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한·중 관계, 새로운 기준점 설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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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교수/중국학
입력 2023-06-1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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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지난 수년간 지속된 사드 사태의 후유증을 극복하면서 시진핑 3기 체제의 중국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보려는 순간 암초를 만났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야당 대표를 관저로 초청한 자리에서 한국 외교정책에 대한 불만을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입장문’ 형식으로 쏟아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에도 제공되고 주한 중국대사관 홈페이지에도 발표된 이 내용은 중국 정부의 대한국 인식이 그대로 투영돼 있어 사안이 간단치 않다. 양국 정부도 서로 주재 대사를 초치해 각자 항의를 전달하는 등 논란이 일파만파다.

미·중 갈등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나라는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협박조로 시작된 이 입장문에는 한국이 중국몽(中國夢)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훈시에 가깝다. 여기에 북한도 거부한 북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쌍중단(雙中斷)을 다시 강조하고, 국제주의 원칙에 의거한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언급을 내정간섭으로 비판했다. 또 20여 개국이 각국 인·태 전략보고서에 중국 견제를 명시했지만, 중국을 ‘주요 협력국 중국’으로 기술한 한국의 고충과 입장을 무시한 채 한국의 대중 무역적자도 탈중국 때문이라면서 모두 미국에 경사된 한국 정부 책임이니 알아서 하라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중국 정부를 대표해 우리나라에 주재하는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절대 개인적인 의견일 수 없다. 게다가 외교 일선에서 활동하는 대사가 야당 대표를 불러 거의 일방적으로 중국의 입장을 피력하고 이를 공표하는 것은 외교적 관례를 무시하고 주재국 정부를 패싱한 외교적 결례다. 그동안 싱 대사의 광폭 활동을 지켜보던 한국 정부도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 우리 외교부는 싱 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 금번 언행은 한·중 우호의 정신에 역행하고 양국 간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태도이며 한국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간섭에 해당될 수 있음을 강력히 지적했다.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중국 외교부는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 내용은 책무 내 행동으로 잘못된 게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는 외교사절의 우호 관계 증진 임무를 규정한 빈(비엔나) 협약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정부가 국제규범을 언급한 것은 이번 언행들이 결국 중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여론전과 심리전을 통한 국내 정치의 갈등 유발은 물론 국제적인 한국 위상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외교 문제에 접근하면 자칫 외교적 불청객, 즉 환영하지 않는 인물로 분류돼 외교 관계의 파국을 상정하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우회 경고이기도 하다.

사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한국 정부의 대외 정책에 대한 중국의 응축된 우려와 불만에 기인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현 정부는 지난 정부의 남북 직접 소통과 중국 역할론에 대한 기대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북핵 위협으로부터 한국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한·미동맹 강화를 천명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다. 자연스럽게 한·미·일 삼각 공조가 공조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한국의 국제사회 역할 확대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결국 중국이 지금 한국의 대미 경사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한반도 문제에서의 건설적 역할’ 강조가 무의미해짐을 인지한 상황에서 조급함을 드러낸 것이다.

올해 들어 양국 간 고위급 교류가 실종된 가운데 중국은 지난 5월 31일 한국을 방문한 류진쑹(劉勁松) 외교부 아주사장(亞洲司長/아주국장)을 통해 한·중 관계에 관한 기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한국의 입장과 관계없이 '핵심 이익'을 건드리거나 한국이 친미·친일 일변도 외교 정책으로 나아갈 경우 양국 협력이 불가하며, 현재와 같은 한·중 관계 긴장 지속 시 고위급 교류가 어렵고, 악화한 정세 아래 한국의 대북 주도권 행사 불가 등을 언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 날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국을 향해 현재 한·중관계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듯이 한국의 입장 전환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외교는 상대가 있는 양자 또는 다자관계다. 일방적으로 자국 입장만 강변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점에서 중국도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이 처한 최대 위협인 북핵·미사일 문제는 한·미의 강압 정책 때문이라며 한국과 대화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도 내년부터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으로 활동을 시작해 북핵·미사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릴 것이다. 중국은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397호에 따라 북한 수출이 금지된 대형 냉장·냉동 장치를 수출해 스스로 결의안을 위반했다. 더 이상 북한을 두둔하고 러시아와 더불어 안보리를 무력화하면 한국의 공간은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한·중 관계 경색의 모든 책임을 한국 정부에 돌리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적어도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일차 목표가 미국의 대중 압박에 앞장서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안보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신들만의 우려를 강조하면 이른바 중국 '전랑(戰狼)‘ 외교의 본격화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악화일로인 한국의 반중 여론을 제고시켜 관계 개선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중국이 그토록 원하지 않는 한국의 대미 경사 강화 및 한미일 삼각 공조를 강화시키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중국도 예전의 중국이 아니라고 강조하듯이 한국도 예전의 한국이 아니다. 양국이 서로의 한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 요구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도 있듯이 양국이 보다 호혜적인 입장에서 소통을 통해 새 기준점을 찾아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를 발휘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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