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의 시선] 문화재가 된 청와대를 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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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고문·카이스트 겸직교수
입력 2022-06-2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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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서울에 처음 와서 청와대 구경을 해봤다. 사슴이 뛰놀던 곳에도 들렀는데 그곳이 녹지원이었던 것 같다. 기념품으로 받은 학용품이 무엇이었던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후로 기자가 돼서 청와대 본관에 취재 또는 회의를 위해 몇 차례 드나들었지만 청와대 구석구석을 살펴볼 기회는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문화재청에 청와대를 내준 것은 정치문화를 바꾸는 결단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 들어앉아 민(民)의 소리는커녕 비서동의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청와대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옮겨가고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청와대 안의 청와대’라는 관저에 처음 들어가 봤다. 청와대에는 조선시대부터 왕과 왕자의 발길이 닿은 곳이 많다. 이번에 청와대를 둘러보고 느낀 소감은 권위주의 시대의 대통령들이 헌법을 개정해 임기를 연장하고 독재의 길로 간 것은 권력도 권력이지만 청와대가 너무 좋아서 그랬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청와대 본관을 설계하면서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을 참고한 듯하다. 청와대 본관은 석조건물이고 근정전은 목조건물이다. 근정전은 외관이 중층(重層)이지만 내부는 통칸이다. 청와대 본관은 2층 건물이고 대통령 집무실이 2층, 여사 집무실이 1층에 있다.

청와대 본관은 노태우 대통령 때 현대건설이 지은 것이다. 건물의 아름다움이나 풍모에서는 근정전에 한 수 밀린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던 군인정치의 시대에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너무 권위적이고 실용성이 떨어진다.

전면 9칸인 본관은 지붕 날개에 잡상(雜像) 11개가 올려져 있다. 잡상은 궁전이나 전각의 지붕 위 네 귀에 여러 가지 신상(神像)을 새겨 얹는 장식 기와를 말한다. 청와대 본관이 경복궁 근정전보다 잡상이 두 개 더 많아 황궁(皇宮)의 격을 갖추었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이념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지붕 장식이다.

경복궁은 백악산과 인왕산을 차경(借景)으로 끌어들이고 정전인 근정전 앞마당에 박석(薄石)을 깔고 100여개 수종으로 조경을 했다. 근정전의 아름다움은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한 베이징의 자금성(紫禁城)에 견줄 바가 아니다.

대통령실의 구조변화가 정치문화 바꾼다

본관은 대통령비서실이 위치한 여민관과 500m 떨어져 있다. 여민관 비서동에서 본관까지 오는데 2개의 관문과 경비초소를 지나고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비서들이 본관에 들어서면 주눅이 들어서 할 말도 못했을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인 2011년 5월 1일 미국은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 또는 사살 작전에 돌입했다. 백악관의 작은 회의실에서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대원의 방탄 헬멧 위에 달아놓은 카메라에서 보낸 실시간 영상을 보며 합동특수작전사령부 마셜 B 준장이 직접 지휘를 했다.

회의실 중앙 자리를 마셜 B 준장이 차지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비좁은 방을 메우고 모니터를 지켜봤다. 오바마가 회의실로 들어왔을 때 마셜 B 준장이 자리를 양보했지만 대통령은 그냥 거기 앉아서 지휘하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일 회고록에서 대통령으로서 실시간으로 군사작전을 지켜본 것은 내가 처음이자 유일했다고 썼다.
 

'청와대 안의 청와대'라는 말을 들었던 대통령 관저. [사진=황호택]

용산의 대통령실이라면 이런 백악관 식의 작전회의가 가능할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세월호가 가라앉던 날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도 본관이나 여민관 집무실에 가지 않고 관저에 있었다. 주말에만 들어오던 최순실이 월요일(2018년 4월 16일) 오후 2시 15분쯤 들어와 “배가 침몰했다는데 어떻게 된 거요”라고 물으며 비서 3인방과 회의를 했다. 박 대통령은 그제야 강남에 있는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손질하고 오후 5시쯤 중앙재해대책본부로 갔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사고 당일 대통령이 관저에 머문 게 국회에서 논란이 되자 “아침에 일어나시면 그것이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관저 침실에 있던 박 대통령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전화도 안 받았다. 이래서 육군 중령이 자전거를 타고 보고서를 관저에 전달해야 했다.

