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쉽고 바르게-2]④ 에코백 들고 플로깅한다? 환경 살리고 우리말 죽이는 '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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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정 문화팀 팀장
입력 2022-06-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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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들 잇단 'ESG경영' 선포…정확한 말뜻 대부분 이해 못해'

  • 달리기+쓰레기줍는 '플로깅'…'쓰담달리기'로 풀어서 쓰기도

  • '환경·사회·투명경영' 대체어로…외국어남용 '소통장벽' 없애야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빠르게 변화하는 것 중 하나가 '언어'다. 언어는 세대 간을 비롯해 매체와 독자, TV와 시청자 등 각계각층 간 소통에 다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언어 파괴'다.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 또한 눈에 띈다. 심지어는 정부나 기관, 언론도 언어문화를 파괴하는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 등을 사용하면 언어가 새롭고 간결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상호 이해를 돕진 못한다. 자칫 소통을 방해할 수도 있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 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장기 연재하기로 한다.

아난티가 자체 개발한 친환경 목욕용품 '캐비네 드 쁘아송'. 캐비네 드 쁘아송은 프랑스어로 '물고기 연구실'이란 뜻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지만 많은 이는 이름의 뜻을 알지 못해 아쉬움을 자아낸다. [사진=아난티 ]

전 세계에 '친환경 열풍'이 불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탄소중립'은 주요 해결 과제로 떠올랐다. 주요 기업들도 추세를 따르는 모양새다. 저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박차를 가하며 '선한 영향력' 전파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기업들은 ESG 조직을 신설하거나 편성하고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한 활동, 사회공헌 활동을 홍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여행·호텔업계도 ESG 경영에 뛰어들었다. 여행도 즐기고 환경보호 활동도 하는 '일거양득' 여행 캠페인을 전개하는가 하면 호텔 내 일회용품을 다회용품으로 교체하는 등 저마다 환경보호를 위해 나름으로 노력하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엿볼 수 있다. 커피 전문점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을 사용하고, '친환경' 소재로 만든 가방을 메고 다닌다. 최근 20·30세대는 환경보호에 동참하기 위해 쓰레기를 주으며 도보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기존 운영 방식을 '새로고침'하려는 기업들의 ESG 경영 노력, 일상에서 환경을 보호하려는 이들의 자세는 높이 살 만하다. 다만 환경 정화·보호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지만 넘쳐나는 '외국어'를 정화하고 우리말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리솜리조트를 운영하는 호반호텔&리조트가 환경·사회·투명(ESG) 경영 차원에서 '그린 캠페인 리코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리코더는 '리솜 에코 투게더(Resom Eco Together)'를 뜻하는 말이지만, '친환경 활동 캠페인' 정도로 바꿔 불러도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사진=호반호텔&리조트 ]

◆환경 살리고 우리말 죽이고 

"뉴스를 보니까 ESG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그게 무슨 말이니? 맥락을 보니 ESG가 좋은 뜻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어느 날 뉴스를 시청하던 부모님이 ESG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그러면서 "요즘 티브이를 보면 뜻을 가늠할 수 없는 단어가 많이 보여. 우리말인데도 알아들을 수 없는 것들도 많고. 점점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넘쳐나는 외국어와 외국 글자를 따온 합성어나 신조어가 세대·계층 간 소통을 막는 '단절'의 신호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코로나19 장기화는 일회용품 사용을 부추겼다. 개인 '위생'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일회용품 사용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이에 기업들은 'ESG 경영'을 잇따라 선포했다. 이는 환경보호와 사회적 기여도를 고려하고 법과 윤리를 준수하며 지배구조를 개선하고자 하는 경영 철학을 뜻한다.

