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전민 전 중국 외교부 부부장 전격 인터뷰] "한·중 관계, 수교 이후 최대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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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기자
입력 2023-06-0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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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일과 공조만 강화하는 한국…다른 국가와 협력 등한시 안돼

  • 양국관계 시험하는 말 자제…30년 협력 바탕 미래지향적 관계로

  • 민간교류 확대로 양국 거리 좁히고 한·중 수교 때 정신 이어가야

류전민 전 중국 외교부 부부장 [사진=유엔사무국 사이트]

“현재 한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말이다. 만약 한국이 한·미·일 공조 강화만 중요시하고 다른 국가와의 협력을 등한시한다면 한국은 발전을 잃어버린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류전민 전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유엔 사무차장 등을 지내며 약 40년간 중국 외교부에 몸담은 ‘외교계 거목’이다. 유엔 주재 중화인민공화국 대표부 등에서 근무하며 교토의정서와 파리협정을 포함해 기후변화 협상에 깊이 관여했으며 지역 및 세계 문제 발전과 협력을 촉진하는 데 전념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만난 류 전 부부장은 한국 정부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외교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 복합 위기가 몰아치며 전 세계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직면한 가운데 어느 한 세력에 기대어 패권 싸움을 벌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는 2013~2017년 외교부 부부장 재임 시절 한·중 간 활발한 교류를 주도했으며 한국 외교부와의 친분도 깊다. 이번에 제주포럼 참석자 방한한 류 전 부부장은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한국을 각별히 친근하게 느낀다”며 지난 3년간 팬데믹으로 인한 양국 교류 단절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인문 교류 확대로 양국 국민 간 거리를 좁히는 등 민간 교류 활성화에 기대를 드러내면서도 “양국 정부 관계자 간 대화에서 한·중 관계를 시험하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며 정부 역할을 강조했다.

류 전 부부장은 국제사회에서 패권·패도·집단 따돌림 행위 등의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서도 중국은 언제나 세계에 문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계속해서 평화·발전·협력·상생의 가치를 높이고,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서 진정한 다자주의와 인류의 공통 가치를 실현할 것”이라며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방형 세계 경제 건설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정부 역시 “지역의 평화·안정·발전을 수호하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류 전 부부장과 일문일답한 내용.
 
-미·중 경쟁 심화 속에 현재 한·중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억제와 포위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한·중 관계는 방해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한국이 미·중 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설 것을 요구한 적이 없다. 한국이 대세를 확실히 인식하고 전략적이고 자주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대중·대미 관계를 균형 있게 잘 유지해야 한다. 지역의 평화·안정·발전을 수호하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외교부 부부장, 유엔 사무차장을 역임하면서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
"가장 최근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 경제·사회의 발전 성과와 한국 국민의 우호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있나.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해 있는 한국과 중국은 각자 독특한 관습을 지닌 동시에 비슷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중 양국 모두 다자주의를 견지하고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체계와 국제법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힘쓰고 있으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안정·번영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내가 한국과 깊은 인연을 이어가며 한국을 각별히 친근하게 느끼는 배경이다."
 
-현재 국제 정세를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 전 세계는 100년 만에 대격동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도전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평화·발전·협력·상생의 역사적 추세는 막을 수 없으며 이는 민심이 지향하는 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세계는 변화와 혼란에 처해 있다. 경제의 취약성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정치적·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글로벌 거버넌스 부재가 심각해지는 등 여러 위기가 중첩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세력에 기대어 약한 자를 괴롭히거나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등 패권·패도·집단 따돌림 행위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국제 정세의 수많은 불안정과 불확실성에 맞서 중국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미국의 이른바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협력 효과를 상쇄하고 역내 국가들이 수십 년간 공동으로 노력하여 이루어 낸 평화적 발전의 성과와 추세를 파괴하려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이런 행위는 실패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안한 인류 운명공동체 구축은 시대 흐름에 부합한다. 중국은 계속해서 평화·발전·협력·상생의 가치를 높이고,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서 진정한 다자주의와 인류의 공통 가치를 실현할 것이다. 또한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방형 세계 경제 건설을 추진할 것이다."

-향후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조언한다면.
"냉전 종식은 유엔 가입을 포함해 한국이 국제무대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계기였다. 당시 한국은 옛 소련, 동유럽 그리고 중국과 수교했다. 한·중 수교 후 31년 동안 한국 경제는 고속 발전을 이뤘다. 그 지표 중 하나가 바로 한·중 간 교역액이 한·일 간 교역액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한국은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현 정부의 비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31년 전 냉전 종식 후 새롭게 거듭나던 때를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한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다시 냉전 시대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말이다. 만약 한국이 한·미·일 공조 강화만 중요시하고 다른 국가와의 협력을 등한시한다면 한국은 발전을 잃어버린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한국 정부와 국민도 한·중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는다.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민간 교류 강화를 통해 양국 국민 간 거리를 좁혀야 한다. 특히 인문 교류 확대가 양국 간 이해 증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두르면 안 된다. 이번에 서울에 와서 느낀 건 생각보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그로 인한 심리적 두려움이 남아 있는 영향이 아닌가 싶다. 물가 상승 역시 걸림돌인 것 같다. 현재 숙박, 식음료 등 한국 물가가 팬데믹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긴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한·중 관계 발전에 양국 국민 지지가 중요한 만큼 관광·문화 등 교류가 서서히 확대되길 바란다."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가.
"양국 정부가 공통으로 관심이 있는 중대한 문제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한·중 수교 시 공동 성명 정신을 지키지 않으면 양국 관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하반기에 있을 양국 정부 관계자 간 대화에서도 한·중 관계를 시험할 수 있는 발언은 자제하길 바란다. 전반적으로 한국 정부와 국민은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한·중 관계, 동북아 정세 나아가 아시아의 발전을 바라보아야 한다.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아시아 국가들은 믿음을 가지고 정확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절대로 31년 전으로 후퇴하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중국 지도자, 정부, 인민은 한·중 관계 발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양국은 비슷한 문화와 전통을 공유하고 있으며 특히 30여 년 동안 협력의 기반을 잘 다져왔다. 지난 3년간 팬데믹으로 인해 양국 간 교류에 제약이 있었다. 이제 코로나 상황이 많이 완화됐으니 앞서 말한 것처럼 인적 교류가 활발해졌으면 한다. 이를 위해 한국 국민도 정부가 더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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