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칼럼] 우린 왜 네옴시티같은 초국가적 프로젝트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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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교수
입력 2022-11-2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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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네옴시티가 화젯거리이다.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가 던져 놓은 초대형 신기루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프로젝트의 핵심이고 주거지구인 더 라인(the Line)은 초대형 유리박스로 170㎞ 길이(서울~강릉), 500m 높이(롯데타워), 200m 폭(축구장 두개)으로 건설된다. 서울시 면적의 44배, 벨기에 국토만큼 넓고 900만명이 살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산업지구(옥사곤), 관광지구(트로제나)를 포함하여 네옴시티의 건설비용만 줄잡아 5000억 달러, 약 650조원이라고 하니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이다. 도시는 탄소제로와 고속철 등 첨단기술이 총동원된다.
 
네옴시티 구상에 놀라는 한편 씁쓸한 생각이 든다. 한국의 2023년도 정부예산 639조원보다 큰 650조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공상 과학처럼 보여 실현 가능성이 낮을 텐데 혹세무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 아니다. 그가 가진 개인자산은 2조 달러, 약 2700조원으로 우리나라 1년 GDP보다 크다. 기름으로 모았을 그 돈을 싸두지 말고 그동안 사우디 국민들을 위해서 써 왔으면 좋았을 것 아니냐는 필란트로피(博愛) 때문도 아니다. 그가 자말 카슈끄지라는 언론인의 암살 배후라는 의혹에서 나오는 정의감 때문도 아니다. 화석연료시대 종말에 대비해서 담대한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그의 상상력과 추진력을 왜 우리나라는 갖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에 화가 치민다. 내로라하는 재계 거물들이 앞 다투어 그의 얘기를 경청하는 모습에 화가 치민다. 왜 우리는 기업들이 바삐 달려와 매달리고 싶은 좋은 사업들을 제시하지 못할까. 왜 우리는 미래의 담대한 프로젝트는커녕 당장의 먹거리를 만드는 일조차 국력을 집중하지 못할까.
 
정부는 권력 분립에 따라 행정부, 입법부 등으로 나뉜다. 프로젝트 설계와 추진은 각 부처로 조직된 행정부(executive branch) 몫이다. 또 하나의 정부는 입법부(legislative branch), 즉 국회이다. 국회는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통제한다. 원대한 프로젝트는커녕 만들어진 일조차 잘 추진되지 않는 것은 설계하는 행정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정책 추진의 양대 수단인 예산과 입법을 통제하는 국회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이번 정부 들어와서 행정부에서 제안한 법률안 82건 중 단 한개도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반도체 지원 법률안 등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멋진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위해 행정부도 분발해야 하지만 번번이 행정부의 정책 추진을 가로막는 국회는 반성해야 한다. 입법부를 구성하고 있는 정치권은 오로지 정권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한쪽은 정치력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쪽은 정권을 다시 찾기 위해서 전력투구를 한다. 나라의 프로젝트와 중요 정책은 이러한 과정에서 외면당한다.
 
입법부가 그렇다고 해서 행정부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행정부 각 부처는 목표와 연동된 실천 가능한 계획(actionable plan)을 수립하고 추진하여야 한다. 계획이 잘 받쳐 주지 않는 목표는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하고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평가하기 어렵다. 매년 12월에는 각 경제부처에서 소관 분야에 대한 1년간의 자체평가를, 그리고 다음해 계획을 수립하느라 분주하다. 부처 합동의 경제정책방향에서는 경제성장, 고용, 물가, 수출입 분야별 주요 정책과 전망이 담긴다.
 
그러나 매년 경제정책방향을 들여다보면 목표는 찾아보기 어렵고 정책들만 나열되고 있다. 이래서야 각 분야의 목표가 무엇인지 각각의 정책이 얼마나 목표에 기여하는지 잘 알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에서 행정부의 정책들에 대해서 따져 묻지만 생산적이지 않고 정치적인 공방만 오가기 일쑤이다. 경제 정책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제대로 평가를 받으려면 합리적인 목표와 구체적인 실행계획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세부적인 액션 플랜이 뒷받침되지 않은 것들은 정책 목표라기보다는 아카데믹한 전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개발연대도 아닌데 무슨 목표냐고 할지 모른다. 전망은 경제연구소에서 하는 것이다. 정부는 본질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예산과 법률을 동원하는 곳이다.
 
경제 분야에는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운 많은 변수들이 있다. 그러니 쉽지 않다. 우리나라 실물경제의 주요 분야인 무역과 외국인 투자를 예로 들어보자. 정부의 수출입 대책이 경제연구소에서 만든 전망 이상의 가치를 가지려면 주요 지역별, 품목별 대책이 매트릭스로 마련되어야 한다. 수출은 기업이 비밀리에 하는 것인데 무슨 수로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정부는 모든 품목이 아니라 주요 업종의 수출 목표를 설정하고 애로 타개를 통해서 목표를 이룰 수 있다. 한편 중소기업의 수출 증대를 위해서는 코트라(Kotra)가 나서야 한다. 세계 곳곳에 무역관을 가지고 있는 코트라는 지역별, 품목별로 수출 목표를 정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무역보험공사도 무역보험 인수 총액을 늘리고 손실은 국가에서 메워 주는 총량 관리 방식이 아닌 대형 프로젝트를 디테일하게 관리함으로써 보험금 손실을 최대한 줄이면서 수출이 늘어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외국인투자 유치도 마찬가지다. 금융이나 서비스 분야의 거액 투자는 유치총액은 늘어날지언정 제조업 중심의 우리 산업에 주는 연관효과는 크지 않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외국인 투자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고 기업 비밀에 속하기 때문에 공개가 어려운 것들도 있다. 그러나 투자 유치기관의 레이더에 잡히는 대형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행정력을 동원해서 규제를 터주고 종합적 인센티브를 제시함으로써 투자 유치를 늘릴 수 있다.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입법부는 입법부대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여야 한다. 에너지를 정쟁에 허비하기보다 디테일이 강한 정책을 제시하고 밀어주는 우리 정부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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