 그는 정성스럽게 포장한 베이징 특산물을 하루에 많게는 4곳으로 부친다.

지난달 중국 시사잡지 신주간에 소개된 특산물 교환 사례다. 베이징청년보에 따르면 올해 여름부터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특산물 교환이 최근 황금연휴를 맞아 다시 인기몰이 중이다.
 
특산물 교환(互換特產)이란 SNS를 통해 만난 두 사람이 서로가 사는 지역의 특산품을 주고받는 문화를 일컫는다. 특산물을 교환하기 위해서는 우선 SNS에 게시글을 올려 교환 상대를 구해야 한다. 무엇을 얼마만큼 보낼지는 서로 상의해 결정한다.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특산물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바로 발송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보통 200~300위안어치의 특산물을 보내는 것이 ‘암묵적 룰’이다.
 
국토가 넓은 만큼 지역별 특산물이 지닌 특징이 분명하기 때문에 기호에 따라 원하는 지역도 극명하게 갈린다.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고 싶거나 다양한 열대 과일을 맛보고 싶은 이들은 윈난(雲南)과 하이난(海南) 같은 남쪽 지방을 선호하며, 네이멍구(內蒙古)와 신장(新疆)같이 목축으로 유명한 북쪽 지방은 육가공품 애호가들에게 인기다. 쓰촨(四川), 후난(湖南), 광둥(廣東) 등 음식 문화가 발달한 지역에서 사는 이와 특산물을 교환할 때는 향신료를 받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 지역 특유의 레시피로 담근 장이나 장아찌를 보내기도 한다.
 
시간·돈 절약...'고효율 여행'이 대세 
배송 문화가 발달한 중국에서는 온라인으로도 손쉽게 전국 곳곳의 특산물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지에 사는 친구가 엄선한 특산물을 받으면 그곳을 여행한 기분이 든다는 것. 이 점이 특산물 교환의 가장 큰 인기 비결이다. 투자한 시간과 비용 대비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백과사전 사이트 바이두바이커에 등록된 여행 관련 신조어 ‘특전사 여행(特種兵式旅遊)’과 ‘스탬프 찍기 여행(蓋章式旅遊)’만 봐도 중국 청년들의 여행에 대한 인식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특전사 여행은 특전사처럼 빠른 속도로 단시간에 최대한 많은 관광지를 방문하는 여행을 뜻하며, 스탬프 찍기 여행은 말 그대로 관광지에서 방문 도장만 찍고 바로 다음 관광지로 이동하는 여행을 말한다. 바쁜 일상 속 청년들이 '고효율의 여행'을 추구하면서 탄생한 신조어들이다. 여기에 이제 특산물 교환까지 신조어로 등록되었으니, 여행에 최소한의 투자도 사치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더욱 늘어난 셈이다.
 
청년층에게 익숙한 ‘블라인드 박스(盲盒)’ 형식이라는 점도 특산물 교환이 유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블라인드 박스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중국 청년층 사이에서 일종의 놀이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블라인드 박스는 말 그대로 박스를 열기 전까지 내가 산 물건이 뭔지 알 수 없는 상품을 뜻한다. 블라인드 박스의 인기가 식지 않고 계속되자 장난감, 화장품, 전자제품, 편의점 도시락 등의 마케팅 수단으로도 꾸준히 쓰이고 있다. 낯선 이와의 거래라는 점에서 특산물 교환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망설이게 될 수 있는데 '특산품 블라인드 박스'라는 친근한 키워드가 붙으면서 이런 단점을 상쇄했다.

또한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택배 상자를 개봉하고, 그 반응을 영상으로 찍어 공유하는 문화 역시 놀이처럼 번지면서 특산물 교환 열풍은 더욱 뜨거워졌다.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훙수에는 특산품 교환 관련 게시글의 누적 조회 수가 5000만건을 돌파했고, 중국판 틱톡 더우인에도 좋아요 30만개 이상을 받은 관련 숏폼 영상이 등장했다. 생면부지인 사람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특산물 교환의 매력으로 꼽힌다. 빠르고 차가운 도시의 삶에 지쳤던 청년들은 특산물에 깃든 추억과 사연을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위로를 얻는다고 입을 모은다.
 
'집 교환'까지 뜨면서 범죄 악용 우려도
특산물 교환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에는 '집 교환'도 새롭게 떠올랐다. 연휴 기간 숙박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르자, 서로의 집을 교환해 여행지에서 숙박을 해결한다는 취지다. 다만 특산물 교환이 집 교환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전문가들은 개인정보 유출 등 범죄악용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특산물 교환 역시 여러 부작용이 따른다. 한쪽이 택배를 받고 연락을 끊어버리거나 사전에 얘기한 것과 다르게 무성의한 특산물을 보내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SNS에는 "송장 번호를 알려주자마자 차단당했다", "택배 상자가 묵직해서 기대했는데 지역 특산품으로 볼 수 없는 밀가루 네 포대가 담겨 있었다" 등의 피해 후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스훙쥐(史洪举) 허난성 인민법원 판사는 특산물과 집 교환이 유행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거나 금지해서는 안 된다”며 “이러한 사회 문화에 발맞춰 위험 알림을 제공하는 등 법적 보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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