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비욘드 ESG] '꿀벌 지킴이' 자처한 세계 자동차업계…그들의 변신은 무죄일까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입력 2023-05-22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안치용 교수]




 
자동차 산업은 대표적인 탄소배출 업종이다. 제조과정에서 당연히 온실가스를 생성한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탄소의 모습은 주로 배기가스이다. 전기자동차가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 배기가스는 가시적이고 체감하는 대표적 탄소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비영리 연구단체 유럽수송환경연합이 지난해 9월 28일 발표한 ‘변장한 석유 기업 - 스코프3 의무 보고라는 탄소 폭탄과 투자자가 자동차 주식과 자동차 ESG 등급을 피해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자동차 산업이 온실가스를 어떻게 슬그머니 사회로 전가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보고서는 도요타, 폭스바겐, 르노-닛산-미쓰비시, 메르세데스-벤츠, 혼다, 포드, 현대기아차, BMW, 스텔란티스 등 9개 기업을 조사했다.
탄소 배출량을 산정하는 범위는 스코프1~3으로 나뉜다. 스코프1은 해당 기업이 공장 등을 가동해 직접 배출하는 범주다. 스코프2는 기업이 사용하는 에너지로 인한 간접 배출을 뜻한다. 스코프3은 간단히 에너지를 제외한 모든 간접 배출 범주이다. 스코프3에 흔히 ‘공급망’이란 용어가 따라붙는다.
보고서가 9개 자동차 제조사의 스코프3 탄소 배출량을 분석한 결과, 전체 탄소 배출량에서 스코프3 비중이 98%였다. 석유화학기업 엑손모빌 85%, 유통기업 월마트 80%, ICT기업 구글 58% 등에 비하면 현저하게 높은 수준이다. 우리가 체감하듯 자동차는 공장보다는 도로 위에서 내뿜는 탄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외부효과=경제학에서 쓰는 외부효과라는 말은 기업과 같은 경제 주체가 본연의 경제활동을 수행한 결과, 또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않은 혜택을 주거나 손해를 입히는 현상이다. 이때 혜택과 손해에 대해 대가를 받거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야 한다. 포스코가 철강을 만들면서 대규모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거나 양봉업자가 꿀을 모으면서 주변 과수원의 수분을 도와주는 것이 오랫동안 외부효과의 대표 사례로 거론됐다. 포스코가 철강생산을 염두에 두었지 온실가스를 배출하기로 작정하지는 않았을 터이고, 양봉업자 또한 과수원의 꽃에서 꿀을 모아올 생각이었지 벌을 보내 과실수의 수분을 도와줄 생각은 아니었다.
외부효과가 양봉처럼 긍정적일 때(혜택)는 외부경제, 외부효과가 온실가스처럼 부정적일 때(피해)는 외부비경제라고 구분하지만, 외부효과 하면 통상 외부비경제로 읽히는 문맥이 많다.
양봉은 교과서 등에서 외부경제로 꼽는 대표적 사례다. 본래 목적이나 정의상 양봉은 꿀벌을 이용해 꿀을 채집하는 경제활동이다. 벌통을 부려놓은 인근 지역의 과수원과 자연 상태 초목의 가루받이에 기여할 의사가 양봉업자에겐 전혀 없었다. 여기서 꿀벌의 도움으로 과수원에 과일이 열리고 과수원 주인은 과일을 팔아 돈을 벌게 되지만 과수원 주인이 양봉업자에게 가루받이 비용을 내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외부효과로 혜택이 생겼지만 그 혜택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야, 즉 ‘부불(不拂)’해야 외부효과(외부경제)가 된다. 혜택이 아니라 피해를 발생시켜도 마찬가지로, 의사가 없고 대가 또한 없어야 외부효과(외부비경제)가 된다. 과거에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그게 지구온난화 물질인지 모른 채 비용을 물지 않았을 때 외부효과가 된다.
