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광주비엔날레의 궁여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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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입력 2023-05-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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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미지막이 된 광주바엔날레 박서보 예술상 시상식. (왼쪽부터)박양우 광주비엔날레 이사장, 엄정순 작가, 박서보 작가, 강기정 광주시장 [사진=연합뉴스]


 
※본 칼럼은 언론사 논조 및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스캔들 비엔날레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열린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Soft and Weak like Water’란 주제 아래 마련된 전시의 내용이나 완성도보다 ‘비엔나소시지’를 가지고 자기 비하를 서슴지 않는 홍보활동(?)에 이어 광주시장의 ‘김건희 여사 개막식 초청’ 발언 그리고 (재)광주비엔날레가 시상제도가 폐지된 지 8년 만에 부활시킨 “박서보 예술상”을 시상한 후, 한 달 만에 폐지하면서, 정작 비엔날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억측과 구설, 비난과 흠집 내기로 비엔나소시지 이후 제2·제3의 홍보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재)광주비엔날레가 박서보 예술상 제정과 시행을 밝힌 것은 지난 2022년 2월이다. 이때는 개막식과 함께 박서보 예술상 폐지를 주장하는 지역 예술인 중 누구도 반대 의사를 직접 표명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개막과 함께 시상식이 열리자 일부 지역의 문화예술계 인사들로부터 “박 화백은 1960년 4·19혁명에 침묵하고 5·16 군부정권에 순응한 인물로, 광주 정신에서 출발한 광주비엔날레 창립 취지에도 위배된다”며 상의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단 개막식 현장에서 내외신이 지켜 보는 가운데 벌어진 상 폐지를 요구하는 피켓시위는 보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특히 이날 연단에 올라 상을 받은 수상자의 처지와 심정은 어떠했을까? 상을 받으면서 기뻐할 수도 없고 눈치 없이 상을 받은 격이 되어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았을 수상자의 입장은 아예 안중에 없는 일이었다. 또 선의로 후배 예술가들을 격려하고 지원할 목적으로 사재를 기부한 노 화백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그의 90여 년의 삶의 궤적이 그토록 공개적으로 비난받으며 상의 폐지를 논해야 할 만큼 ‘과’로 가득한 것이었을까. 만약 이런 점이 기준이라면 이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던 국내외작가 그리고 앞으로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할 작가 선정에도 이와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상 폐지를 위해 결정한 (재)광주비엔날레 대신 기부자를 공격하는 ‘과’를 범했고 이는 ‘과’했다. 메시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의 의사는 열린 자유민주국가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의사를 전달했고 그들의 주장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개막식 현장에서 피켓시위와 일인시위를 이어갔다.
 
사실 여전히 서른 살이 곧 되는 광주비엔날레의 근간인 ‘광주정신’이 광주에 한정된, 광주에 갇혔다는 지적을 받는 상황에서 박서보 예술상을 제정한다는 소식은 광주비엔날레의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라 생각했다. 물론 광주비엔날레에 작가 개인의 이름을 딴 상이 좀 어색할 수도 있고, 또 대승적 차원에서 상의 명칭을 ‘광주비엔날레상’으로 하고 상금은 박서보 화백의 기지 재단이 수여하는 것으로 했다면 더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상의 시행 방법을 두고 이런저런 방법론을 검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박서보 예술상의 제정 시행을 계기로 광주비엔날레가 광주를 넘어, 이념과 진영을 넘어 세계의 민주 정신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했다. 왜냐면 폐지론자의 주장대로 박서보 화백은 “철저한 미학적 모더니스트”였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의 폭과 깊이, 특히 폭을 확장한다는 것은 그래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광주 정신을 공유하고 비엔날레의 턱을 낮추고 문을 열어준다는 의미에서 ‘모더니스트’라는 정도의 어색함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박서보 예술상을 제정, 시행한다는 발표에 별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없었던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따라서 광주비엔날레의 박서보 예술상이 첫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한 후 불과 1달, 34일 만에 폐지될 것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결국 5월 11일 아시아 최고의 비엔날레를 주관하는 (재)광주비엔날레는 “광주비엔날레 박서보예술상은 폐지한다”고 밝혀 스캔들 하나를 보탰다.

