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 칼럼] '한은 보고서'에만 존재하는 물가관리목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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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입력 2022-10-1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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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세돈 교수 제공]



 
2022년 9월 21일 오후 3시 20분 FOMC 회의결과를 발표하는 파월 연준 의장은 첫머리에 이렇게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저의 동료들과 저는 인플레율을 목표수준인 2%로 다시 낮추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은 2% 물가목표를 네 번 다섯 번 이상 반복해서 언급하면서 자신의 결연한 물가관리 의지를 내비쳐 보였다. 그뿐만 아니다. 다른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물가목표가 2%라는 점을 재차, 삼차 언급하면서 대중에게 자신과 연준의 궁극적인 의무가 2% 물가안정목표 달성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한국은행이나 금융통화위원회는 연준 파월 의장과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2022년 9월 22일 정기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물가안정목표 2%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되거나 의논된 적이 없다. 그 전인 2022년 8월 2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에 있었던 기자간담회에서의 한은 총재 모두발언에서도 물가안정목표 2%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언급이 없다. 그 전달인 2022년 7월 13일 기자간담회 발언 내용을 봐도 물가목표가 2%라는 점에 대해서 한국은행 총재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연 4회 발간되는 「통화신용정책보고서」나 연 2회 발표되는 「금융안정보고서」에는 물가안정목표 2%가 여러 번 언급되어 있지만 한국은행 총재나 금융통화위원의 입으로 직접 생생하게 물가안정목표 2%를 달성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강조하여 듣지는 못했다. 그 이유가 뭘까. 왜 미국 연준 의장이나 연준 이사들은 입만 열면 2% 물가목표를 반복해서 언급하는데 우리나라 한국은행 총재나 금융통화위원들은 그렇게 언급하지 않을까. 모든 국민들이 2% 물가안정목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그렇게까지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없어서일까. 따로 말하지 않아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의 결연한 2% 수호의지를 잘 꿰뚫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2% 물가목표를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잘 알고 있으니 번거롭게 부연할 필요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국 연준 의장이나 이사들은 왜 잠잠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물가안정목표라는 것은 실체가 분명하고 딱하고 부러지는 뚜렷한 목표가 아니라 애매하고 모호한 목표라서 그렇다. 한국은행의 현재 물가안정목표는 2%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전제나 단서나 조건이 붙어있다. 첫째가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안정목표를 관리한다는 점이다. 당장 관리할 목표는 아니라는 말이다. 소비자물가는 다양한 대내외 요인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므로 일시적이거나 불규칙적인 요인에 따른 물가변동을 제거하고 중기적 안목에서 물가안정목표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일시적이거나 불규칙적인 요인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작업은 시간이 걸리므로 발표된 물가 통계에서 그런 요인들을 추려내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또 기준금리 변경과 같은 통화정책 수단이 실제 물가에 미치는 시차를 고려하여 중기적 시계에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고 있다. 쉽게 얘기하면 물가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역학관계가 존재하므로 긴(중기시계) 안목으로 2%를 달성하는 것이지 당장 2%를 달성하자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로, 한국은행은 미래지향적으로 물가안정목표를 관리한다고 강조한다. 물가상승률을 당장 즉각적으로 안정목표에 도달시키는 것이 아니라 중기적 시계에서 목표수준에 수렴하도록 통화신용정책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말하자면 당장 물가목표 2%를 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중기적 시계라는 말과 거의 같은 말로 들린다. 셋째로 실물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신축적으로 물가안정목표를 관리한다는 점이다. 경제가 안 좋으면 경제를 고려하여 기준금리를 안 올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넷째로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중개기능이 손상받지 않도록 물가안정목표를 관리한다는 점이다. 부채 누증 등 금융 불균형요인이 있으면 거시경제 안정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이에 유의하여 기준금리 인상정책을 신중하게 결정을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나라 물가안정목표제도는 함께 고려하고 생각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이 붙은 야누스 머리 같은 목표가 되어버린다. 먼저 소비자물가 통계에서 일시적이고 불규칙적인 부분을 떼어 내야 하고, 당장이 아니라 중기시계를 봐야 하며, 미래 지향적으로 관리하되 실물경제 성장이나 금융안정이나 금융중개기능을 모두 고려하면서 물가를 관리한다는 것인데 이게 가능하기나 한 얘기일까. 미국 연준의 2% 물가목표도 당장 목표를 성취하자는 것이 아니라 중기적인 목표인 점은 우리와 같다. 그리고 그들도 고용시장이나 금융시장의 안정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사정이 거의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준 의장이나 연준 이사들은 하나같이 물가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그들의 당면한 법적 의무이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반복해 말하는 반면 우리는 가계부채 문제를 얘기하고 실물경제 성장을 얘기하고 소비부진이나 수출부진을 언급하면서 정작 한국은행법 제6조 3항이 요구하는 최선을 다할 의무를 언급하지는 않는다.
 
이래서는 물가목표 2%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다. 처음부터 중기시계 목표라고 둘러대고 미래에나 달성할 목표라고 하면서 실물경제도 고려하고 금융시장 불안도 걱정하면서 언제 어떻게 물가를 잡을 수 있겠는가. 지난 2021년 4월 미국에서 물가상승 기미가 보였을 때 파월 의장은 공급교란에 의한 일시적인 물가상승이라고 둘러대다가 호된 망신과 질책을 받았다. 그 잘못을 인정하면서 파월은 일신우일신하여 강경한 태도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실추한 신뢰를 되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입만 열면 2% 목표를 운운하는 것도 사실 그때 잘못을 반성하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나 한국은행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정책과제가 물가안정이라면 모호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은행 총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책의 최우선과제가 한국은행법 제6조 3항처럼 물가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각인시켜 줘야 한다. 정부와 다른 정책의 조화 문제에 있어서도 한국은행법 제 4조 1항에서 규정되었듯이 물가안정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부와의 정책조화를 모색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한국은행 총재로서는 정부정책보다 물가안정이 더 상위에 있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내년에 물가가 몇 퍼센트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말만 하지 말고 앞으로 내년 혹은 내후년까지 물가목표 2%를 잡겠다고 확실하게 단언해 줘야 한다. 미국 8%대보다 우리 5% 물가상승률이 낮으므로 미국보다 훨씬 빨리 2%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과 같은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하여 금융시장을 혼란시키지 말아야 한다. 지난 9월 원화환율 파동의 책임은 그런 잘못된 포워드 가이던스 때문인 것이 확실하다. 한국은행은 물가를 2%로 잡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지 기준금리를 3% 혹은 4% 수준에서 유지하느냐가 의무인 것이 아니다.

 

신세돈 필자 주요 이력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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