요약하면 시장 내에서 돈을 주고받는 혹은 돈을 벌기 위한 행위의 결과가, 행위의 다른 측면에서 돈을 주고받지 않는 새로운 경제적 효과를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양봉의 변신=양봉(養蜂)은 축산업의 한 분야이며 벌을 기른다는 뜻으로 영어로도 ‘beekeeping’이다. 양봉이란 말 자체에는 ‘꿀을 채취하는 활동’, 즉 채밀(採蜜)이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엄밀하게 용어에 근거해 따지고 들면 양봉업 중에서 채밀만이 경제적 행위일 이유는 없다. 벌이 꿀을 모으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가루받이를 해주었으면 돈을 받지 말란 법 또한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아몬드 농장에서는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된다. 2월 아몬드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미국의 대표 농산물인 아몬드의 가루받이를 위해 미국 전역에서 양봉업자가 모여든다. 꿀처럼 정확하게 양을 재서 팔지 않지만 어쨌든 가루받이를 대가로 양봉업자는 아몬드농장에서 돈을 받는다. 수분이 본업이고 채밀이 부업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환경경제학에서 양봉을 더는 외부경제로 표시하면 안 될 것 같다.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상품화의 수준 또는 범위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꿀은 슈퍼마켓이나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상품이고 수요자가 전 세계에 두루 존재하지만(한국 소비자는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세계 전역의 꿀을 언제든지 살 수 있다), 가루받이는 캘리포니아 아몬드농장 같이 특별한 곳에서만 돈으로 거래하는 일종의 서비스 상품이 된다. 아직 많은 나라에서 수분은 공짜로 해주는 외부경제에 머문다.
◆온실가스라고 같은 온실가스는 아니다=양봉은 특수한 사례이고 외부효과 중에는 안타깝게도 외부비경제가 훨씬 많은 편이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공짜로 혜택이 생기는 영역이 있다면 영리한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 혜택으로 돈을 만들려 할 공산이 크다.
흔히 부정적 의미로 쓸 때의 대표적인 외부효과는 온실가스다. 애매하지만 지금은 ‘였다’라고 써야 할 수도 있다. 상품을 만들면서 온실가스를 ‘공짜’로 대기에 배출했을 땐 외부비경제지만, 배출한 온실가스에 대해 비용을 문다면 ‘외부’라는 말을 쓸 수 없게 된다. 온실가스는 기후에 미치는 명확한 부정적 영향으로 정의돼 있어 산업생산에서 배출한 양에 비례해 기업이 비용을 내야 한다. 지금은 온실가스가 시장제도 안에서 파악되어 대가를 지불하는 비용 요인에 가깝다.
하지만 모든 탄소에 대해 비용을 무는 건 아니다. 예컨대 앞서 보고서에서 보았듯, 98%의 탄소가 출고 이후에 발생하는 자동차 업계는 아직은 그 98%의 탄소에 책임지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곧 스코프3까지 보고를 의무화한다는 말은 아직 제대로 스코프3 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계산되지 않은 것을 비용화할 수는 없다. 자동차 제조사를 예로 들면 어떤 범위의 탄소는 비용이고, 어떤 범위의 탄소는 비용이 아니다. 즉 온실가스는 외부효과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외부효과가 없어야 좋은 기업=외부비경제에 해당하는 외부효과의 점점 많은 영역이 기업 ‘내부’의 사안으로 바뀌고 있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제도처럼 외부효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분명히 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뚜렷해진다. 스코프3도 비슷한 맥락이다. 과거에 회피가 가능했던 사안에 대해 살펴보았듯 새롭게 책임을 물리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범위가 더 커지는 추세다.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책임이 적었던 소비자 또한 앞으로 자신의 소비행위에 대해 기업만큼은 아니어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를 받을 것이다.
