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사생결단(死生決斷)의 미중 기술 전쟁 ….우리 반도체 산업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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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2-11-1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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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진=이왕휘 교수]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달 제20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일대일로 구상, 중국 제조 2025 정책, 쌍순환 전략 등을 통해 미국과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해온 시 주석은 대만을 통일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무력 충돌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미국은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중국을 압박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군사력에서는 아직도 미국이 중국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군 현대화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미국 추격은 멈출 수 없다. 경제력에서 미국은 중국에 추월을 당할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미 무역과 제조업에서 중국은 미국을 능가하였다. 기축통화를 제외하면 금융에서도 미국과 중국 간에 격차는 상당히 좁혀졌다.

현재 미국이 중국의 급속한 부상을 막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과학기술이다. 지난달 백악관이 발표한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이 점이 잘 명시돼 있다, “기술이 오늘날 지정학적 경쟁과 우리의 국가안보, 경제 및 민주주의의 핵심에 있다.” 미국은 전략 경쟁의 판도를 좌우할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반도체,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빅데이터, 클라우드, 자율주행, 양자컴퓨팅 등에서 미국은 대부분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 반면 중국의 장점은 원천기술을 활용하는 제조 능력에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원천기술 사용을 통제하는 방식을 통해 중국의 추격을 가로막으려 하는 것이다.

지난 9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의 목표가 중국에 대한 상대적 우위가 아니라 절대적 우위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미국의 기존 목표가 일정한 격차를 유지하는 선에서 중국의 추격을 허용하는 것이었다면 향후 목표는 추격을 못하게 만들기 위해 격차를 최대한 벌리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대중 제재가 집중되어 있는 산업은 반도체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는 AI, 블록체인, 빅데이터, 클라우드, 자율주행, 양자컴퓨팅 등에 필요불가결한 제품이다. 첨단 반도체가 없으면 이 기술을 구동하는 장비를 만들 수가 없다. 미국이 수출 통제, 해외 투자 심사 강화, 기술 유출 방지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중국 반도체 기업을 견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는 2019년 5월 5G 통신장비를 만드는 화웨이에 처음 부과되었다. 화웨이를 산업보안국의 실체목록에 등재함으로써 상무부는 미국 기업은 물론 미국 기술을 사용하는 해외 기업의 대중 수출을 차단시켰다. 이 조치로 인해 화웨이는 세계 최대 판매량을 목표로 했던 휴대폰 사업을 완전히 포기해야 했다. 또한 화웨이는 미국과 유사한 정책을 도입한 서방 국가에 5G 통신 장비를 수출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세계시장에서 화웨이의 매출과 수익이 동시에 하락하였다.

이중 용도 제품을 활용한 군민 융합을 막기 위해 대중 반도체 제재는 공급망을 더 정교하고 더 치밀하게 겨냥하고 있다. 지난 9월 상무부는 AMD 및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반도체에 대해 대중 수출을 금지했다. 이 조치의 명분은 이 반도체가 중국의 무기 체계와 사회 감시 장비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목표가 이제 중국의 산업뿐만 아니라 군사와 인권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지난달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 제재는 군사적 함의를 더 명확하게 드러냈다. 산업보안국은 이 제재의 목표가 “군사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 일정한 최첨단 반도체를 중국이 구매하고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였다. 이를 위해 반도체 제작장비와 설계 소프트웨어인 전자 설계 자동화(EDA)에 대한 수출 통제가 강화되었다. 이전에는 10나노 이하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출을 통제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10나노 이상 범용 반도체를 만드는 심자외선(DUV) 노광장비까지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였다. 지난 7월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SMIC가 이 장비를 이용해 7나노 반도체를 생산했다는 보도가 이 조치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더 치명적인 제재는 중국 반도체 업체에서 일하는 미국인 직원에 대한 규제다. KLA, 램리서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 등 반도체 장비 제작사가 파견한 미국인(시민권자는 물론 영주권자까지 포함) 직원이 더 이상 중국 기업을 지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중국 최대 메모리 업체인 양츠 메모리 테크놀로지스(YMTC)는 미국인 직원에 대해 퇴사를 요청하였다. 미국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또 다른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YMTC가 신속하게 반응한 것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미국 정부가 미국 기업의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미국 기업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대중 제재 범위를 최소화해왔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경제적 이익보다 국가안보를 우선시함으로써 미국 기업의 로비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미·중 과학기술 경쟁의 격화는 우리 첨단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중국 기업과 유사하게 우리 기업의 강점은 원천 기술이 아니라 제조 능력에 있다. 미국 기업의 특허와 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의 대중 제재를 준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의 2차 제재를 피할 수 없다.

현재 우리 기업이 당면한 문제는 다층적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인 중국이 반도체 수입을 줄이고 있다. 그 원인은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한 가지는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다. 군민 융합으로 의심되는 중국 기업 수가 증가하면서 수출처가 축소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다. 비록 첨단 제품을 생산하는 데 실패했지만 세계시장에서 28나노 이상 범용 반도체의 중국 비중이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도 반도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기 침체로 IT 제품 수요가 급락하면서 전자제품 제조 업체가 반도체 주문량을 줄이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TSMC도 최대 고객인 애플의 감산 정책 영향을 피하지 못할 정도다. 메모리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보다 더 경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단가 하락 폭도 더 크다.

바이든 정부의 앨라이·프렌드쇼어링 정책에 호응해 미국에 투자한 우리 기업의 사정도 좋지 않다. 반도체 수요 급감으로 수익이 줄어들면서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및 과학법’을 통한 지원은 그 규모가 크지 않다. 또한 공장이 완공되었을 때 반도체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폭락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국에 있는 반도체 제조공장의 존폐다. 지난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TSMC와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의 제작장비 수출 통제를 1년 유예받았다. 유예 조치가 종료되면 우리 기업은 공장 신설은 고사하고 기존 시설의 수리도 못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의 이번 조치가 중국에서 철수하라는 신호라는 해석도 있다. 미국 정부가 미국 기업의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중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기업만을 계속 예외로 인정해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미국이 자국 기업의 손실을 얼마까지 감내할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한편에서는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대중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략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경제적 피해는 견뎌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또한 동맹국 또는 유사 입장국인 한국, 대만, 일본, 네덜란드, 독일이 어느 정도까지 미국의 앨라이·프렌드쇼어링에 협조하느냐도 중요하다. 미국이 손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해외 기업들은 제3의 대안을 모색할 것이다.

이번 달 4일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하면서 탈동조화 반대를 천명했다. 마지막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의 혁신 능력도 주목해야 한다. AI와 5G 사례를 보면 중국이 반도체 산업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전략 경쟁의 최종 결과를 지금 예단하기는 어렵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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