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창 기자

"악마와 도깨비들에게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답니다. 반드시 숨어들어온 곳으로 나가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나오는 장면이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지옥에도 법률이 있다며 하는 대사다. 인터넷 유행어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이 대사를 떠오르게 하는 일이 생겼다. 기자사회를 술렁이게 한 가짜 보도자료와 관련된 얘기다. 

이 사건은 증권시장을 담당하는 기자로서 독자들과 투자자들에게 송구한 일이다. 램테크놀러지라는 회사의 호재성 보도자료가 배포돼 많은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했는데, 알고 보니 이 자료가 회사 측이 배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사이 주가는 상한가를 두 번이나 기록했고 지금도 과열된 분위기가 가시지 않는다.

다행스럽게 아주경제는 해당 가짜 보도자료를 기사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램테크놀러지의 가짜 보도자료를 배포한 사람이 금융감독원에 등록된 유사투자자문업자 S씨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6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취재 결과 수사기관과 금융당국 등도 본보의 보도 이후 본격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기사가 나가는 동안에 취재를 거부하던 S씨는 가짜 보도자료 배포 전말이 밝혀지자 기자에게 해명을 보냈다. 자신은 회사를 사칭한 적도 없고 오히려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기사 수정을 할 생각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회사에 알아보지도 않고 기사를 결론지어도 되는 건가요?" "지난 기사 사과 한마디 없으신가요?"

이렇게 기자에게 기사의 수정을 요구해왔다. 수정뿐 아니라 아예 자신에게 사과까지 요구했다.

제대로 된 해명이었다면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S씨의 해명은 추가 취재 결과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었다. 보도자료 배포를 대행한 업체에는 본인이 유사투자자문업체라는 사실을 숨기고 램테크놀러지라는 회사명과 내선번호를 전달했다. 더 나아가 최종적인 가짜 보도자료 내용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유료 리딩방 회원들에게는 가짜 보도자료에 담긴 내용을 배포 전에 미리 공개하며 적극적인 매수를 추천했다. 이후 가짜 보도자료 때문에 가짜 기사가 쏟아졌다. 그 영향으로 주가는 폭등과 폭락을 거듭했다. 당연히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생겼다.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램테크놀러지의 가짜뉴스 살포자는 반드시 잡아서 처벌했으면 좋겠다"는 리플이 달리자 S씨는 웃는 표정(^.^)을 리플로 남기기도 했다. 기자뿐만 아니라 투자자들도 농락한 셈이다. 

이게 무슨 어불성설인가. 마치 검찰을 사칭한 피싱범죄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내가 진짜 검찰직원인지 잘 알아보고 송금했어야죠"라고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S씨는 가짜 보도자료를 너무 쉽게 기사화하는 데 성공하다 보니 자신의 사칭 행위를 고발하는 기사마저도 쉽게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잘못 짚었다. '진짜' 기사는 S씨 마음대로 못한다. 지옥에도 있다는 법률, 증시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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