여행·호텔업계도 ESG 경영 추세에 동참했다. 호텔·여행업계는 일회용품 대신 '친환경 용품'으로 대체하고, 환경 정화활동을 여행에 접목하는 등 환경보호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앞 글자에서 따온 말로, 편의를 위해 ESG로 줄여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은 이 말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가 올해 1월 7일부터 12일까지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려운 외국어에 대한 우리말 대체어 국민 수용도' 조사에서 응답자 중 62.1%가 ESG 경영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이에 문체부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 일환으로 국립국어원과 함께 '환경·사회·투명 경영'을 'ESG 경영' 대체어로 선정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어려운 용어 때문에 국민이 정보에서 소외되는 일이 적잖다. 어려운 용어를 쉬운 말로 발 빠르게 다듬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라며 "선정된 말 외에도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대체어가 있다면 대체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친환경 여행 문화 확산에 동참하기 위해 달리면서 쓰레기 줍기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플로깅' 대신 '쓰담 달리기'를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플로깅·에코백·제로 웨이스트···우리말로 바꿀 수 있다 

"요즘 제로 웨이스트가 대세라잖아. 이번 주말에는 플로깅을 하려고. 에코백에 텀블러도 담아가야겠다."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에 나온 말이다. 얘기 중 튀어나온 일부 단어들에 거부감을 느꼈다. 짧은 문장들에 외국어(합성어)가 4개나 등장했다. 우리말로 충분히 바꿀 수 있을 법한 단어임에도 정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쏟아지는 단어가 낯설었다.

친환경 시대에 많이 쓰는 어려운 용어는 비단 ESG에 그치지 않는다. 환경보호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환경 관련 단어들을 외국어 표기 그대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언뜻 보면 그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도 있다. 업사이클링' '제로 웨이스트' '플로깅' '비건' 등도 각 업계에서 자주 쓰는 용어다. 

위 문장에 사용된 환경 용어는 '제로 웨이스트' '플로깅' '에코백' 등이다. 이 중 플로깅은 스웨덴어 '플로카 업(plocka upp·줍다)'과 '조가(jogga·달리다)'를 합친 말인 '플로가(plogga)'의 명사 형태다. 달리기를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운동으로, 스웨덴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 

'텀블러'는 엄밀히 말하면 환경 용어는 아니지만 최근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이 확산하며 주변에서 많이 쓰기 시작했다. 

이들 용어는 쉬운 우리말로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 없애기', 플로깅은 '쓰담 달리기', 에코백은 '친환경 가방', 텀블러는 '다회용컵' 또는 '통컵'으로 바꾸면 된다. 

친환경 시대에 많이 쓰이는 말인 '클린 뷰티'는 '친환경 화장품'으로, '리유저블 컵'은 '다회용 컵'으로, '업사이클링'은 '새활용'으로 각각 바꿔 쓸 수 있다. 

그 밖에도 '그린테일'이라는 용어는 '친환경 유통'으로, '그린슈머'는 '녹색 소비자'로, '에코 힐링'은 '자연 치유'라는 쉬운 우리말로 바꿔 쓰는 것이 좋다. 우리말로 바꾸면 단어가 품은 뜻을 많은 이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확산하는 친환경 의식···쉬운 우리말도 보편화해야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부는 친환경 열풍, 이것이 전 세계에 화두로 떠오르면서 우리는 ESG 외에도 COP26, '넷제로' 등 환경 관련 용어들을 대중매체를 통해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하나같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단어지만 외국어가 줄임말로 유통되거나, 외국어가 합쳐져 '신조어'로 재탄생해 유통되다 보니 남녀노소 누구나 이 단어들을 이해하는 데는 적잖이 어려움이 있다. 세대 간·계층 간 장벽이 생긴다. 

COP26은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로, 개인이나 회사, 단체가 배출한 온실가스(탄소)를 다시 흡수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뜻인 '넷제로'는 '순배출 영점화' 정도로 바꿔 쓸 수 있다. 

우리말 전문가들은 "어려운 외국어 단어나 표현의 무분별한 사용은 국민에게도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지금부터 하지 않으면 우리말 속에 더 많은 외국어가 들어오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결국 외국어만 남게 된다. 국민의 삶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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