광주비엔날레 박서보예술상 첫 수상작이자 마지막 수상작  엄정순 작가의 '코 없는 코끼리' [사진=광주비엔날레재단]


네 가지 없는 비엔날레
 
예술상으로 인한 문제는 어렵게 만든 제14회 광주비엔날레를 삼켜버렸다. 상을 둘러싼 이슈가 비엔날레를 덮고 주제보다 더 큰 주제로 부상했다. 문제가 이렇게 커진 것은 출범한 지 30년이 돼 가는 조직의 무개념, 무대책이 사달의 원인이었다. 상을 만드는 일부터 폐지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는 참 한심했다. 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는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재)광주비엔날레는 이번 일을 대하면서 매우 허둥댔고, 미숙했고, 서둘렀으며, 허물을 덮기에 급급하며 땜질식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들은 사람이 갖추고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仁)과 의(義), 예(禮), 지(智)를 망각하고 일을 급하게 무조건 마무리하려고 애썼다. 상이 제정되고 고작 한 번 시상하고 폐지되는 1개월여의 과정에서 그들은 어질지도 못했고 의롭지도 않았으며 ‘예의’도 없었고 ‘지혜’롭지도 못했던 것이다. 상의 재원인 100만불(약 13억5000만원)을 내놓은 이는 박서보 화백이지만 이 상을 제정하고 만든 주체는 (재)광주비엔날레이다. 상의 명칭을 정한 것도 (재)광주비엔날레다. 만에 하나 기부하는 조건으로 상의 명칭에 기부자의 이름을 붙여달라는 요구가 있었다해도 이를 수락한 것은 (재)광주비엔날레다. 그러나 상을 둘러싸고 사달이 나자 상의 제정과 폐지에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재)광주비엔날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숨었는지 사안에 대해 변변한 설명이나 해명도 없이 달랑 보도자료 하나로 일을 무마하려 들었다.
 
이렇게 (재)광주비엔날레가 뒤로 숨는 동안 구순의 노화가는 속수무책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폐지론자들은 외신이 보도한 것처럼 “작가는 온 나라가 정치적으로 투쟁할 때 침묵을 지키면서 자신만의 예술에 천착했고, 100만 달러의 기부금으로 비엔날레를 ‘훔쳤다’고 비난했다. (the protest accused Park of ‘stealing’ the biennial with the $1 million donation, charging the artist of having remained silent amid the country’s decades of political struggle while pursuing his art.” 또 “그는 개인적인 영광을 위해 살았던 철저한 미적 모더니스트였다”고 낙인을 찍었다.
 
90년 그의 인생이 아무리 과가 많았다 해도 이런 비난은 과했다. 어느 누구도, 한 사람의 인생을, 삶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1년 전 만든 상이 시상한 지 1달 만에 폐지된 것은 폐지론자들의 주장은 타당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만약 그 주장이 설득력이 없었다면 상은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재)광주비엔날레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되어 몸을 숨겼다. (재)광주비엔날레는 최소한 상을 다시 제정한 이유와 상의 명칭에 작가의 이름이 들어갔는지 설명할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상의 제정과 수상에 대한 책임은 (재) 광주비엔날레에 있으니 자신들을 비난하고 상의 존폐문제도 자신들과 의논을 하자고 나서면서 기부자에 대한 비난이나 지적은 자제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최소한 그들의 할 일이 아니었을까. 왜냐면 그들이 최종 결정권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부자가 상금을 기부하겠다고 해서 마지못해 상을 만든 것처럼수동적으로 마지못해 움직였다. 제안을 수용해 상을 제정한 자신도 마치 피해자인 양 코스프레하면서 슬그머니 기부자 뒤로 숨는 비겁함으로 일관했다. 최소한 기부자를 보호하고 대변하는 (재)광주비엔날레는 없었다. 이는 의롭지 못한 행동이다.

