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원칙에 기초한 당당한 통상 외교… 중견 강국 대한민국의 제 몸값 찾기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입력 2023-05-31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서진교 연구위원]




지난 주말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통상장관회의에서 공급망 분야 협상 타결이 선언되었다. 지난해 9월 미국 LA에서 IPEF 공식협상이 개시된 이후 12월 호주 브리즈번에서 제1차 공식협상이 개최되었으니, 협상 개시 6개월 만에 이룬 성과이다. 그러나 이번 공급망 합의에 대한 평가를 두고는 다소 혼란스럽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부 IPEF 참여국들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자극할지 몰라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이다. 때론 이번 합의에 중국이 반발할 만한 요소가 없고, 특정국 배제를 목적으로 한 내용도 없다고 애써 강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상대국인 중국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 10대 중견 강국인 대한민국으로서 입장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정찰 풍선’ 격추로 미-중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입에 발린 립서비스로 중국의 IPEF 공급망 합의에 불편한 감정이 없어질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앞으로 상당 기간 계속될 미-중 양국 간의 대결이란 긴 호흡에서 보면 단순 립서비스는 때론 부정적이기도 하다.

인위적으로 강조하는 모습은 오히려 의심을 키우는 법이다. 무슨 일이든 스스로 분명하면 애써 강조할 필요가 없다. 공급망의 일시적 단절로 고통을 경험한 산업이나 기업이 공급망 다변화 등을 통해 안정성과 회복력을 높이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의사결정이다. 이 과정에서 특정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위험관리(risk management) 측면에서 필수 조치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 모든 나라가 저마다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촘촘히 연결된 국제 분업 체계에서 어느 한 국가만의 힘으로 공급망의 회복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당연히 공급망 상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협력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 IPEF 공급망 합의로 나타난 것이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비단 인도 태평양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유럽연합(EU)도 지금까지의 역외 무역흐름을 조사하여 특정 국가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줄이려는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 IPEF 공급망 합의로 특별히 중국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중국을 의식하는 자체가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단지 중국도 원하면 언제든 IPEF에 참여할 수 있도록 IPEF의 문은 열려있다는 것만 언급하면 충분하다. 다행히 현재까지는 IPEF가 특정국을 배제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물론 향후 IPEF 내에서 특정국을 배제하거나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적극적으로 저지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미국의 의도와 어긋난다고 해도 더 큰 다자주의의 시각에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국익에 기초한 당당한 경제통상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원칙에 기초한 당당한 경제통상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미국이나 중국의 힘과 영향력을 무시하고 우리 국익만을 중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든 이치에 맞지 않는 무리한 요구는 때론 분명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과는 큰 틀에서 시장경제와 민주라는 가치에 기반한 굳건한 경제안보동맹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세부적으로 미국의 무리한 요구는 적절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미국 내에서 선진 대한민국으로서의 자리매김을 재정립하고 우리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중국의 미국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의 제재 이후 한국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아야 한다는 미 의원의 주장은 무리한 요구이자 설익은 주장이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에 한국도 참여하라는 요청이지만, 우리 국익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칫 한국 내 반미감정을 일으켜 중국의 동맹균열전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최첨단 반도체의 경우 군사용 전환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지만, 범용 반도체는 중국 자체 생산 공급도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가 동맹국의 이익을 해치는 동시에 효과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미 의원의 요청을 효과적으로 반박하며 일축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중국 내 우리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우리의 실리를 추구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반도체 공급 요구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최첨단 반도체는 군사용 전환 가능성을 이유로 일정한 제한을 둘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 양쪽에 할 말은 하는,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선진 대한민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제대로 된 몸값 찾기의 시작이다. 물론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편타당한 원칙에 입각한 당당함이 있는 한 역풍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상황도 나쁘지 않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의 문화 소프트웨어에 세계인이 감동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고조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과거 일극체제와 달리 양극체제에서는 그만큼 중견 국가와 동맹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개도국이 아니다. 중견 선진국으로서 당당히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위치에 올라와 있다. 다른 중견 동맹국들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존경받는 대한민국을 그려본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GS&J 인스티튜트 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