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현대판 경제전쟁은 사람의 '두뇌'가 결정한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입력 2023-06-29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얼마나 되었을까.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매점의 여러 곳이 무인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몇 년 전에 중대형 마트에 셀프 계산대가 도입되어 몇 번 사용해 본 적은 있지만 학교 매점에서 늘 마주치던 얼굴들이 안 보이니 새삼 변화가 느껴진다. 여느 건물 주차장이나 고속도로 통행료 계산도 기계가 하고 있고 전국 어디를 가나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은 거의 보기 어렵다.
 
생산과 소비의 합리적 결정 원리와 자원의 최적 배분을 연구하는 경제학에서 생산은 생산함수와 생산요소를 통해서 설명된다. 주요 생산요소는 자본과 노동이고 토지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신성한 사람의 노동을 생산요소, 인적 자본이나 인적 자원 등으로 부르는 것이 옳은가 등은 논외로 한다). <토지경제학> 저자인 전강수 교수는 경제학에서 토지가 생산요소에서 빠지게 된 것은 지주들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19세기 후반 미국인 사상가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부동산 투기가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하므로 토지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헨리 조지의 이론에 불안해진 지주들과 한계생산력 이론 주창자인 클라크(John B. Clark) 등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조지의 주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토지를 자본의 한 형태로 흡수해 버렸고 그 뒤로 토지는 경제학의 연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토지가 사라진 뒤 두 생산요소인 자본과 노동은 종종 대립적인 개념으로 남게 되었다.
 
자본과 달리 노동은 사람이 주체로서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인권 등 여러 면에서 다중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분야에 따라 필요한 노동도 천차만별이다. 경험이 많은 숙련 노동을 선호하는 분야도 있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도화된 기술 인력이 필요한 분야들도 있다. 매점, 톨게이트 등에서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고 공장에서는 자동화와 인공지능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노동에 대한 수요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미스 매치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첫 번째 미스매치는 반도체 등 전문 기술 인력이 부족한 경우다. 둘째는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기는 어려운데 작업 환경이 좋지 않아 사람들이 기피하는 분야들이다. 조선소와 건설업 등 현장 인력을 예로 들 수 있다.
 
세계 최저인 합계출산율 0.8 이하, 혼인율 감소 지속 등으로 한국 인구는 줄기 시작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전문성이 높은 기술 인력과 소위 3D 업종의 인력 부족은 인구 증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인구 감소를 역전시키는 대안도 어렵다지만 인력의 미스매치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기술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퇴직한 기술 인력들을 재고용하는 방법을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최근 반도체 분야에서 퇴직한 전문가가 특정 국가에서 기술 유출로 의심되는 활동을 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왜 한국에서 퇴직한 인력을 중국은 필요로 할까. 불과 몇 달 전에 반도체학과 증원 등 반도체 기술 인력 부족 대책이 논의되었지만 필요한 기술 인력이 당장 공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퇴직 인력의 재고용은 우리와 여러 산업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대응책이기도 하다.
 
한국이 그랬듯이 중국도 일손이 많이 필요한 제조업을 경제 발전의 전략으로 삼은 후에 기술 인력 양성에 힘을 써왔다. 중국의 제2건국을 주도한 덩샤오핑은 자신이 젊은 날 프랑스 등 유학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인재 유출 등 유학 반대론을 무릅쓰고 젊은 중국 청년들을 유학 보내면서 “그대들은 어디로 가든 중국인임을 잊지 말고, 많이 배워서 조국에 기여하기 바란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세계 곳곳의 화교 조직과 함께 넘쳐나는 중국 유학생들이 중국으로 돌아와 중국의 발전을 이끈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중국은 기술 습득을 위해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였고 주요 외국 기업을 M&A하였다. 2000년대 초 한국의 최대 철강회사인 P사가 중국 투자를 타진했을 당시 내가 만난 중국 관리는 “중국은 범용 기술은 필요 없다. P사가 고급 기술을 가져오면 받아 주겠다”고 했다. 철강공장의 각종 첨단 장비는 오스트리아 등에서 돈을 주면 살 수 있다. 부족한 기술은 유학 간 중국 학생들을 불러들이고 한국의 퇴직 기술 인력을 중국에 재취업시키면서 채워 나갔다.
 
최근 반도체 기술 유출 문제 등이 터지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문제가 생기면 경제학자는 왜 그런가 하면서 원인을 찾아 대책을 연구하지만 정치인과 법학자들은 법령을 강화해서 처벌하는 것을 대책으로 삼는다. 처벌을 강화해도 금주령은 실패한다. 기술유출방지법을 강화하고 공장 건물을 출입할 때 USB 검사를 철저히 하더라도 사람 머릿속까지 단속하기는 어렵다. 경제적 유인이 있는 곳은 사람들이 움직이게 마련이다. 전문가를 우대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기술 인력 부족에 대한 근본 대책이다.
 
둘째, 현장 인력 부족 문제를 외국인 인력 고용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일부 직종에서 인력 부족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니 이해할 수 있다. 자본이 국가 간에 자유롭게 이동하듯 인력의 자유 이동도 국제적 자원 배분의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외국인에 대해서 폐쇄적 정책을 유지하던 일본도 최근 일손 부족 문제가 심해지자 전향적인 자세로 전환하고 있다. 우리도 어느 정도 외국인 인력 고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외국인 인력 고용 확대 정책은 여러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신중히 추진하여야 한다. 외국인 고용 확대는 출입국 관리, 근로조건과 주거 등 사회적 문제들에 더해서 연금과 건강보험 문제 등까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외국인 인력의 고용 수준, 각종 처우와 다문화 문제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대책을 관련 부처들이 마련하여야 한다. 그와 동시에 한국의 미래 산업구조와 사람들이 기피하는 업종의 적정 규모에 대해서도 고민하여야 한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최근 발생한 기술 유출 문제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중국이 인구 15억명과 G2의 경제력을 가졌다고 하지만 중국 23개 성(省) 평균 인구 수준인 5000만명의 우리 기술 인력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판 경제전쟁은 사람 숫자가 아니고 사람 두뇌가 결정한다. 기술을 우대하고 창의를 존중하는 소프트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자권 용어인 교육(敎育)은 가르치고 훈육한다는 뜻일까? education이 라틴어 어원으로 e+ducare이고 자신의 잠재력을 밖으로(e) 끌어낸다(ducare)는 뜻이라고 한다. 과거에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을 전수하는 것만으로는 문명과 경제의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미래의 세계와 산업과 문명의 창달을 위해서는 젊은 창의가 활짝 피워 나오도록 어른 세대들이 교육하는 방식부터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나부터 반성해 본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