‘외부’에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게 흩어져 있던 것들이 기업이든 개인이든 책임을 물으며 책임이 있는 곳의 ‘내부’로 이전되는 현상은 앞으로 더 확고해진다. 외부효과란 말이 담아내는 사안이 줄어들수록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보아 틀린 말이 아니다.
외부효과 비용이 클수록 기업은 그 시장에서 빨리 떠난다. 휘발유 디젤유 등 화석연료를 대신해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로 자동차 산업이 발 빠르게 이전하는 이유 중엔 과거 방식의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포함된다. 동시에 기업시민으로 책임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천명이 아주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도로 위에 전기차가 굴러다닌다고 해서 완전히 친환경이 되는 건 아니지만, 즉 전기차의 에너지원인 전기가 종전처럼 화석연료를 쓰는 발전을 통해 공급된다면 도로가 아닌 발전소에서 배기가스를 내뿜는 격이어서 중요한 문제를 남겨두고 있지만, 질소산화물과 같은 대기오염을 줄이는 데엔 긍정적이다.
◆세계 벌의 날=5월 20일은 ‘세계 벌의 날’이다. 전 세계적으로 벌이 수난을 겪으면서 생태계에 위협이 되자 유엔이 2017년 12월에 ‘세계 벌의 날’을 제정했다. 자동차 업계는 벌의 수난과 실종에 책임이 있다. 대기오염물질이 벌의 활동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자동차 업계엔 양봉이 유행이다.
롤스로이스는 유엔이 5월 20일을 세계 꿀벌의 날로 지정한 2017년에 ‘꿀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꿀벌 프로젝트’는 롤스로이스가 펼치는 다양한 환경보호 활동의 하나로, 영국 굿우드에 있는 생산 공장에 양봉장을 마련해 개체 수가 급감 중인 꿀벌에게 안전한 서식 환경을 제공한다. ‘꿀벌 프로젝트’가 성과를 거둬 굿우드의 약 17만㎡ 부지에 자생하는 50만 그루의 나무, 관목, 야생화 등에서 25만 마리의 꿀벌이 열심히 채밀해 2020년에는 ‘롤스로이스 꿀’을 생산했다.
람보르기니는 2022년 5월 20일 다섯 번째 세계 꿀벌의 날을 맞아 자사의 꿀벌 연구 기술을 공개했다. 람보르기니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볼로냐의 람보르기니 공원에서는 약 60만 마리의 꿀벌이 13개의 스마트 벌집을 드나든다. 꿀벌들은 꿀을 모으면서 주변의 환경 정보를 모으는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공원 양봉장에서 채취한 벌꿀은 직원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낸다.
포르쉐 또한 본사가 있는 독일 라이프치히 주행시험장의 4만㎡ 서식지에서 300만 마리의 꿀벌을 기른다. 재미있게도 양봉이 일종의 유행처럼 돼 버린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최대 양봉업자인 셈이다. 포르쉐가 연간 생산하는 꿀은 400㎏으로 포르쉐 라이프치히 서비스센터에서 병당 8유로에 판매한다. 수익금은 꿀벌 보호에 쓴다. 포르쉐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벤틀리도 꿀벌 30만 마리를 키우며 꿀벌이 좋아하는 나무와 들꽃 서식지를 조성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업계의 꿀벌 사랑은 상징적이다. 꿀벌 개체 수 급감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를 제공한 자동차 기업들이 꿀벌 개체 수 복원에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양봉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 정도 여력이야 있겠고, 기업이 홍보에 신경 쓰는 게 생리이기에 백안시할 것까지는 없다. 다만 양봉보다는 더 친환경적이고 탄소를 덜 배출하는 자동차를 만드는 본업에 온힘을 쏟아야 한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그들로 인해 대기에 쌓인 온실가스가 어마어마하니 하는 말이다.
 

5월 20일은 세계 벌의 날 (수원=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세계 벌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한 공원에서 꿀벌이 토끼풀꽃 사이를 분주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