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물가 잡으려다 경제 잡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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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동서울대 교수,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입력 2022-07-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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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시간 경제 상황 변화에 다각적 시나리오로 대응해야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동서울대 교수]

글로벌 경제에 대한 단기 전망이 어둡다. 적어도 내년 말까지는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예상을 뛰어넘은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고, 팬데믹 복병은 다시 수면 위로 기어 올라온다. 사방을 둘러봐도 좋아질 기미는 거의 없고 나빠질 조짐만 넘쳐난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맨다. 씀씀이를 줄이고, 해야 할 일도 뒤로 미룬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적 약자가 더 고통을 받는다. 국가 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기축통화인 달러는 연일 강세이고, 기타 통화는 약세 일로다. 이에 뒤질세라 원자재나 식량을 가진 국가들은 이를 무기로 가격을 부추기면서 국익을 챙기기 위해 혈안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일수록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고 우리도 이 부류에 속한다.

물가 폭등은 계속되고, 각국 정책 당국이 도미노처럼 금리 인상 스텝을 밟으면서 단기적으로 경제 선순환보다 인플레이션 악순환의 골이 더 깊어지는 형국이다. 자칫 부도가 나는 국가가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마저 확산한다. 글로벌 수요는 위축되고 한국과 같이 무역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더 큰 충격을 받는다. 미국 경제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올해 2%대 성장이 난망이고, 2분기 중국 경제는 0%대 성장에 그쳐 연간 5%대 성장은 이미 물 건너 갔다. 러시아 송유관이 막힌 유럽 경제는 이미 초토화되고 있다. 에너지 위기는 세계의 분열을 가속하고, 중국 지원에 힘입어 러시아 경제가 아직 백기를 들기에는 시기상조처럼 보인다. 인도와 브라질 등 신흥 강대국마저 미국 편에 서기보다 러시아 쪽으로 기운다.

공급망 붕괴와 원자재 가격 급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악몽에 시달리는 글로벌 경제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오르는 ‘S(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화두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기 후퇴를 의미하는 ‘R(리세션)의 공포’로 경제 현상에 대한 분석이 다소 달라지는 분위기다. 주식·부동산 등 자산의 위기가 제조업 등 실물경제의 위기로 전이되는 양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만 문제의 핵심은 이 ‘R’의 기간이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인지에 초점이 모인다. 현재는 물가를 잡는 것이 최대 현안이지만 물가가 잡히고 난 후 불거질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다. 그것이 위기를 연장할 수 있지만 의외로 회복의 불씨를 댕길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켜볼 일이다.
 
물가가 급등한 이유로는 에너지 등 원자재나 식량과 관련한 글로벌 시장의 붕괴가 결정적이지만 코로나 확산세가 급속히 진정되면서 보복 소비가 분출한 점도 원인 제공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인 연초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언택트에서 콘택트로 '쩐'의 대이동이 시작하면서 경제 활동 재개라는 ‘리오프닝’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물론 당시에도 코로나 기간 중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테이퍼링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혹은 중국 변수 등 다양한 부정적 시나리오 있었지만 대세는 긍정적인 편이 우세했다. IMF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들도 다소 보수적이긴 했지만 완만한 성장세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했다.
 
악재 걷히면 ‘W’형 회복으로 유턴 가능성 상존
 
이러한 모든 장밋빛 환상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급속하게 비관적 기류로 바뀌었다. 신(新)냉전과 자원 민족주의의 대두 등으로 세계화 시대는 저물고 국가 이기주의가 급물살을 탄다. 마치 지구가 두 동강 난 분위기다. 혼돈의 와중에서도 나름대로 이익을 챙기고, 이를 최대한 연장하려는 약삭빠른 무리도 보인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의 지갑이 닫히고 수요는 감소한다. 기업의 재고가 쌓이고 제조업의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국제 원자재나 식량 가격이 줄줄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인다. 원유 가격도 진정세를 보이면서 배럴당 100달러 전후에서 공방한다. 수급 불안은 여전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는 ‘피크아웃’, 정점을 찍고 완화되는 모습이 가시화하고 있다.
 
오히려 수개월 후에는 물가 하락과 이로 인해 경기가 침체하는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벌써 시중에서 나돈다. 실제로 빅테크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고 감원 바람이 거세게 분다. PC·스마트폰·가전 등의 수요가 감소하면서 경기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가격 하락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시장 흐름을 빠르게 읽는 경제주체들은 인플레이션이 아닌 디플레이션 우려에 초점을 맞춰 움직인다. 사실 디플레이션이 훨씬 더 경제 회복에 치명적이다. 이처럼 마구잡이로 널뛰기를 하는 것이 작금의 세계 경제 추세다. 섣부른 예측이 졸지에 허구로 바뀌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경제주체들을 난감하게 하는 경우가 근자에 잦다. 주관이나 중심을 잡지 않고 있으면 한 방에 갈 수도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글로벌 경기의 잦은 변화는 매우 민감하게 작용한다. 특히 수출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해외시장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한다. 다수 경제 예측 기관들의 전망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예측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3〜4개월 이내에 수습되면 경제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순서를 밟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코로나 재확산세가 두드러지지만 과거와 같이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서의 시나리오다. 포스트 코로나 회복세가 살아나면서 후퇴의 기간이 단축되는 ‘W’자형 모드를 탈 공산도 있다. 미·중 경제의 향방이 변수이긴 하지만 디플레이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물가 잡으려다 경제 잡지 말고 경제 운용 관련 다각적인 시나리오 플래닝과 대응이 요구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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