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의 시선] 청계천 초입에 박경리 조각상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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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겸직교수
입력 2022-10-0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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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신동아》에 명사 인터뷰 ‘황호택이 만난 사람’을 연재하고 있을 때였다. 나남출판 조상호 사장에게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인터뷰(2005년 1월호)를 교섭해 달라고 어려운 숙제를 부탁했다.
작가는 신문 연재소설을 여러 편 썼으면서도 인터뷰 기피증이 있었다. 세평(世評)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신념이 인터뷰 기피증으로 발전한 것 같다. 인터뷰 중 내게 토로한 바로는 “인터뷰가 사생활을 건드리는 데 대한 불편함”도 있었다. 그는 내게 “작가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토지라는 대작에 매달리는 처지에 인터뷰는 시간을 빼앗아가는 잡기(雜記) 같은 것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평생 작가가 격식을 갖춘 인터뷰에 응한 횟수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이 글을 쓰는 나를 빼놓고 동아일보 최일남, 한국일보 장명수, 서울대 송호근(MBC TV)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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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작가(오른쪽)를 똑 닮은 외동딸 김영주. [사진=토지문화재단]


조상호 사장은 《토지》 완간(完刊) 기념행사(1994) 준비위원장을 지낸 김형국 교수가 동행해야 작가의 낯가림이 덜하고 인터뷰가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인터뷰 확약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김 교수와 함께 조 사장의 차를 타고 연세대 원주 캠퍼스 근처에 있는 토지문화관으로 찾아갔다. 오전에 두 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다시 두 시간 가량 이어진 호흡이 긴 인터뷰였다.
 
‘애독자 기록자 연구자’ 김형국의 《박경리 이야기》
 
김 교수가 최근 평생의 역작인 《박경리 이야기》라는 책을 보내왔다. 책을 붙잡고 나서 처음에는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뒤로 갈수록 재미가 붙어서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김 교수가 동행한 ‘황호택이 만난 사람’ 인터뷰도 여러 군데서 인용하고 있었다.
《토지》의 독자로 시작해 《뿌리 깊은 나무》 1980년 5·6월호(군사정권에 의한 합병 폐간호)에 ‘소설 《토지》의 인물들과 오늘의 도시생활’이라는 글을 쓴 것을 계기로 김 교수는 작가와 인생 대소사를 상의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는 그때부터 자료를 모으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주변 인물들과 만났다. 《토지》는 집필을 시작한 지 26년 만인 1994년 탈고했지만 김 교수는 그보다 2년 긴 28년 만에 작가론을 완성했다. 그는 작가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본 것이 아니라 의미론적으로 일대를 재구성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공사 간 모든 정보를 찾아내 ‘사실을 검증하고 진실을 찾아내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작업을 통해 박사 학위 논문을 쓰듯이 1년 반 가까이 집필에 매달렸다. 그는 평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저자의 지적 배경이나 이력을 고려해 겸손하게 《박경리 이야기》로 이름을 달았다고 한다.
《토지》는 1980년대에 흐름이 확산됐던 대하소설 양식의 선봉(先鋒)이자 정화(精華)라는 찬사를 들었다고 김 교수는 평가한다. 황석영의 《장길산》, 김주영의 《객주》, 이병주의 《지리산》, 김원일의 《불의 제전》, 이문열의 《변경》,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이, 문학에 결례되는 표현을 빌리자면 유행처럼 출간됐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시아 작가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처럼 박경리의 《토지》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김 교수는 원주에 갔다가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가 부인 김초혜 시인과 함께 찾아와 박 작가를 만나고 돌아가는 모습을 목도했다. 조 작가는 “선생을 벤치마킹해서 쓴 《태백산맥》이 300만권 넘게 팔렸다”며 토지를 진작 펴냈던 선생이야말로 훨씬 더 많이 수백만 권이 팔리지 않았겠는가”라고 묻더라고 박 작가가 전했다. 그즈음 지식산업사에서 첫 출간한 《토지》는 서점에서 볼 수 없었던 시점이었다. 박 작가는 조 작가의 판매 부수 거론에 편치 않은 분위기였다. 김 교수 마음에도 주름살이 갔다.

