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도시 아이들의 농촌유학, 폐교 살리고 생태 친화 감수성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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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겸직교수
입력 2022-09-1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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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운장산 휴양림  자락에 있는 조림 초등학교에는 서울 등에서 온 농촌 유학생 10여명이 다닌다. 조림초 인근에는  아토피 치유 마을(진안군 정청면 봉학리)이 조성돼 가족이 함께 거주할 수 있다.(사진=진안군 보건소 전설희)

학교를 마치면 학원을 돌던 대도시 아이들이 한 학기 또는 두 학기 동안 농촌 학교로 전학을 가는 농촌 유학이 전남과 전북에 이어 강원 경북으로 확산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전남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2021학년도에 처음으로 농촌유학 지원을 시작했다. 농촌유학은 서울 학생들이 농촌 환경 속에서 생태 친화적 감수성을 기르고 상호협력하는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가 있다.
작년 1학기에는 서울 학생 81명이 전남 10개(순천, 화순, 영암, 곡성, 해남, 강진, 신안, 장흥, 담양, 진도) 지역으로 이주해 농촌유학에 참여했다. 이 중 57명(70.4%)이 한 학기 더 농촌유학 생활을 연장했다. 농촌유학 2학기에는 7개 시·군(구례, 장성, 광양, 보성, 함평, 무안, 고흥)이 추가돼 17개 지역에서 147명(연장 57명, 신규 90명) 학생들이 참여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원래 농촌유학 대상 지역으로 전남 전북을 함께 할 계획이었으나 전북이 호응하지 않아 전남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2022년 지방선거로 교육감이 바뀌면서 전북도 참여하게 됐다. 서울시교육청은 8월 31일 김관영 전북지사, 서거석 전북교육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장기철 재경전북도민회 상임 부회장이 참석해 농촌유학 협약식을 가졌다. 특히 이번에는 재경전북도민회가 참여한 것이 눈길을 끈다. 인구가 많은 농도(農道)였던 전북은 산업화 시대에 수도권 등으로 이주한 주민이 400만 명이나 된다. 서울시교육청과 전북교육청은 400만 출향 전북도민의 협력을 받아내야 농촌 유학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에서 묵으며 농촌 유학을 할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아직은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희망지역을 모두 충족시키기 어렵지만 농촌 유학생수가 늘어나면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숙식을 하는 농촌유학도 가능해질 것으로 서울시교육청은 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서 1년간 농촌유학비 매달 80만원 지원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농촌유학 학생에게 최대 1년간 농촌유학비를 매월 80만원 지원한다. 도시의 아이들이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향인 농촌에 가서 자연과 어울리는 생태교육을 받고 농촌 학교를 살려내는 실험이다. 도시와 농촌의 아이들은 함께 공동생활을 하며 사화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배려하는 마음을 기를 수도 있다,
농어촌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인구감소로 인해 소멸위기를 맞고 있다. 인구 3만 명 미만의 군 단위 기초지방자치단체 24곳은 지방소멸이 발등의 불이다. 이러한 지자체들은 충분한 재정을 확보하기 어려워 주민복지 증진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도시 아이들의 농촌유학은 폐교 위기에 처한 농촌 학교를 살리기 위해 농식품부와 농어촌공사가 처음 시작한 사업이다. 학생 수가 줄어들어 농촌 학교가 폐교되면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도시로 떠나면서 인구 감소를 가속화한다. 지방소멸과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농촌인구를 늘리고 생태시민을 육성하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시작한 농촌유학 사업에 작년부터 서울시교육청이 참여하면서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농촌으로 유학 간 도시의 아이들은 넉넉한 교실에서 교사들로부터 집중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가 끝나면 학생들이 돌아갈 기숙사 시설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농촌유학센터. 전국 28곳에 농촌유학센터가 설립돼 농촌에 유학 온 도시학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방과후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8개 농촌유학센터 중 유학생 수가 50명이 넘는 곳은 경기도 여주의 밀머리 유학센터와 충북 단양의 한드미 유학센터. 여주시 점동면 당진리(밀머리 마을) 점동초등학교 학생 수는 100명에 불과했으나 농촌유학생들이 전학해오면서 학생수가 늘어났다. 농촌유학을 통해 전학 온 아이들이 참여하면서 여주 지역의 초등학교 체육대회, 댄스대회 등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농촌유학으로 인연이 닿은 유학생 학부모들이 이주해오면서 점동면 마을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단양 한드미 마을에 유학오는 학생 매년 50명

단양의 한드미 마을은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 아래 골짜기에 있는 산촌(山村)이다. 한드미라는 지명도 원래 큰 골짜기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어쩌다 소백산 등산객들만이 찾아오던 오지였으나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녹색농촌 체험마을이 됐다. 주민들이 합심해서 돌담길을 쌓고 방갈로를 만들고, 고로쇠 약수로 담근 전통 청국장과 된장을 개발했다. 지금은 연간 3만~3만5000명 정도의 외지인이 마을을 다녀가면서 주민의 소득도 높아졌다.
한드미 마을에서 농촌유학은 대곡분교의 폐교를 막는 방법이었다. 학생수가 줄어들어 젊은 사람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도시로 나가 마을에 노인들만 있는 마을이 된다. 지금은 한드미 마을의 농촌유학센터가 소문이 나면서 매년 50명 가까운 도시 아이들이 유학생으로 찾아와 대곡분교를 살려냈다.
서울시교육청은 전남 전북에 이어 강원 경북과도 농촌유학 협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농식품부는 28개 유학센터 위주로 농촌유학을 운영하고 있지만 시울시교육청은 해당 지역의 마을로 가족 전체 또는 일부가 이주하여 생활하는 가족체류형, 농가에서 서울학생이 함께 거주하는 홈스테이형으로 다양하다. 도시에서 아토피로 고생을 하는 학생들은 전북 진안군 정천면 조림초등학교에 다니며 운장산 자연휴양림 자락에 있는 아토피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할 수도 있다.
자녀교육의 방식은 부모의 가치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농촌유학 협약 체결식에서 “인구소멸과 기후변화의 시대를 맞아 농촌유학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국제적인 것과 통하는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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