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만여 사업장서 사망재해사고'0건'…선제 위험평가 '신의 한수'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울산=조현미 기자
입력 2023-05-30 14: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가보니

  • 7분 안전점검회의서 작업방법 논의·공유

  • 유해 위험요인 미리 도출해 사전에 차단

  • 외국인 통역 지원…특별 안전교육 강화

26일 오전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협력업체 금영산업 근로자들이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을 하는 가운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2번째 줄 왼쪽 세 번째)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2023.5.23

지난 26일 오전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뒷줄 왼쪽 셋째)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협력업체 금영산업 근로자들이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를 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정기 위험성평가에서 떨어짐 등 사고가 가장 많았습니다. 오늘 작업에서도 각별히 유의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비가 왔는데 현장 위험성평가에서 위험요소를 지적해 주실 분 있나요?"(작업팀장)
  
"수직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미끄러져 떨어질 위험이 큽니다. 위험 없이 이동해야 하겠습니다."(팀원) "좋은 지적입니다."(팀장)

지난 26일 오전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앞에 하청업체 금영산업 근로자 11명이 모였다. 이들은 7분가량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ool Box Meeting·TBM)'를 한 뒤 당일 작업에 들어갔다. TBM은 근무 현장 근처에서 작업팀장(반장)을 중심으로 작업자들이 모여 당일 작업 내용과 안전한 작업 방법에 대해 서로 확인하고 논의·공유하는 활동이다.
 
선도적 위험성평가제 도입···AI로 사고위험 예측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특히 고소·밀폐 작업 같은 고위험 작업이 많아 사고 위험이 크다. 무엇보다 안전보건관리에 관한 원·하청업체 간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사망 사고 70%가 하청업체에서 일어났다.  

HD현대중공업은 선도적으로 위험성평가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모범사업장이다. 위험성평가는 작업 중에 생길 수 있는 유해 위험요인을 도출해 허용 가능한 범위에서 위험성을 줄이는 활동을 말한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핵심 수단이기도 하다.
 
26일 오전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에서 협력업체 금영산업 근로자들이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을 하는 있다. 2023.5.23

지난 26일 오전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에서 협력업체 금영산업 근로자들이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를 하고 있다. [사진=HD현대중공업]


한영석 HD현대중공업 부회장(대표이사)은 "'안전 최우선' 원칙을 기반으로 중대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분기마다 안전경영위원회를 개최하고 안전·생산 심의위원회를 수시로 개최해 안전 최우선 가치가 위협받지 않게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3월에는 안전정책을 총괄하는 안전기획실과 현장 안전을 담당하는 각 사업부 안전 조직을 통합해 안전통합경영실로 개편했다. 최근엔 앞으로 5년간 안전 목표·전략·추진 사항을 담은 '비전 2027'을 마련했다.

작업 중에 위험요소를 발견하면 스마트폰이나 핫라인 전화로 '안전작업요구권'을 적극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안전작업요구권은 근로자가 위험요인을 발견해 신고하면 긴급복구반이 문제를 해결하는 HD현대중공업 제도다. 이날 금영산업 작업팀장도 "작업 중에 위험요소가 보이면 핫라인을 이용해 달라. 나도 이용해 봤는데 5분 안에 해결해 주더라"며 팀원들에게 안내했다. 

또한 지난 20년간 발생한 산업재해 자료를 학습한 인공지능(AI) 사고 유형별 발생 확률을 매일 예측해 각 부서로 전달하고 원·하청업체 근로자 모두 안내를 받는다.

이런 노력 덕분에 원청업체 근로자 1만2700여 명과 하청업체 소속 1만4000여 명이 근무하는 HD현대중공업 사업장엔 최근 1년간 근로자 사망 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26일 오전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통합안전교육센터에서 이준엽 HD현대중공업 상무가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들에게 안전지침을 설명하고 있다. 2023.5.23

지난 26일 오전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통합안전교육센터에서 이준엽 HD현대중공업 상무가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들에게 안전지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HD현대중공업]

 
27개국 외국인 근로자 대상 안전교육 강화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도 수시로 이뤄진다. 조선업은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높은 업종이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만 27개국 근로자 24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작업표준서와 위험성평가 내용을 중국어·베트남어·태국어 등 11개국 언어로 번역해 제공한다. 별도로 '외국인지원센터'를 운영해 한국어 교육과 행정 지원, 고충 상담 등을 하고 있다.

작업 현장과 동일한 시설과 장비를 갖춘 통합안전교육센터에서 교육도 실시한다. 새로 입사한 외국인 근로자에겐 이틀간 안전교육을 한다. 입사 7개월이 되면 국적별 4시간 안전교육과 반기 4시간 특별안전교육을 시행한다.

이날은 숙련기능인력(E-7)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를 상대로 안전교육이 이뤄졌다. 자국에서 용접자격증 등을 취득하고 입사한 지 7개월 된 태국·베트남 근로자들이 대상이다. 한국인 교관이 작업 중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하면 같은 국가 출신 통역사 2명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통역을 해줬다.
 

26일 오전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통합안전교육센터에서 베트남·태국 국적 외국인노동자들이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2023.5.23

지난 26일 오전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통합안전교육센터에서 베트남·태국 국적 외국인 노동자들이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HD현대중공업]


이준엽 HD현대중공업 안전통합경영실 상무는 "자격증이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숙련이 필요한 일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입국 후 1년가량은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통역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도 이날 기자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봤다. 이 장관은 "조선업은 모든 위험 가능성이 총망라돼 있는데 HD현대중공업은 대기업이자 글로벌 리딩 기업답게 위험성평가를 잘하고 있다. 창업주 정신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아무리 이익이 나도 재해가 많이 나면 그건 아주 가치 없고 삼류 국가의 4등, 5등 회사"라고 말할 정도로 안전을 강조했다.

새로 바뀐 위험성평가 방식에 대해 이 장관은 "이전 위험성평가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현실에 맞지 않았다"며 "현장에서 확인하니 새 평가 방식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평가 방식을 단순화하고 근로자 참여도를 높인 개정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고시)을 지난 22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본관 로비에 세워져 있는 현대그룹 창업자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흉상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본관 로비에 세워져 있는 현대그룹 창업자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흉상. [사진=HD현대중공업]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