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공화(共和)' 없는 검찰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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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2-06-2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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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공화국(共和國)’에서 주인은 국민이다. 주권을 가진 공화국 국민은 대표자를 선출해 통치를 위임한다. 또 입법과 사법, 행정을 분리한다. 공화국은 특정한 1인, 특정한 독점을 허용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공화제는 바로 피와 자유를 맞바꾼 결과다. 우리 헌법도 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공화제를 유지하고 있다. 형식적일망정 초대 이승만부터 박정희, 전두환도 선거를 통해 선출됐다. 맑고 환한 의미를 담은 공화제가 우리 땅에서는 오용되고 있다. 주로 부정적 뉘앙스다. 비리공화국, 조폭공화국은 물론이고 검찰공화국까지 온통 음습한 느낌이다. 왜 우리 사회에서 공화국은 대접받지 못할까.

전제적 권한을 틀어쥔 몇몇이 권력을 남용해온 역사와 맞물려 있다. 조폭이든 독재자든 그들이 행사하는 권력 행태는 유사하다. 우선 소통이 없다. 일방적 지시와 복종만 있다. 또 자신들이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 그리고 몇몇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독점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 통치 행태를 떠올리면 수긍할 수 있다. 이들은 권력을 사유화한 채 그릇된 신념을 현실에 옮겼다. 비판적인 이들은 배척하고 권력을 위임해준 국민은 짓밟았다. 그 결과 공화제는 무력화됐다. 직선제 이후 정부 또한 온전한 공화제 정신을 구현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심지어 촛불혁명 결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 정부는 ‘우리는 옳다. 선하다’는 무오류와 독선으로 일관했다. 또 내 편은 무한한 관용, 상대는 악마화하며 오만했다. 자기편은 감싸고 상대는 척결하는 극단적 진영정치 아래서 공화는 실종됐다. 누적된 분노는 정권 교체로 나타났다. 새 정부는 전 정권 실정에 편승해 출범했다. 자신들이 잘해서 이겼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의원 간 격차는 0.73%포인트(24만7077표)에 불과했다. 그 뜻을 겸손하게 읽어야 한다. 훼손된 공화제 정신을 복원하라는 것이다. 한데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주권자 뜻을 저버렸다는 우려가 팽배하지만 새 정부는 ‘내로남불’로 일관하고 있다.

‘검찰공화국’ 비판을 정치적 공세로 흘려듣기에는 정도를 넘어섰다. 장차관 7명,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6명이 검찰 출신이다. 여기에 금융감독원장,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 총리 비서실장도 추가된다. 숫자도 문제지만 권력의 질에서도 검찰 편중은 심각하다. 윤 대통령 측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공직자 인사 검증부터 정보 수집 권한까지 장악했다. 인사 검증 기관인 ‘인사정보관리단’이 법무부에 있다. 또 검찰 출신이 차지한 대통령실 비서관 자리는 죄다 핵심이다. 총무, 인사, 부속, 법무까지 중요한 자리에 검찰 출신을 배치했다. 서초동 검찰청을 용산 대통령실로 그대로 옮겨왔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검찰 인사도 논란이다. 검찰총장을 비워둔 채 단행한 것도 문제지만 편향성 때문이다. 법무부는 28일 중간 간부 인사에서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에 측근이던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대거 발탁했다. 고검장과 검사장에 이어 중간 간부까지 특수부 검사를 대거 배치한 게 눈에 뜨인다. 특히 전 정부 청와대 블랙리스트 의혹과 이재명 민주당 의원 관련 대장동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 1‧2‧3부장을 모두 특수통 검사로 채웠다. 사정수사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이다. 여론은 엇갈린다. 전 정권에서 제기된 의혹을 정리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정치 보복을 위한 ‘판갈이’로 보는 시각이 맞선다.

물론 무리한 검찰 인사 배경에는 전 정부 탓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 ‘검수완박’ 법을 서둘러 처리했다. 법은 검찰 수사 범위를 대폭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로운 법은 시행까지 4개월 유예됐다. 새 정부는 인사청문회 대상인 검찰총장 임명으로 시간을 허비할 만한 여유가 없다. 총장 공석 상태에서 인사를 강행한 것은 이 같은 결과다. 하지만 무리한 친정 인사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선한 의도는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전 정부가 국민들에게서 멀어진 원인 가운데 하나다. 자신들은 옳다고 강행했지만 국민을 힘들게 한 경우는 허다했다. ‘내로남불’은 결국 문 정권을 허물었다.

검찰공화국이란 우려에 대해 새 정부는 적재적소와 시급성을 들어 정당화했다.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에 대해 “과거 민변 출신으로 도배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또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이라고 했다. 전 정부가 그랬으니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인지. 또 유능한 인물은 검찰에만 있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측근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의사 결정은 왜곡되게 마련이다. 에코체임버와 편향동화는 합리적 판단에 걸림돌이다. 똑똑한 참모를 기용하고도 잘못된 결정을 내린 케네디 대통령 시절 ‘피그만 침공’은 반면교사다.

새 정부는 ‘내로남불’을 답습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검찰공화국’을 우려하고 있다. 29일 데이터리서치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에 동의하느냐”는 물음에 61%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국민 대다수는 검찰공화국을 걱정하는데 자신들만 유능과 적재적소를 내세우는 꼴이다. 전형적인 ‘정신승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민 과반이 반대하는데도 조국을 장관으로 임명했다. 조국을 고집한 문재인, 검찰공화국 비판을 합리화하는 윤석열. 두 사람 모두 자신이 하는 일은 옳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내로남불’이고 누가 ‘소신’인지 애매하다.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에 성공하자 공포 정치를 했다. 혁명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혁명의 적’으로 간주된 사람은 무차별 처단했다. 1년 만에 50만명을 가두고 3만5000명을 처형했다. 순수성은 사라지고 공포가 지배했다. 많은 이들을 단두대에 올렸던 로베스피에르 또한 단두대에서 죽었다. 새 정부에서 ‘내로남불’과 로베스피에르의 그릇된 신념을 읽는다면 과장일까. 국민이 주인인 공화제로 가는 길은 이렇게 멀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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