제 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공연 포스터 [사진=정준모]

 
광주비엔날레, 상의 내력
 
광주비엔날레에는 시상제도는 생겼다가 없어졌다가를 반복했다. 1995년 제1회 비엔날레는 신생 비엔날레로 현대미술에 우열을 매긴다는 것은 난센스라는 내 외부 지적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목적에서 대상 1인(상금 5만 달러, 4500만원). 특별상(순금 행운의 열쇠) 3인을 선정해 상을 수여했다. 그리고 특별하게 관객들의 참여를 이끌고자 관객들이 투표로 선정하는 관객상으로 인기 작가상이 있었다. 1997년 2회 비엔날레는 시상제도를 폐지하려 했지만 결국 ‘지구의 여백’이란 주제 아래 5개의 소주제로 나눠 전시를 구성하고 주제별로 공로상을 5명에게 시상했다. 수상자에게는 각 3,000달러(약 270만원)를 상패와 함께 수여했다. 2000년에 열린 3회 비엔날레부터 설명도 이유도 없이 유야무야 시상제도는 사라졌다. 그리고 10년 뒤 2010년 8회에 ‘눈 (NOON) 예술상’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다. 이때도 왜 다시 시상제도를 만드것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때 상은 2개 부문으로 나누어 중견작가에게 ‘2010 광주비엔날레 눈(Noon) 예술상’을, 신인은 ‘눈 후원상’을 수여했다. 상금은 각각 5만 달러(4000만원), 2만 달러(1800만원)로 상금과 함께 상패가 수여되었고 상금은 재단이 부담했다. 상의 이름 ‘눈(Noon)’은 인간의 시감각기관인 ‘눈’과, ‘전성기’ ‘절정’ ‘최고점’을 뜻하는 영어단어 ‘Noon’을 중의적으로 담아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상의 명칭도 박서보 예술상처럼 그리 설득력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12년 9회 때는 상금이 줄어 예술상은 1만 달러(900만원), 후원상은 5000 달러(450만원)가 되었다. 이 상도 2014년 10회 비엔날레를 끝으로 3번 시상한 후 폐지되었다. 폐지이유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시상식에 쓸 예산 1500만원이 없다는 것인데, 글쎄 아시아 최대의 비엔날레라고 하는 광주비엔날레가 돈 1500만원이 없어 시상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은 매우 옹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시상제도가 비엔날레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다른 예산을 줄여서라도 시상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니었을까? 하지만 페지한 것을 보면 시상제도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별 의미가 없는 시상제도를 뜬금없이 2023년 14회부터 ‘박서보 예술상’이란 명칭으로 다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상은 박서보 화백의 기지재단이 기부한 100만 불 (약13억5000만원)을 재원으로 매회 한 작가를 선정해 시상하며 10회로 나누어 매회 10만 불(1억3000만원)씩 상금으로 수여한다는 것이었다. 2043년을 끝으로 기부금이 소멸되면 상도 없어지는 한시적인 상이었다.
 
상이 꼭 필요했을까?
 
만약 상이 꼭 필요한, 필수적이라 판단했다면 시상제도를 부활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런데 시상금 등 재원 확보 방안은 차치하고라도 먼저 왜 광주비엔날레에 상이 필요한지, 왜 다시 시행하는 지에 대한 토론이나 협의를 우선 가져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시민과 문화예술계와 상의 부활을 두고 논의한 사실은 찾을 수 없다.
 
상의 필요성을 시민사회와 문화예술계와 토론을 통해 합의에 이르렀다면 상은 존페의 기로에 서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합의를 바탕으로 상의 제정을 위해 방법을 찾다 박서보 화백의 선의와 만나 상을 제정했다면 폐지론자들의 주장은 크게 설득력을 잃었을 것이다. 입으로만 소통한다고 떠들면서 정작 말을 섞지 않고 재단 내부에서 일방적으로 시상제도 부활을 결정한 것이 일을 키웠다.
 
시상식 날 정작 폐지론자들의 시위와 주장이 나오자 이런 사단의 당사자는 나 몰라라 하고, 선의의 기부자만 오롯이 혼자 남아 폐지론자들의 온갖 비난과 함께 결국 “비엔날레를 훔쳐 간 파렴치한”이 되었다. 상의 제정과 시상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재) 광주비엔날레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고작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비엔날레 공식 계정에 박서보 화백이 SNS에 올린 상의 페지를 둘러산 논쟁에 대해 자신의 심정을 밝힌 글에 ‘하트’를 날린 것이 전부다.
 
