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전세사기 방지와 회복, 다시 대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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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빈 기자
입력 2023-05-0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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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사진=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전세입주자 보호제도 시급’, ‘전세금 몽땅 떼이고 쫓겨나도 속수무책’, ‘전세금사기 엄중처벌을’
 
1980년대 초 신문기사 제목들이다. 오늘 기사의 제목이라 해도 낯설지 않을 내용이다. 당시 기사를 좀 더 보면 80년 11월까지 서울지검에 접수된 민원 가운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게 해달라는 것이 20%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집주인이 빚을 갚지 못해 소유권을 채권자에게 이전해 주면서 일가족 8명이 전세보증금 한 푼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난 사연이 소개되었다. 70~80년대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이 불러온 심각한 주택 부족과 함께 임차인 보호를 위한 제도의 미흡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 틈을 노리고 요즘과 같은 전세보증금 사기도 판을 쳤다.

그때 정부가 마련한 대책이 바로 지금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1981년 3월 처음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등기가 없어도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치면 대항력을 부여하였다. 이후 83년 1차 개정으로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 받을 때까지는 임대차관계가 존속하도록 하고, 소액보증금 우선변제권을 인정하였다. 89년 2차 개정으로 대항요건과 확정일자를 갖추면 보증금 전체에 우선변제권이 인정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등장은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기존의 민법 체계상 주택임차인이 지금과 같은 수준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등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주택을 임차하는 서민들에게는 등기를 위한 비용이 문제였다. 비용을 들여 등기를 하려고 해도 등기에 필수적인 집주인들의 협조를 받기 어려웠다. 등기를 해주면 세금을 물어야 하고, 집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집주인들이 등기를 꺼려한 까닭이다. 그래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집주인의 협조가 필요 없는 주민등록과 확정일자를 통해서 사실상 등기를 대체하였고, 기존에는 없던 물권(物權)적 효과를 가진 채권이 등장한 것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제도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민법 체계를 흔드는 대전환이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사기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기존의 틀을 흔드는 과감한 대전환이 다시 필요하다.

독일민법(§551, BGB)은 주택임대차에서 보증금(Kaution) 수수에 관한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지급하는 보증금은 3개월분 임대료를 초과할 수 없다. 임대인은 수령한 보증금을 자기의 고유재산과는 분리하여 금융기관에 저축성 예금으로 예치해야 한다. 그 결과 보증금은 임대인의 고유재산과 분리된 독립재산이 되고, 임대인의 채권자들이 보증금에 대해 압류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예치해 둔 보증금의 이자는 임차인에게 귀속된다. 이런 제도 하에서는 요즘의 전세사기는 발을 붙일 수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범죄의 적발과 처벌에 집중된 국가의 자원을 피해자의 민사적 권리 회복을 위해서도 과감하게 활용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이 다양한 전세사기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피해자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전세보증금 피해는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기범들의 재산을 피해 회복을 위해 환수하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전세사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전세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재산적 피해 회복을 위한 국가의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고 피해자에게만 그 책임이 맡겨져 있다. 부패재산몰수법이 있지만 그 적용 범위가 협소하고 절차가 까다로워 사실상 활용이 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는 민사재판에서 이겨도 가해자의 재산을 찾을 수 없어 피해를 회복하지 못한다. 재산명시제도 등 지금의 채무자 재산 찾기 제도가 유명무실한 것임은 이제 상식이다. 여기에 금융실명법,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 등, 선한 의지로 만들어진 그 법률들이 한편으로 가해자의 숨겨진 재산 찾기를 더 어렵게 만든다.

그런데 각급 수사기관,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 금융감독원 등의 기관들에는 가해자 재산에 관한 정보들이 이미 집적되어 있다. 그렇게 집적된 정보들을 법원의 통제 등 일정한 절차를 거쳐 피해자에게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피해자의 민사적 피해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가해자의 재산을 찾을 정보만 있다면 피해자들이 수사기관보다 더 열심히 추적과 집행에 나설 것이다.

‘더 글로리’, ‘모범택시’. 최근 인기를 누린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사적 복수’로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한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열광한 것은 그렇지 못한 현실이 뼈저리기 때문이다. 아마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참담한 현실에 ‘모범택시’를 떠올렸을 것이다. 사적 복수를 다룬 드라마로 간신히 치유 받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이제 미봉책이 아니라, 40여 년 전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그랬듯 기존의 틀을 흔드는 과감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달 28일 ‘대한민국 대전환의 새로운 문을 연다’는 기치로 지식인들이 모여 ‘대전환포럼’을 창립했다. 지금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각계각층의 대전환 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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