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전문점·식당서도 외국어 남용
  • 해외 가맹점 늘며 외국어 일상화…"우리말 쓰면 고루" 언어 사대주의
  • 외국어 남용 세대단절 부추겨…테이크아웃→포장, 빌지→계산서로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빠르게 변화하는 것 중 하나가 '언어'다. 언어는 세대 간을 비롯해 매체와 독자, TV와 시청자 간 각계각층 사이에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언어 파괴'다.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 또한 눈에 띈다. 심지어는 정부나 기관, 언론도 언어문화 파괴의 온상이 됐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 등을 사용하면 언어가 새롭고 간결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서로 간의 이해를 돕진 못한다. 자칫 소통을 방해할 수도 있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 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장기 연재하기로 한다. 


김용미씨(61세·가명)는 얼마 전 손녀와 함께 커피전문점에 갔다가 낭패를 봤다. "커피 하나 마시는 데 선택사항이 너무 많았다"며 "샷 추가, 사이즈 업그레이드 등등 커피 한잔 주문하는 데 선택사항이 너무 많았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기만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요즘은 식당에 가도 마찬가지다. 식은땀부터 난다"며 "주문하다가 보면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꼬집었다. 
 

이탈리아 음식 전문점 차림표. 직원에게 물어야 할 정도로 이름이 낯선 음식도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식당·커피 전문점서 남용되는 외국어

양식·일식·중식은 물론, 베트남·태국·스페인·터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지식을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않게 경험할 수 있다. 현지인이 직접 운영하는 곳도 적잖다. 세계 각국의 대표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은 전국 각지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국내 커피전문점도 넘쳐난다. "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마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식후 커피 문화는 우리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이처럼 각종 해외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과 음식점이 급증하면서 일상생활에도 외국어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주문 시 '테이크아웃(take-out)', '세팅(setting)', '오더(order)', '리필(refill)' 등의 외국어가 빈번하게 사용된다. '빌지(bill+紙)'라는 정체불명의 합성어도 식당에선 이미 굳어졌다. 

​낯선 이국 음식들, 그 안에서 통용되는 단어들은 여전히 생경하기만 하다. 특히 외국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나 커피 전문점 방문이 어색한 중장년층에게는 더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테이크아웃은 '음식을 포장해 가져간다'라는 의미인 만큼 '포장', '포장 구매' 등 쉬운 우리말로 충분히 바꿔 쓸 수 있다. "세팅해드릴까요?"라고 묻는 대신 "접시와 수저를 앞에 놓아드리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고, "리필해드릴까요?" 또는 "리필해주세요"는 "(음료를) 더 채워드릴까요?" 또는 "더 채워주세요" 등으로 충분히 바꿔 쓸 수 있다. 빌지는 계산서로 바꾸면 된다. 

일식당에 가면 '히쓰마부시'나 '돈부리' 외에도 '스키다시(つきだし, 츠키다시)', '와사비(わさび)', '나베(なべ)', '우니(うに)' 등의 단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모두 일본어다. 

스키다시는 주 요리인 회가 나오기 전에 나오는 밑반찬을 뜻한다. 와사비는 고추냉이로 바꿔 부르면 된다. 나베는 '냄비'라는 뜻이다. 우리가 부를 땐 '냄비 가락국수' 정도로 써도 무방하다. 우니는 성게알로 바꿔 부를 수 있다. 
 

'히쓰마부시'는 '장어덮밥'으로, '장어고무스비'는 '장어초밥'으로 각각 바꿀 수 있다. [사진=한 일식당 차림표 갈무리. ]

◆진땀 나는 주문 사례···외국어 대신 우리말로 

#-1. 퇴근 후 일식당을 찾은 직장인 김미영씨가 메뉴를 한참 들여다보며 고민한 후 드디어 주문을 시작한다. "히쓰마부시 하나 주세요." 그러자 직원이 묻는다. "네 손님. 히쓰마부시 하나 맞으시죠? 드시고 가시나요, 테이크아웃 하시나요?"