만약 시상제도가 꼭 필요했다면 다른 예산을 줄여서라도 상금을 마련했어야 할 일이다. 국제행사의 경우 7회에 한해 국고를 지원해 주던 ‘국제행사 국고지원 일몰제’ 조차 2018년 지방선거 때 광주비엔날레를 위해 풀어줘 매회 조금씩 다르지만, 회당 대략 20~30억 원의 국고지원을 받는 행사에 꼭 필요한 시상제도를 위해 예산을 편성한다고 누가 말리겠는가. 또 예산이 부족하면 예전 상금 수준으로 하던가 베니스 등 다른 비엔날레처럼 소위 상금은 없는 명예상으로 해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마치 마침 상금을 희사하겠다는 이가 나섰으니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격”으로 상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를 사태를 대하는 (재)광주비엔날레의 태도는 마뜩잖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즉 폐지를 결정하고 이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재)광주비엔날레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아니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알렉시스 카초 작가의 '잊어버리기 위하여' 1995 제 1회 광주비엔날레 대상 수상작, 2018년 재현 [사진=광주비엔날레]

 
꼼수는 꼼수로 막는다?

결국 (재)광주비엔날레는 박서보 예술상에 대한 일부 단체와 개인의 반대로 폐지를 전격 결정했다. 첫 시상 후 1달 만에 폐지된 상의 운명도 얄궂지만, 상의 폐지 결정도 상의 제정 만큼 고민없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재)광주비엔날레 이사회는 회의석상에서 박서보 예술상 폐지에 대해 크게 반대 의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일부 이사들은 “박서보 화백은 광주 정신과 동떨어져 있다”며 “광주비엔날레재단 측이 당초에 별다른 고민 없이 상을 제정한 것 아니냐”는 안타까움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하는 기사로 보아 이사회도 상의 존폐에 별다른 고민없이 쉽게 시끄러우니 없던 일로 하자는 식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재)광주비엔날레는 이미 지적한 것처럼 문제를 기부자에게 미루고 숨고, 도망간 것도 모자라 변명이라고 내놓은 것은 더욱 기가 차다. 그들은 폐지를 결정한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광주비엔날레상 운영계획에 대해 미술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재단과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갔다”고 했다. 원래 상의 명칭은 광주비엔날레가 수여하는 박서보 예술상이다. 그런데 문제가 된 기부자의 이름을 빼려고 슬그머니 상의 명칭을 “광주비엔날레상”이라고 표기했다. 또 미술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는데 도대체 누구와 어떤 이와 의견을 수렴했고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 일절 설명이 없었다.
 
폐지론자들의 시위 후 1개월 동안 적어도 광주비엔날레 방문객과 시민들에게 상의 존폐를 묻는 설문조사를 하는 흉내라도 냈다면 수긍하겠지만, 상의 제정도 폐지도 요식 절차만 거쳐 뚝딱 결정하고 말았다. 또 앞으로 “보다 진보적인 시상 체계를 확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말 만 번지르르하게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기 전, 왜 진즉에 진보적인 시상 체계는 만들지 못해 일을 그르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었다.
 
결국 상은 폐지론자들의 주장대로 폐지되었고 결국 박서보 화백은 “광주 정신을 더럽힌 사람”이 되고 말았고 (재) 광주비엔날레는 이를 추인한 셈이 되었다. 아주 공식적으로 말이다. 상은 제정도 중요하지만 폐지는 더더욱 중요하다. 스스로 세계 5대 비엔날레라고 주장하는 광주비엔날레의 신인도, 비엔날레에 대한 믿음과 결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중요한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믿을 수 없는 조직이란 인상을 준 것은 뼈아픈 실책이다. 아쉬운 것은 폐지도 너무 졸속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시상했으니, 차기 비엔날레부터 시상제도를 시행할지 말지 숙의해 결정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한숨 돌려 시간을 두고 존폐를 결정했다면 설혹 폐지로 결론 난다 해도 (재)광주비엔날레의 의사결정에 대한 신중함은 인정을 받았을 것이고 신뢰도 기부자의 체면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재)광주비엔날레의 안중에는 책임만 면하려는 조급증으로 기부자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것은 물론 자신들의 실수로 인한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의 신인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당장만 모면하기에 급급했다.