최순실의 채근을 받고 오후 5시 15분쯤 중대본을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은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물었다. 안전행정부 2차관은 “선실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아 갇혀 있어서요?”라고 반문했다. 세월호는 오전 10시 17분쯤 침몰했고 학생들이 모두 바닷속 고혼(孤魂)이 돼 있을 때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 이야기를 듣고 “국가의 기간통신망이 집중한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대통령과 군경, 청와대 참모들이 회의를 열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 초기에 그랬더라면 학생들을 대부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비서관들과의 소통을 위해 여민관 1관 3층에 집무실을 만들었다. 본관 집무실의 절반 크기였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잘 쓰지 않다가 문재인 전 대통령 때 여민관 집무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숙소인 관저는 솟을대문 안에 대형 한옥 건물 3개로 구성돼 있다. 문간에 작은 사랑채가 장식용 건물처럼 붙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 대통령’이었다.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본관이나 여민관 집무실에 가지 않았다. 박 대통령 사건과 수사를 하면서 이러한 청와대의 구조와 폐단을 잘 알게 된 윤 대통령이 일부 보수세력까지 반대하는 분위기에서도 대통령실을 이전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본다. 윤 대통령도 일단 청와대에 들어왔다가 용산 집무실이 틀을 갖춘 뒤에 옮기려고 했다면 문 대통령처럼 대통령실 이전 공약을 지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솟을대문에 인수문(仁壽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관저는 대형 한옥 건물 세 채가 기역 자로 배치돼 있다. 대통령 침실 옆에는 수령이 100년 넘어 보이는 모과나무가 서있고 주황색 능소화가 담장을 타고 오른다. 대통령 침실 건물에는 드레스룸, 가족용 식당, 가족 침실, 미용실 등이 있다. 미용실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올해 5월 달력이 걸려 있었다. 윤 대통령 가족이 청와대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2022년 5월 달력은 계속 그대로 남아 있게 됐다. 다른 한옥 건물에는 접견실 만찬장 등이 있다.

관저를 나서면 오운정(五雲亭)과 미남불로 가는 산책로가 나온다. 경복궁 뒤쪽 정원에 있는 오운정은 앞면 1칸 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정자. 대원군 집권 시기에 지은 건물로 추정된다. 오운정이라는 편액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가 쓴 것이다. 오색구름이 펼쳐져 있는 신선 세계 같다는 의미다.
 

불교계에서는 상징성을 고려해 미남불을 청와대 경내에 그대로 놔두자는 의견도 있다. [사진=황호택]

오운정에서 2분 정도 더 걸으면 미남불이 나타난다. 공식 명칭은 경주(慶州) 방형대좌(方形臺座) 석조여래좌상. 석굴암 본존상의 모습과 비슷하다. 본래 경주에 있던 것을 일제 총독이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2018년 보물로 지정됐다. 경주의 시민단체들이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달라는 반환 운동을 펴고 있다. 그러나 불교계에서는 이 불상이 청와대 경내에 위치함으로써 생기는 효과를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관저 앞으로 내려오면 아름다운 한옥 건물 침류각(枕流閣)이 있다. 경복궁 후원에서 연회를 베풀기 위해 1920년대에 지은 건물이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여유로운 삶을 뜻한다.

한옥 건물 상춘재(常春齋) 앞에는 120여종의 나무가 우거진 녹지원이 있다. 녹지원을 상징하는 명품 반송(盤松)이 있는데 수령은 160여년에 이르며 높이는 16m. 다른 천연기념물 나무들에 비해 수령이 길지 않지만 수형과 품새를 보면 천연기념물 감인데 문화재청의 역차별을 받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실 결국은 세종시로 가야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지키지 않았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의 대통령집무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많은 비용을 들여 광화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꼭 이전해야 하는 것인지, 이전한다 해도 국방부 청사가 가장 적절한 곳인지 의문”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과하지는 못할망정 후임자의 이전 계획에 초를 치는 것은 무슨 심사였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윤 대통령이 청와대라는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문화재를 국민 품으로 돌려준 것은 백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관람을 하는 동안 문화재청 사람들이 '청와대, 국민 품으로'라고 쓰인 조끼를 입고 안내했다. 지금은 경복궁보다 인파가 더 몰리는 추세이고 앞으로도 쉬이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청와대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말은 나올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대통령이 출퇴근 때 약식회견(도어스테핑)을 하는 것은 좋지만 경호로 인한 교통차단, 관저와 집무실이 멀리 떨어져 있는 데 따른 문제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결국에는 세종시로 청와대가 옮겨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 때 수도 이전을 추진했지만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논리로 청와대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국방부 등이 서울에 남게 됐다. 미국도 수도기능은 워싱턴에 있고, 경제 문화는 뉴욕으로 나뉘어 있는데 왜 한국은 안된다는 건가.

국가 균형발전과 안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수도권은 과잉밀집 비대증을 앓고, 지방은 인구와 일자리가 계속 빠져나가 공동화하고 있다. 다음 대통령 선거 때는 캐스팅 보트인 충청표를 의식해서도 대통령실과 국회, 대법원의 세종시 이전이 자연스럽게 공약으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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