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G20의 주연으로 부상한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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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3-09-1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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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주말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주인공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였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불참하면서 모디 총리는 글로벌 사우스를 대표하는 역할을 독점하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아프리카연합 승인과 같이 강대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을 다자외교에서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그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였다.
인도의 외교적 수완이 가장 잘 반영된 사례는 뉴델리 지도자 선언이다. 올해 2월 벵갈루루와 7월 간디나가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공동성명이 채택되지 않아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불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인도가 의장국으로서 적극적 중재에 나서 회의 첫날에 선언이 발표될 수 있었다.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인도는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작년 발리 정상선언과 달리 올해 선언에는 러시아를 명시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전쟁 명칭도 미국과 나토가 선호하는 ‘러시아연방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라 러시아가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표기되었다. 작년에 화상으로 참석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번에는 초청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를 배려하려는 인도의 의지가 관철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국가 정부 연합체인 아프리카연합이 지역연합으로서는 EU에 이어 두 번째로 영구적인 정회원 지위를 부여받은 것도 글로벌 사우스의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장기적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외교력의 원천은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에서 나온다. 한편 인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협의체인 4자 안보대화(속칭 쿼드)와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 EU,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발표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계획이 실현되면 인도의 영향력은 중동,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도는 중국이 주도하는 브릭스와 상하이협력기구 회원국이다. 중국이 가장 많은 재원을 부담하는 다자개발은행인 신개발은행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최대 수원국은 인도다. 지난달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인도는 분쟁지역인 라다크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을 조기에 철군하도록 중국을 설득하는 데도 성공하였다.

빠른 경제성장도 글로벌 차원에서 인도의 위상과 비중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무역전쟁,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 경제성장률이 5%대 이하로 주춤하는 사이 인도 경제는 6% 이상 성장하고 있다. 작년 영국을 제치고 세계 5대 경제대국에 진입한 인도는 10년 내에 4위 독일은 물론 3위 일본까지 제칠 수 있는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4월 유엔경제사회처는 인구수에서 인도가 중국을 추월했다고 발표했다. 약 14억2575만명인 인도 인구는 2064년에는 17억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인구구조다. 인도의 평균 연령은 28세로 중국 평균 연령 39세보다 10세 이상 낮다. 따라서 생산가능인구(15세 이상 65세 이하) 측면에서 인도가 중국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 물론 이러한 장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도가 부정부패, 문맹률, 빈부 격차, 종교 갈등 등 난제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진영을 넘나드는 인도의 광폭 외교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인도가 규칙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존중하기보다는 자국의 실리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글로벌 스윙 스테이트(global swing state)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작년 9월 14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인도만 IPEF 네 분야 협상에 모두 동의하지 않았다. 무역자유화가 경제적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도는 가장 중요한 분야인 무역 협상에서 빠졌다. 또한 인도는 미국과 EU가 제재하는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하고 있다. 인도의 러시아산 무기 수입도 양국 간 갈등 요인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첨단 무기 수출을 허용했지만 미국은 인도에서 러시아산 무기 비중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점에 불만을 품고 있다. 이러한 일탈 때문에 인도를 신뢰할 수 있는 동맹으로 대접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힌두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미국이 우려하는 사항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인도는 국호를 영어로 인디아(India)가 아니라 바라트(Bharat)로 표기하였다. 힌디어로 인간이 사는 대지를 의미하는 이 단어를 대외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소송은 2016년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된 바 있었지만 모디 총리는 글로벌 외교 무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정치적 노림수가 숨겨져 있다. 첫째는 힌두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모디 총리의 바라티야자나타당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전체 인구 중 약 80%가 힌두교 신자라는 점에서 국호 변경은 집권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인디아라는 명칭에 배태되어 있는 영국 제국주의의 역사적 유산을 청산하는 것이다. 식민주의 극복은 글로벌 사우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

중국과 관계도 아주 순탄하지만은 않다. 인도는 중국이 주도했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이 타결되기 직전인 2019년 11월 탈퇴하였다. 또한 인도는 지난 7월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담에서 이란과 함께 일대일로 구상을 지지하지 않았다. 인도로서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파키스탄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인도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해온 세계 무대에 조연으로 남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인도가 미·중 전략경쟁의 균형자를 넘어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추구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면 향후 세계 질서는 미·중 양극 체제가 아니라 미·중·인 삼극 체제로 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인도에 대한 전략을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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