마무리도 꼼수 또는 물타기로
 
필자의 취재에 의하면 폐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재)광주비엔날레는 박서보 화백에게 전화를 걸어 1. 이미 재원을 기부한 것이니 “박서보예술상”이 아닌 “평화미술상” 또는 “광주비엔날레 상”으로 변경해 계속 시행하거나 2) “박서보예술상”을 고집한다면 폐지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이미 1회 시상을 해서 10만 불은 시상금으로 쓰였으니 나머지 90만 불을 돌려드리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광주비엔날레에 선의를 갖고 재원을 기부한 이에게 이것이 할 말인가. 이는 (재)광주비엔날레가 기부자 박서보 화백을 폐지론자들의 주장이나 외신 보도처럼 광주비엔날레를 ‘훔치려’ 한 것이라고 인식하지 않고서는 입에 올릴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이런 의논을 재단의 일개 직원이 구순 넘은 노 화백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통보하듯 딱 한 번 의논이 아니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왔다”는 (재)광주비엔날레 측 주장과 상치되는 부분이다.
 
사태가 이런 정도에 이르렀다면 적어도 시상대에 함께 섰던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나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또는 무한 애정으로 광주비엔날레를 위해 몸소 코미디언이 되었던 김광진 경제문화부시장이 전화가 아닌 직접 달려가 찾아뵙고 의논해야 했을 일 아니었을까. 기부 의사를 밝혔을 때 득달같이 박양우 대표이사가 박서보 화백을 찾아뵙고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렸지만 폐지를 결정하고는 일개 직원을 통해 통보해서야 될 말인가. 이는 일만 졸속으로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이 아니라 예의조차 저버린 처사다.
 
그런데 한술 더 떠 웃기는 것은 1차 시상 후 남은 90만 불을 돌려주겠다는 발상이다. 이미 시상했으니 나머지를 기부자에게 돌려주는 것은 매우 산술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폐지를 결정한 것은 결과적으로 기부자와의 약속을 여론을 핑계로 일방적으로 (재)광주비엔날레가 깬 것이다. 설혹 약속이 불공정했다 하더라도 그 약속을 저버린 책임은 엄연히 (재)광주비엔날레에 있다. 이렇게 귀책 사유가 자신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격으로 이미 시상한 시상금 10만 불을 빼고 반납하겠다는 것은 참 신박한 발상이다. 물론 기부자인 박서보 화백은 그렇게 하라고 동의했다지만.
 
글쎄 개인인 필자가 만약 (재)광주비엔날레라면 어떻게 했을까? 서로 합의해서 시상하기로 했던 상을 폐지하는 마당에 시상금으로 쓰인 돈은 빚을 내서 100만 불을 채워 기부금을 반환하는 것이 이유야 어떻든 약속을 저버린 이들의 예의이자 광주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 아니었을까. 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도 함께 했어야 도리아닐까.

이런 모양 빠지는 결정을 누가 내렸는지 모르지만,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이런 제안을 하려니 낯이 뜨거워 시상식 때 앞에 나섰던 책임있는 인사들은 뒤로 빠지고 일개 직원에게 전화로 통보하라고 지시한 것일까. 시상제도 한번 성급하게 만든 (재)광주비엔날레와 상에 자신의 이름 붙이는 것을 수락한 기부자 박서보 화백 모두 모양만 우스워지고 말았다. 특히 광주의 책임있는 인사들은 자신의 낯짝을 지키려고 (재)광주비엔날레의 명분과 낯짝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런데 갈수록 ‘접입가경’이라고 (재)광주비엔날레는 마지막까지 꼼수로 일관했다. 재단은 박서보예술상 폐지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5월 11일 오후 3시경 전국의 언론에 배포했다. 그런데 이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몇 분 전에 “2024년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 1965~)를 선정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재)광주비엔날레는 강변할지 모르겠지만 이는 명백한 박서보 예술상 폐지에 따른 지적, 비난 또는 일 처리의 미숙함을 가리려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차기 감독 선정이란 뉴스로 상 폐지 뉴스를 가리려는 얕은수를 쓴 것이다. 권한을 가졌으면 책임도 아울러 지는 법, 책임지는 이 조차 없이 언제까지 이런 꼼수로 버틸 것인가? 참으로 기가 차도록 답답한 노릇이다. 좀 잘하자. 제발. 광주야, 광주비엔날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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