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전 기재차관 "금융·팬데믹 합쳐진 복합위기…해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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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영 기자
입력 2022-03-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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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조적 요인 의한 물가 교란…단기간 해결 쉽지 않아"

  • "재정위기 훨씬 커진 상황…인플레이션 상당기간 지속"

  • "제조업 기반 구축·도약 거쳐 제조업 강국으로 발돋움"

  • '격변과 균형-한국경제의 새로운 30년을 향하여' 출간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제1차관 [사진=창비]


코로나19의 내상을 입은 세계 경제가 이를 극복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으로 기존 국제질서와 거버넌스에 심각한 균열이 일어났고 국제 교역망, 에너지 안보, 국제금융시장 모두 이전보다 훨씬 더 불안정해졌다. 이 같은 현상이 구조적 위기로 고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17일 "팬데믹 이후 양극화, 에너지 위기, 금융시스템 불안정 등 풀어야 할 문제의 크기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위기가 불러온 충격으로 과거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되거나 효과성이 떨어지는 영역이 그만큼 많아졌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보다 고차원적인 위기를 적시에 대응하지 못하면 글로벌 차원의 초대형 파고(波高)를 제대로 넘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지는 양상이다.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위험하다…"복합위기 징후 뚜렷"

그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현재의 위기가 단순히 한두 가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코로나19로 세계경제는 금융위기와 보건위기를 동시에 맞았다. 여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지정학적 갈등과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세, 양극화 심화에 따른 각국의 사회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이 현상을 '복합위기'로 정의했다.

김 전 차관은 현재의 복합위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충격으로 봤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어느 부분에서 위기가 발생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가 뚜렷했다"면서 "전세계가 금융위기의 충격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2020년 팬데믹 위기를 맞았고, 2008년 위기 대응 때보다 더 큰 규모의 재정정책을 펼쳤다"고 말했다. 

정상화로 가는 길이 이전보다 더 험난하고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이번 경제위기가 금융위기로까지 번지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팬데믹 회복기로 진입하는 이 시기에 세계 경제는 역설적으로 경제·금융 복합위기의 징후가 보다 뚜렷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요국의 거시경제 기조가 긴축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이 불안해진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지정학적 갈등과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각국의 사회적 긴장이 더해지며 문제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들 개연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일시적·구조적 문제로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한동안 지속될 것"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지난해 2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0차 비상경제 중대본 회의' 정례브리핑에서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가장 큰 위험 요인 중 하나는 물가 상승 압력이다. 김 전 차관은 "코로나19가 회복 움직임을 보이면서 수요가 갑자기 회복된 반면 공급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며 "수요-공급 불균형이 일시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팬데믹 리스크가 완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 통화긴축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기세가 예상보다 훨씬 강해지자 이에 대책 마련으로 통화정책을 선택했다.

연준은 16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0.00~0.25%에서 0.25~0.50%로 0.25%포인트 높였다. 2018년 12월 이후 3년 3개월 만의 금리 인상이다.

올해 남은 6번 회의 때마다 금리를 올릴 것을 시사하며 본격적인 긴축 신호탄도 쐈다. 연준은 이르면 5월부터 대차대조표 축소 등 양적긴축에도 나설 수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 중앙정부 차원의 노력에도 그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근본적으로 풀린 돈의 규모가 이전보다 훨씬 더 많고 자산가격 버블도 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조적 문제까지 혼재돼 물가 급등을 이끌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수요-공급의 일시적 요인이 해결되더라도 지정학적 요인과 에너지 위기 등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기 쉽지 않다"며 "구조적 요인에 의한 물가 교란은 시간이 해결해주지도 않고 해법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에너지 불안까지…"스테그플레이션 가능성도"

15일(현지시간) 독일 동부 슈베트에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소속 활동가들이 '석유 아닌 평화'라고 쓰인 피켓과 '평화의 상징' 조형물을 들고 PCK 정유공장으로 통하는 철로를 막은 채 시위하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라며 수입 금지를 요구했다. [슈베트 AP/DPA=연합뉴스]


지난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보다 심화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원자재와 곡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는 에너지와 식량, 국제금융시장 전반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러시아 제재로 글로벌 경제는 연일 불안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유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배럴당 100~140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30%가량 오른 수치다.

김 전 차관은 "에너지 시장의 구조 변화로 국제유가가 상상 이상으로 폭등하고 있다"며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긴축 강도를 높이면 경기 위축을 가져올 수 있어 현재로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긴장감이 지속되는 가운데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는 운동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면 국제 에너지 가격은 폭등할 수밖에 없다. '넷 제로'로 가는 여정이 극심한 에너지 파동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에너지 가격 상승은 물가 전반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긴축속도를 높일 수 있다"며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함께 오는 1970년대와 유사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2050 탄소중립', 한국경제의 새로운 30년을 향하여

에너지 수급 불균형 속에서 그는 한국경제의 긍정적 변화를 주도할 돌파구로 탄소중립을 꺼내들었다. 지난 14일 출간한 책 <격변과 균형>의 부제를 '한국경제의 새로운 30년을 향하여'라고 명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전 차관은 "우리나라는 그동안 제조업 기반으로 성장하면서 적지 않은 화석연료를 사용해 왔다"며 "전세계가 탄소중립으로 나아가는 지금, 제조업의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 '넷 제로'로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다음 정부가 해결해야 할 핵심 국정과제로 꼽은 것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 감축 목표의 구체적인 액션플랜 마련이다. 국제사회와 투자자가 기후위기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는 만큼 한국이 실효성 있는 탄소저감계획을 실행하면서 국내 제조업 경쟁력을 보전해야만 국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적지 않은 난제를 뚫고 한국은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을까. 그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봤다.

그는 "우리나라는 1960~1990년 30년 동안 아무것도 없는 환경 속에서도 제조업의 기반을 구축했고, 1990~2020년 30년은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했다"며 "2020~2050년 30년도 쉽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에너지 전환에 성공해 더 단단한 제조업 강국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진=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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