#-2. 카페를 찾은 대학생 최수희씨가 주문을 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추가해서 하나, 카페모카 휘핑크림 듬뿍 올려서 하나 주세요." 

직원이 생긋 웃으며 주문을 확인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추가 하나, 휘핑크림 올린 카페모카 하나 주문 받았습니다. 트레이에 담아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스트로우는 뒤편에 있습니다."

우리가 식당 또는 커피 전문점을 방문했을 때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더는 낯설지 않은 광경이지만, 왠지 거북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히쓰마부시', '돈부리', '스트로우', '트레이'……. 충분히 우리말로 바꿀 수 있음에도 공공연하게 남용되는 단어들이다. 외국어가 서툰 노년층은 물론, 젊은 세대조차 받아들이기에 낯선 이름이 많다. 

그럼, 언급한 사례 속 등장한 외국어를 우리말로 쉽게 바꿔보기로 한다.

#-3. 퇴근 후 일식당을 찾은 직장인 김미영씨가 차림표를 한참 들여다보며 고민한 후 드디어 주문을 시작한다. "장어덮밥 하나 주세요." 그러자 직원이 묻는다. "네 손님. 장어덮밥 하나 맞으시죠? 드시고 가시나요, 포장해 가시나요?"

#-4. 커피전문점을 찾은 대학생 최수희씨가 주문을 한다. "차가운 커피 하나요. 조금 진하게 해주시고요, 모카커피 생크림 듬뿍 올려서 하나 주세요."

직원이 생긋 웃으며 주문을 확인한다. "차가운 커피 진하게 한 잔, 생크림 올린 모카커피 한 잔 주문받았습니다. 쟁반에 담아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빨대는 뒤편에 있습니다."

남용되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꿔보았다. 어색할 수는 있지만,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쉽고 바른 우리말 사용을 통해 세대 간·계층 간 격차를 줄일 수도 있다. 외국어나 외래어, 신조어 등을 우리말로 바꿔 표현하려는 의식 확산이 필요한 이유다. 

◆전문가들 "언어 사대주의, 지양해야"

쉽게 쓰고 부를 수 있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외국어를 남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외국어가 우리말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언어 사대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외국어가 시대 흐름을 선도하는 최신의 언어라는 착각도 남용에 불을 지핀다. 

한 커피전문점에 종사하는 A씨는 "커피 이름을 비롯해 주문 시에도 지나치게 많은 외국어가 사용되는 것을 직원 모두 인지하고 있다. 직원조차 어려워하는 음료 종류도 상당수"라며 "이런 단어를 써야 소위 '있어보인다'고 생각하는 것같기도 하다"고 전했다.

한 식당 대표 B씨는 우리말로 쓰면 '고루'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점점 외국어 사용이 빈번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넘쳐나는 외국어 사용은 '언어 사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음식이나 커피 이름, 또 식당 안에서 사용하는 말들이 대부분 외국어로 이뤄진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는 생소하던 것도 나중에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우리말을 경시하고 외래어를 중시하게 될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중·장년층과 어린아이는 외국어로 점철된 음식 이름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외국어 남용은 세대 단절의 원인이 될 것"이라며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꿀 수 없다면 옆에 부연설명이라도 표기하는 등 업계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커피를 자주 마시는 젊은 세대도 일부 커피이름은 낯설게 느끼곤 한다. [사진=A 커피전문점 주문 앱 갈무리 ]

 

새 음료 출시를 알리는 커피전문점 안내판. '클린하고 스윗하면서~'라고 표기한 문구는 '깔끔하고 달콤하면서~'로 바꿔도 무방하다. [사진=기수정 기자]

요즘 커피전문점에서는 무인단말기를 통해 주문할 수 있다. 다만 외국어 또는 커피 주문 방법이 낯선 중장년층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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