26년 쓴 《토지》, 28년 쓴 작가론

《박경리 이야기》는 《토지》의 생명이 상당히 길 것으로 본다는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인터뷰를 콕 짚어 인용했다. 그에 비해 이데올로기를 다룬 《태백산맥》이나 이병주의 《지리산》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김윤식의 평가가 나온다. 
김 교수는 《토지》에 나오는 인물을 일일이 세서 578명이라고 집계할 정도로 애착을 보이면서도 사실에 충실한 기록자로서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박 작가가 통영에서 피난살이를 하던 시절 초등학교 음악교사를 하던 총각과 재혼했던 사실도 들춰낸다. 외동딸 김영주의 선생님이었다. 김 교수는 박 작가가 세상을 뜬 뒤 영주에게서 의붓아버지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나는 동아일보 자료실에 보관된 박 작가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찾아본 적이 있다. 빼어난 미모였다. 지금은 총각이 ‘돌싱’ 연상녀와 결혼하는 일이 하도 흔해 화제도 안 되는 세상이지만 당시 통영 좁은 바닥에서 딸과 아들(영주의 두 살 터울 동생으로 8살 때 서울에서 사고로 죽음)을 키우는 과부와 총각의 결혼은 대형 스캔들로 비화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지방 신문에도 기사가 났다. 불륜은 아니고 어엿한 재혼이었다. 재혼 기간은 1년 남짓. 박 작가는 1953년 여름 재혼남과 헤어지고 나서 그해 겨울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국 작가 토머스 울프의 소설 제목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처럼 고향에 발길을 끊었다.
김 교수는 《박경리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할 때 박 작가의 외손자(김지하 시인과 김영주의 아들)에게 “할머니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까지 적어 핏줄로서 불편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손자의 불편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작가 심리의 일단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 후 통영을 무려 반세기나 찾지 않았다는 것도 당신의 심리적 상처를 자연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김 교수는 진단한다.

청계천 복원은 박 작가의 발상에서 시작됐다. [사진=연합뉴스]

박경리 작가론에서 환경 보존에 대한 관심과 공헌을 빼놓을 수 없다. 작가는 한때 <숨소리>라는 환경 계간지(季刊誌)를 2년 동안 발간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감당할 수 없어 그만두었다. 청계천 복원 아이디어의 첫 출발이 박경리에게 있음은 누구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 알고 있었다(책 594쪽). 청계천 살리기를 열망한 학자들이 토지문화관에 모여 두 차례 세미나를 하면서 청계천 복원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청계천, 하천 생태계 복원의 신호탄

청계천이 시작되는 폭포 옆 벽면에는 박범신 작가의 ‘청계천 살림의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원래는 박 작가의 글을 실으려고 했으나 수표교 복원을 무시한 개발식 복원 등을 박 작가가 비판하면서 청계천 기념비문 글쓰기를 거부해 박범신 작가가 나서게 됐다.
박 작가는 1970년대 청계천 둑을 거닐며 목욕탕에 다니던 추억이 있다고 《동아사이언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강둑을 걸으며 흐르는 물, 풀과 나무, 인간과 온갖 생물이 어우러진 정취를 소설가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박 선생은 청계천을 복원하면 무수한 생명이 되살아나고 너무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청계천 복원의 첫 구상이었다. 지금은 전국 곳곳에 청계천 복원을 벤치마킹한 하천 생태계 복원이 이루어졌다. 청계천 복원을 마무리한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 오수(汚水)에 빠져들면서 청계천을 상징하는 깨끗한 인물이 아쉬워졌다. 청계천 초입에 작가의 주변 경관에 부담을 주지 않을 아담한 인물 조각상을 세운다면 환경 복원의 중요함을 알리고 청계천을 되살린 의미를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박경리 작가의 호적 이름은 금이(今伊)였다. 촌 아가씨 이름을 대작가에 어울리는 경리(景利)라는 필명으로 바꾸어주고 현대문학을 통해 데뷔시킨 이가 김동리 작가였다. 작가는 곳곳에서 김동리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낸다.
작가가 박경리 세미나에서 말한 대로 이 책은 애독자에겐 작품을 더욱 좋아할 수 있도록 문학평론적 식견을 알려주고, 작가를 향해 당신이 일구어낸 성취의 문학사적 의의를 반향해 주는 책이다. 김형국 같은 애독자, 꼼꼼한 기록자이자 연구자를 만난 것은 박경리 작가의 복이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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