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한일경제협력을 복원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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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입력 2022-09-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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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나 영토문제는 한 국가의 역사관에 입각하고 있어서 단기간에 해결하기 매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또한 국민 정서나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일단 관계가 꼬이기 시작하면 복잡한 실타래가 더욱 복잡하게 얽혀들어 간다. 한·일관계는 현재 이러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관계 악화는 결코 두 나라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최근 국제정세 변화는 양국 관계의 개선을 더욱 요구하고 있다.

먼저 미국 중심의 국제무역 및 금융체제가 약화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미·중 간의 패권경쟁이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세계화 경향이 약화되고 지역화 혹은 블록화의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미국의 이러한 시도에 동참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무역, 공급망, 청정에너지, 반부패와 관련된 국제경제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이 출범시킨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미국, 일본, 한국, 대만의 4개 국가 간 협력을 도모하고자 하는 시도도 이러한 움직임의 하나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각종 재해가 증가하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산업구조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우리가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각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는 지구촌 곳곳에서 더욱 증가하고 있다. 폭우와 가뭄, 그리고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규모의 대규모 태풍의 내습은 기후위기의 절박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린 전환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이며 이를 위한 산업구조 전환과 이에 필요한 기술개발은 우리가 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할 초미의 도전이 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산업구조 전환도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은 경제사회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산업의 등장을 촉진한다. 이 과정에 잘 적응하는 국가는 생존할 수 있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국가는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다. 그만큼 한 나라의 장기적인 발전 가능성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일 경제관계는 이러한 관점에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일 경제관계는 약화추세를 보여 왔다. 우리나라의 대외무역에서 일본의 비중은 2011년 14%에서 2021년 6.7%로 하락하였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도 2012년 45.4억 달러를 정점으로 하락 추세에 있다. 2021년 일본의 대한직접투자는 12.1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한·일 FTA협상은 2003년에 개시되었지만 2004년 11월에 무산되었다. 무역역조를 이유로 한 산업계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한 결과이며 이후 양국 간에는 FTA 관련 논의는 없는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2022년 2월에 발효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서 한·일 양국은 상호 양허를 하고 있으나 그 수준은 미흡하며 시장개방효과도 제한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양국 간 통화스와프는 1998년 50억 달러 수준으로 체결되었으나 2013년 30억 달러 계약을 종료한 이후 재계약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치앙마이이니셔티브 하에서 체결되어 있던 10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도 2015년에 종결되었다. 양국의 국제금융협력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는 양국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는데 2022년 6월 현재 포토레지스트만 특정포괄허가로 전환한 상태에 있으며 화이트국가로의 복원은 미수용되고 있다. 다만 양국 무역은 여전히 소재, 부품, 장비를 중심으로 한 강고한 공급망을 유지하고 있다. 대일수입에서 중간재와 자본재는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일수출에서도 중간재와 자본재가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정세 변화는 한·일 경제관계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전략과 경제분야에서의 인도태평양전략인 인태경제프레임워크는 한·일 간의 협력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은 2022년 5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하여 특정중요물자의 공급망을 확보하고 정부 주도로 기술을 개발한다는 방침을 명확히 하였다. 한국도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략물자의 공급망 관리를 위한 체제정비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양국은 경제안보 차원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2019년의 수출규제와 같이 상호 불신과 견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신뢰를 회복하고 공급망의 회복 탄력성을 높일 수 있도록 양자 및 다자 차원에서 소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양국이 모두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 전략물자의 공급망은 더욱 불안해진다. 두 나라 모두 반도체, 배터리, 식량, 에너지, 전략 광물 등 국가경제에 중요한 물자의 안정적 조달망을 구축하는 데 정책적 역량을 모으고 있다. 양자 차원에서는 한·일 경제안보를 협의하는 정부 간 채널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야 한다. 다자 차원에서도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나 팹4(칩4) 등을 활용하여 공동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소통해야 한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미래의 이익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한·일 간 협력은 일본에도 유익할 수 있다. 일본은 디지털 전환을 위해 디지털청을 신설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5G통신장비시장에서의 한·일협력이나 데이터센터의 한국 유치, 일본 클라우드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서의 한국의 대일진출 등 협력의 기회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IT인력의 일본 취업 증가는 일본의 디지털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클린에너지 분야 한·일협력도 필요하다. 특히 에너지 전문가들은 수요자원 확보를 위해 해외에서 대규모 수소 공급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고 여기에 한·일 간 협력의 여지가 많다고 주장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양국의 협력도 요구된다. 특히 한국은 GDP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우 높은 국가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국가이다.

국제정세는 날로 험악해지고 있다. 한·일 양국은 불신을 신뢰로 전환하고 협력을 바탕으로 한 경쟁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야 한다. 일본은 여전히 한국기업의 소부장 조달거점이다. 한국은 일본 소부장 산업의 중요 시장의 하나이다. 여전히 상호 윈윈의 여지는 매우 크다. 인도태평양전략에 기반한 공급망 재구축이 진행되고 있는 이행기이다. 함께 번영하기 위해 소통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성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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