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전쟁에 휘청이는 세계경제, 국제사회서 고립된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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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2-03-2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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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채 한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세계경제에 이미 큰 경제적 충격을 미치고 있다. 교전 중인 양국에서는 막대한 전비와 생산시설 파괴로 경제활동이 급속히 위축되었다. 인접 국가들에서도 성장률의 둔화 조짐이 벌써 나타났다. 양국의 공급망과 밀접하게 연계된 유럽에서는 에너지 및 곡물 가격의 상승은 물론 난민을 수용하는 부담에 직면해 있다. 전쟁이 빨리 종결되지 않을 경우, 피해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1.8%, 0.2%로 크지 않기 때문에 세계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적은 편이다. 그러나 러시아에 부과된 유례없는 경제 제재는 교역망과 공급망을 심각하게 교란시키고 있다. 지난 7일 러시아가 비우호국가로 지목한 한국, 미국, 영국, 호주, 일본, 유럽연합(EU) 회원국, 캐나다, 뉴질랜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대만, 우크라이나 등 총 48개국이 대러 제재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상품의 대러 수출을 통제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에 부여한 최혜국대우(MFN)를 박탈하였다. 또한 미국은 EU와 함께 러시아 중앙은행 및 국부펀드와 금융거래를 중단하였으며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7개 러시아 은행을 퇴출시켰다.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 및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면서 동맹국과 유사 입장국에게도 수입금지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이번 제재에 민간기업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점도 유례가 거의 없는 일이다. 이중용도와 전혀 무관한 네슬레, 맥도날드, 스타벅스와 같은 식품기업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넷플릭스, 틱톡을 비롯한 IT기업이 상품과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러시아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에 대규모 지분을 보유한 엑손모빌, BP, 셸, 에퀴노르의 투자회수이다. 세계적 에너지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게 되면, 러시아는 자원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당분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국가들도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때문에 러시아와 교역을 줄이고 있다. 이 규칙은 미국의 영토 밖에서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와 기술 등이 사용되었을 경우 상무부 승인을 의무화한 일종의 2차제재이다. 이 규칙 때문에 제재 대상 품목의 대러 수출은 심각한 제한을 받게 된다. 미국은 국제사회와 유사한 수준의 대러 제재에 동참한 국가만 면제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4일 면제대상국에 포함되었다.

제재의 경제적 여파는 올해 세계경제가 당면한 세 가지 난제인 인플레이션, 공급망 교란 및 금융 불안정의 관리를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올 1월 말까지 물가 상승을 일시적 현상으로 평가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우크라이나 발발 이후 물가 불안이 심화되자 기준금리를 지난 16일 0.25%p 인상하였다. 전쟁 피해가 집중된 유럽에서는 물가가 상승하고 성장률이 하락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분명해지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자원 대국인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세계 수출의 8.4%, 6.2%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4월부터 하루 300만 배럴 규모의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 생산이 중단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러시아의 수출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후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다.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지난 17일 배럴당 102.98달러, 천연가스 가격은 MMBtu당 4.97달러를 기록하였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물론 미국의 셰일가스업체도 증산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수급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곡물 가격의 변동도 심상치 않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수출의 18%, 12%를 각각 담당하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식량안보를 위해 우크라이나는 주요 곡물의 수출허가제, 러시아는 수출금지제를 도입하였다. 양국에서 곡물을 대량으로 수입하는 이집트, 튀니지 등의 아프리카 국가는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사회적 불안정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제재는 시장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2014년 크름(크림) 반도를 합병한 이후 금융제재로 고통을 겪은 러시아는 외환보유고를 확충하고, 달러화 비중을 낮추는 동시에 금과 위안화 비중을 올리는 등의 대비책을 마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P, 무디스, 피치는 이번 달 초 러시아 국채 신용등급을 BB+에서 CCC-, Baa3에서 B3, BBB’에서 ‘B’로 각각 대폭 하향 조정하였다. 따라서 러시아 중앙은행이 지난 17일 국채이자를 지급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해서 채무불이행 위험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1998년 러시아의 채무불이행이 당시 세계최대 헤지펀드 LTCM의 파산으로 이어졌던 사실을 볼 때, 그 위험이 어디로 파급될지는 예단할 수 없다.

러시아는 제재를 우회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중국에 원조를 요청하고 있다. 지난 18일 화상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대통령에게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할 경우 미국이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사실 양자 경제교류가 크지도 다양하지도 않기 때문에, 중국이 러시아를 도울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러시아산 에너지 자원의 주요 수출지역은 유럽이기 때문에, 수출하지 못하는 러시아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중국이 대량으로 구매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에 천연가스를 제공하는 시베리아 힘(파워 오브 시베리아)의 공급량은 2025년 최대치인 380억㎥에 도달해도 노드스트림의 550억㎥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노드스트림2는 완공되어 승인만 받으면 바로 작동될 수 있지만, 시베리아의 힘2는 작년에 타당성 평가를 마무리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중국이 개발한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CIPS)도 러시아에 큰 도움을 줄 수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CIPS는 SWIFT의 대안이 아니다. CIPS는 SWIFT의 메시징 시스템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가입한 국가와 금융기관의 수에서 CIPS(103개국 1280개)는 SWIFT(200개국 약 1만1000개)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따라서 현재 CIPS를 통해 SWIFT 제재를 우회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첨단 제품과 서비스 제공도 FDPR 때문에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세계적인 비디오 플랫폼인 틱톡은 지난 6일 러시아에서 라이브스트리밍과 비디오 업로드를 자발적으로 중단하였다.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은 9일 중국의 최대 파운드리인 SMIC를 꼭 짚어 러시아에 반도체를 수출할 경우 제재할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2차제재를 무릅쓰면서까지 러시아와 거래를 확대하려는 중국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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