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원의 정치사담] 희생자 명단 공개 後…민주당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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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원 기자
입력 2022-11-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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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 안정성 점검 토론회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이름도, 영정도 없는 곳, 국화꽃에게만 지금 분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내 아들의 이름과 얼굴을 가리지 말라는 오열도 들립니다.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을 하고 애도를 합니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9일 오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여부와 관련해 “당연히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당연히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됩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표의 이런 발언은 지난 7일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문진석 의원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전체 희생자 명단·사진·프로필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확인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지난 8일 문 의원이 SNS를 통해 전날 텔레그램 메시지 내용을 두고 “개인의 인격이 존중되는 이 시대에는 불가능하고, 도의적으로도 불가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는 입장을 낸 지는 하루 만이다.
 
국내 정치에서 당대표의 입은 당론에 가장 가까운 발언이 나올 통로로 여겨진다. 당대표가 당 내외에서 지닌 위치와 권한 때문이다. 이에 문 의원 해명으로 일단락됐던 희생자 명단 공개 문제는 이 대표 언급으로 재차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 대표가 명단 공개에 대해 입을 연 직후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일반적 장례 의식에 의하면 사망하게 되면 고인 위패와 영정 모시고 추도하고 분향 조문하는 것이 원칙이고 상식”이라고 보탠 점도 이 대표 발언이 향후 민주당 행보를 예상할 단서가 아니냐는 의문을 자아냈다.
 
실제 희생자 명단 공개는 이 대표 발언이 나온 지난 9일로부터 닷새 후인 지난 14일 이뤄졌다. 공개 주체가 민주당은 아니었다. 인터넷매체 ‘민들레’였다. 다만 이 시점을 기준으로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 태도는 이 대표가 보였던 단호한 어조와는 달라졌다. 민주당은 침묵했다. 명단 공개에 공식 입장을 내지 않던 민주당이 입을 뗀 건 명단 공개 나흘 뒤였다.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유족의 동의를 전제로 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는 한결같은 민주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한 인터넷 매체의 희생자 명단 공개를 놓고 민주당이 배후고 공범이며 패륜이라는 생떼 억지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박 원내대표의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앞서 이 대표는 명단 공개에 ‘유족 동의’를 전제로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물론 안호영 수석대변인의 첨언까지 고려하더라도, 그들 발언의 전체 맥락을 보면 민주당 지도부가 조건으로 내건 유족 동의는 크게 강조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당시 이 대표와 안 수석대변인 언급만 놓고 보면 주된 메시지는 ‘이름과 얼굴, 위패와 영정에 추모하는 것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희생자 명단 공개 사태는 온전히 민주당 책임은 아니다. 다만 민주당이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어 보인다. 명단 공개는 말로 이루 다 형언 못할 고통을 겪고 있을 누군가에게 상당히 민감한 문제다. 참사 후 국가 애도기간까지 지정됐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명단 공개에 대한 제1야당 메시지에 그 방점이 유족 동의에 찍히지 않았던 점은 패착이다. 민주당의 뒤늦은 ‘책임 거리두기’가 적절치 않아 보이는 이유다.
 
‘민주당이 민들레와 직접적 커넥션이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설득력 없더라도, 거대 야당의 메시지는 우리 사회에 일종의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인지하고 많은 사람이 슬픔에 잠긴 시기에 더 세심히 명단 공개 문제에 접근했어야 했다. 참사 수습도, 진상규명도, 책임 묻기도 모두 필요한 절차다.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명단 공개 논란으로 그 동력이 빛바랜다면 민주당이 명분으로 제시하는 ‘국민의 요구’는 제대로 분출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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