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경제안보 시대, 국가 산업전략 새 판 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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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입력 2022-04-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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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전 중소기업청장]


세계는 지금 전대미문의 초변화 대전환 시대이다. 미국, 중국, EU를 위시한 세계 각국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가 산업전략 수립에 매진하고 있다. 미국, EU 등 선진국의 경우 경제 발전에 따라 정부보다 민간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정부의 산업전략이나 산업정책이라는 용어가 사실상 존재감이 없어진 걸 감안할 때 주목해야 할 상황이다. 아직도 중국이나 개발도상국처럼 정부 주도의 경제 발전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들은 산업전략과 산업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 경제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가운데 새로운 세계적 흐름에 정확한 상황 인식과 현명한 대처가 시급한 국면이다.
 
먼저 미국, EU 등 선진국이 사실상 민간에 맡겨두었던 국가 산업전략에 정부가 다시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민간만으로 작금의 초변화 대전환 시대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환경, 기술, 세대·사람, 자본주의·정부정책, ESG·경영철학 등 총체적 초변화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디지털 대전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중립과 그린 대전환,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인류문명 대전환 등 거대한 시대적 대전환이 진전되고 있다. 거기에 미·중 갈등과 패권 전쟁으로 세계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신냉전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세계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초긴장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과거 경험해보지 못한 초변화 대전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민간과의 협력을 통한 밀착 지원이 필수적이라 보고 새로운 국가 산업전략을 짜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에서 표면적으로는 중국의 ‘중국제조 2025’ 정책을 문제 삼으며 시작된 미·중갈등이 무역 전쟁으로 발전하고 바이든 정부에서 기술패권 전쟁으로 비화되면서 정부 주도로 국가 산업전략을 전면 개편하고 있다. 경제회생 정책인 ‘Build Back Better’ 일환으로 ‘포괄적 제조 및 혁신 전략’을 제시하여 미국 내 제조, 혁신, 공공구매, 투자, 공급망 등 전반적으로 미국 기업 지원 및 경쟁력 제고 정책을 착수하였다. 데이터, 인공지능(AI) 중심의 디지털 대전환을 지원하고 2050년 탄소중립 목표 하에 그린 대전환에도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미·중 패권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광범위하고 강력한 행정조치를 발동하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등 중요 광물, 의약품 등 전략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중심의 견고한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면서, 전 분야는 아니고 첨단 산업 분야 및 기술 중심으로 미국의 생태계를 중국에서 완전히 분리하는 ‘작은 마당, 높은 담장 (Small Yard, High Fence)’ 개념의 미·중 디커플링 전략으로 발전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의회의 초당적 지원 하에 ‘미국 혁신경쟁법’, ‘미국 경쟁법’, ‘무한 프런티어법’, ‘미국 반도체 제조 지원법’ 등 다양한 입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반도체, 배터리, 우주항공 등 첨단 산업 및 기술 우위 확보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경제와 안보를 연계시킨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해 AI, 데이터, 양자컴퓨팅, 바이오, 에너지 등 핵심 기술 분야에 R&D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중국에의 기술 유출 방지에도 주력하고 있다.
 
중국은 지속적으로 정부 주도의 국가 산업전략을 추진하는 가운데 최근 미·중 기술패권 전쟁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2015년 발표된 ‘중국제조 2025’ 정책은 미·중 갈등의 단초를 제공하면서 일단 언급을 회피하며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후속조치는 강력히 추진되고 있다. ‘중국제조 2025’의 10대 중점 육성분야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어 우리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 제조, 녹색 제조, 제조업 서비스화, 제조혁신센터 구축, 인재 육성 등 11개 지침을 추가한 ‘1+X’ 규획, 산업인터넷 확충으로 제조업 등 11개 분야의 스마트화를 위한 ‘인터넷 플러스’ 정책 등이 촘촘한 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다. 2021년 과학기술 혁신을 국가발전의 전략적 핵심 축으로 국가 산업전략을 수립한 14차 5개년 규획에 착수하였다. 제조강국 전략 심화와 반도체, 배터리, AI, 양자정보통신 등 전략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내수 활성화 중심의 국내 대순환과 수출 및 개혁개방 중심의 국제 대순환을 결합한 쌍순환 전략 등 정부 주도의 면밀한 정책으로 미·중 패권경쟁과 코로나 팬데믹 등 현안 문제에 대응하며 중국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유럽도 과거와 달리 정부가 국가 산업전략에 나서고 있다. 독일이 주도하는 EU의 산업전략은 미·중 패권경쟁 과정에서 EU의 산업 주도권이 상실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기반을 두고 있다. 현재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독일 자동차 산업도 배터리는 중국에 뒤지고 시스템 반도체는 미국에 뒤지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EU 차원의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 품목 및 기술에 대한 EU 내 자급을 위한 대대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향후 산업을 선도할 전략 분야에서의 세계적 경쟁력 유지에 주력하고 있다. 순환 경제, 수소 경제 등 그린 대전환을 통한 탄소중립 정책을 선도하고 디지털 대전환을 통한 EU 차원의 대대적 디지털 경제 육성 정책을 추진 중이다. 특히, 디지털 경제의 핵심인 데이터 측면에서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대기업의 파상 공세로부터 데이터 주권을 지키겠다는 목표로 EU 차원의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는 프로젝트인 Gaia-A 프로젝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도 미국, 중국, EU와 같이 작금의 초변화 대전환 시대에 대응하는 국가 산업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경중안미’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미·중 패권경쟁은 우리엔 실로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우리 경제의 상대적 호조는 경쟁국 대비 적은 코로나 팬데믹 영향과 최근 미·중 갈등에 따른 탈중국화의 수혜가 작용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현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대처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국가 산업전략과 경제안보 전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미·중 패권전쟁과 곧 재개될 전면적 국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국가 산업전략의 새 판을 짜야 할 때이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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