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 복귀 천명…원전 산업 부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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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2-09-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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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하우 전수도 힘들어…관련 업계 "사업 기반 이미 무너져"

  • 日 에너지 믹스 실패

2016년 7월 8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 앞에서 열린 원전 재가동 반대 집회에서 한 남성이 반원전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8월 24일 차세대 원전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AFP·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 대재앙 이후 11년간 내리막길을 걸어온 일본 원전 업계가 새로운 정책에 힘입어 되살아날 수 있을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이 혼란에 빠지자 일본 정부는 원전 건설을 재개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시장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사업 기반이 약화된 원전 업계 생존력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
 
기시다 원전 부활 강력 의지···“위험보다 에너지 공급 더 걱정”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24일 차세대 원전 개발·건설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탈(脫)탄소 사회 실현을 논의하는 ‘GX(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실행 회의’에서 “차세대형 혁신로(爐) 개발과 건설 등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항목이 제시됐다”며 “연말에 구체적인 결론을 낼 수 있도록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력 확보를 위해 운전 중단 상태인 원전 17기에 대한 재가동도 추진하기로 했다. 17기 가운데 10기는 원자력규제위 심사에 합격해 재가동한 적이 있으나 나머지 7기는 지방자치단체 동의를 얻지 못해 재가동이 불발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이들 7기에 대해서도 내년 이후 재가동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또한 최장 60년으로 정한 원전 운전 기간을 연장하는 안도 검토할 방침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이후 일본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기존 원자력 발전소를 일시 폐쇄했다. 원자력 의존도는 2010년 25%에서 4%로 급감했다.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대중의 깊은 불신으로 인해 원자로는 6개만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석탄, 천연가스, 석유 등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2050년까지 넷제로(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원자력 에너지 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일본은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기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에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은 천연가스 약 9%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 회사 마티오스(Mathyos)의 톰 오 설리번은 기시다 내각이 앞으로 3년간 주요 선거가 없는 황금기를 맞은 점을 언급하며 “지금이야말로 이것(새 원자력 정책)을 하기에 완벽한 시기”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그는 “일본은 이미 다른 주요 7개국(G7)보다 더 많은 전기요금을 지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자민당 관계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시간이 충분히 흘렀고 대중은 원전 위험보다 에너지 공급에 대한 걱정을 더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FT에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적 저항이 여전하기 때문에 원전 17기 모두를 재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노하우 전수도 힘들어···원전업계 “사업 기반 이미 무너져”
 

 

기시다 총리가 원전 부활을 위한 신호탄을 쏜 직후 일본 도쿄 주식시장에서 관련 기업 주가는 오름세를 탔다. 원자력 발전소를 보유한 도쿄 전력 홀딩스 주가는 지난달 24일 전일 대비 10% 급등했다. 같은 날 간사이 전력은 3% 올랐다. 원전 보수공사나 유지보수를 하도급해 수행하는 기업인 도쿄에네시스와 원자로 등을 건설하는 미쓰비시중공업은 각각 9%, 7% 상승했다.
 
원전업계에서도 환영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비관론도 상당하다. 공급망 혼란, 인력 감소, 글로벌 경쟁력 약화 등으로 인해 일본 원전 산업이 되살아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닛케이아시아는 “원자로 제조사인 미쓰비시중공업과 도시바는 일본 자국 내 원전 산업이 긴 침체를 겪으면서 사업 기반이 상당히 무너졌다고 입을 모은다”고 전했다.
 
가토 아키히코 미쓰비시중공업 원자력 사업부장은 “신규 원전 건설이 결정되더라도, 문제는 공급 업체가 수주하기까지 최소 6~7년 혹은 그 이상 소요될 것”이라며 “원전업계는 그 시간을 버텨야 한다”고 토로했다.
 
일본은 2011년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이 전무했다. 건설 일감이 사라지자 관련 업계는 해체 작업이나 유지보수 등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가토 부장은 미쓰비시중공업에 펌프를 공급하던 업체가 문을 닫았던 때를 회상하며 “담당 엔지니어들이 은퇴했고 (기술을 이어받을) 젊은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더는 부품을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펌프 등 일부 부품을 미쓰비시중공업이 직접 제조하는 안도 검토했으나, 인적·물적 비용으로 인해 번번이 좌절됐다. 사업을 접은 회사를 대신할 다른 회사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 매번 엄격한 안전·인증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원자력 사업을 담당하는 도시바에너지시스템스&솔루션에 부품을 공급하던 기업들도 수요 급감으로 경영난에 처했다.
 
연구개발 투자도 급격하게 줄었다. 일본원자력산업협회(JAIF)가 2021년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2021년 3월 말까지 총지출은 166억엔(약 1억2160만 달러)으로 2010년(353억엔) 대비 절반에도 못 미쳤다. 또한 2011년 이후 원자력 사업 부문에서 20개 회사가 철수했다.
 
또 다른 골칫거리는 기술력과 노하우다. 현장 작업이 없으니 노하우 전수 등 기존 기술력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도시바에너지 대변인은 닛케이아시아에 “실제 건설 현장에 투입된 경험이 있는 직원들은 퇴직하고, 신규 직원은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전무하다”고 했다.
 
JAIF가 2021년에 관련 업계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232명 가운데 56%는 원전 폐쇄가 '기술력 유지와 전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日 에너지 믹스 실패
쇠퇴하고 있는 원전 산업을 되살리려는 또 다른 배경은 에너지 믹스(energy mix) 실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믹스 중심에 두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에너지 믹스란 다양한 에너지를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것을 일컫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에너지 자급률은 2020년 11%로 45개국 중 셋째로 낮다. 더구나 3월에는 지진으로 인해, 올여름에는 극심한 더위로 인해 발전소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일본 정부가 원자력 에너지를 되살리는 데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문제는 여론이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27~28일 18세 이상 유권자 9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58%가 원전 신증설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34%에 그쳤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을 통한 전력 생산을 20%까지 확대하는 게 목표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 산하 일본천연자원에너지청이 제시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 목표를 달성하려면 원자로 20개를 가동해야 한다. 현재는 6개만 가동 중이며 원자로 15개를 추가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닛케이아시아는 짚었다.
 
더구나 기존 원자로 중 절반은 운영한 지 30년이 넘었다. 추가 안전 조치와 절차를 거치치 않는 한 원자로는 40년 동안만 운영할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전 운전 기간을 늘리는 게 필수다.
 
무라카미 도모코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 원자력 연구원은 “(일본 정부의 이번 원전 건설 계획은) 치솟는 전기요금으로 시민들이 충격을 받은 시기에 나온 것”이라며 “정부는 일본이 처한 상황과 함께 원자력의 잠재적 위험성까지 세심하게 설명한 뒤 국민들이 이를 수용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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